[민들레국수집 이야기]


노숙 강아지였던 민들레 투는 마르티즈종입니다. 피부병 치료를 위해 약을 먹이고 바르고 그러다가 집에 올 때면 민들레국수집에 혼자 남겨 놓고 왔습니다. 베로니카가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기에 집에 데려올 생각도 안했습니다. 강아지를 혼자 남겨 놓고 올 때 너무 애처롭게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아지를 집에 데려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민들레가 집에 온지도 벌써 한 해가 훌쩍 넘었습니다. 얼마나 예쁜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베로니카와 모니카는 민들레를 씻기고 똥오줌을 치우면서도 예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두 아이를 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7월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네의 주민 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곧 주민 센터로 갔습니다. 아이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합니다. 헤어지기 싫다고 합니다. 짐도 없습니다. 아들은 야구공 하나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딸은 호랑이 인형을 안고 있습니다.

우선 영희네 가족을 민들레국수집에서 쉬게 하고 방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겨우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삼만 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보증금은 지금부터 모아서 마련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은 아이들이 자기와 함께 도망 다니느라고 일 년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전학을 하려고 해도 내년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학교 다니기로 하고 모자란 공부는 민들레 꿈 공부방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영희 아빠는 동네의 식당에서 일당 오만 원을 받고 배달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잘 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가 일하러 다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첫 달 방세도 못 내고 있습니다. 대신 내어주었습니다.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아이 아빠가 다짐을 했습니다. 다른 식당에 취직해서 잘 다니나 했습니다. 한 달을 채우고 월급을 받자마자 또 그만 둔 것 같습니다. 보름 만에 다시 식당에 취직했습니다. 두 달 정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여자를 쫓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실연을 당했는지 술을 자주 마시더니 또 일하러 다니지 않습니다. 두 달이나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지난 삼월달입니다. 영희는 초등학교 전학을 해야 하고 큰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이를 학교 보낼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찾아갔더니 상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영희는 초등학교로 전학시키고,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며칠 후에 아이 아빠가 찾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더 봐달라고 했습니다. 큰아이가 교복 입은 모습을 보니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속는 셈 쳤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집주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석 달이나 방세가 밀렸다면서 밀린 방세도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사정도 어려우니 방을 빼달라고 합니다. 방세만 밀린 것이 아니라 수도료와 전기료도 석 달이 넘게 밀렸다고 합니다. 도시가스는 연체가 되어서 끊겼습니다.

집에 가 봤습니다. 이불을 바꿔 준지 한 달도 안됐는데 엉망입니다. 도시가스가 끊겨서 전기히터를 켜놓고 있습니다. 큰 아이가 학교도 안 갔습니다. 아빠랑 누워있습니다.

아이 아빠가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을 남겨 놓고 자기만 떠나겠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아이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나 하고 내일 아침에는 사라지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밥이라도 먹고 떠나려고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합니다. 큰 아이가 학교 못 간 것도 아마 차비가 없어서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장면이라도 아이들과 먹으라고 이만 원을 주었습니다. 제발 술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후에 집주인과 함께 와서 정리를 하자고 일렀습니다.

집주인을 오후에야 만났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보는 데서 밀린 방세를 드리겠다고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새 아이 아빠가 술에 취해서 누워있습니다. 불러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방세 등 밀린 것들이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몇 차례 물어보아도 들은 체도 안합니다. 그러다가 화를 버럭 내면서 방세 석 달 못 내었고, 수도세와 전기세도 석 달 못 냈고, 도시가스는 17만원이 연체되어서 끊겼다고 합니다. 집주인에게 방세와 수도, 전기세 밀린 것을 드렸습니다. 도시가스 밀린 것은 아이 아빠가 떠나면 방을 빼주면서 보증금에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에 가족들에게 영희네 집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떠나면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베로니카와 모니카가 두 아이를 입양한 셈치고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합니다. 천사들입니다. 영희는 모니카와 같은 방에서 지내고, 남자 아이는 책방에서 지내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몇 달을 함께 지내다가 아이들이 살 방이라도 마련되면 모니카가 아이들 데리고 분가하도록 하자고 합니다. 두 아이를 맡는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데도 두 천사는 천하태평입니다. 민들레를 키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데도 아무렇지도 않은듯합니다. 제가 천사들 틈에서 삽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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