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세월호참사가 지난 16일로 2주기를 넘겼다. 수많은 국민이 안산과 진도 앞바다와 광화문에서 억울하게 우리 곁을 떠난 젊은 넋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아직도 세월호참사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됐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진상이 밝혀져야 빨리 배에서 빠져 나오면 살 수 있었을 250여 명의 단원고 학생들에게 배 안에 남아 있으라고 방송해서 수장되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를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무슨 비밀이 있는지 모르지만 2년 전 4월 16일 당일 오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교사 325명과 일반인 151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어떤 물체와 부딪혀 침몰 위기에 있다는 상황을 보고 받던 청와대 주인공이 오후 5시 재해대책본부에 나타날 때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청와대는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박 대통령의 행방을 끝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을 막고 있는 첫 장애물이다.

그 때문에 온갖 루머가 난무하고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은 근거 없는 루머를 보도해 기소되고 그래서 한일 외교문제로 비화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방은 아직도 국가기밀로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은 포기할 수 없다.

항의 단식, 국민을 향한 호소 끝에 65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고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까지 구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조사위원회에 포함된 정부 여당 측 위원들이 비협조로 일관해 조사활동은 진척을 보지 못했다. 다행히 천우신조로 총선 결과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뀌게 돼 특조위 활동에 새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 제2차 특조위에서는 학생들에게 선실에 남아 있으라고 지시한 것이 선박회사였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무언가 희망을 갖게 한다. 여소야대이니 국회가 새누리당의 반대를 밀어젖히고 특조위의 조사를 효과적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

이석태 특조위원원장의 말대로 조사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진상을 규명해서 누가 뭘 잘못해서 이런 끔직한 참사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밝혀 내 이런 비극이 재연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치 지도자 한두 사람이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조사 자체를 방해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카트리나로 인한 재난에 대해 정부 책임자들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세월호 사건을 푸는 데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난을 잘못 처리해 미국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잘못을 시인한 조지 부시(아들) 대통령의 경우가 하나의 타산지석이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2005년 8월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느라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예외적 파괴력으로 습격하고 있다는 예보를 보고 받고도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바다보다 지면이 낮은 뉴올리언스를 보호하는 제방이 무너져 가난한 흑인이 많이 사는 지역의 피해가 컸다. 부시는 가난한 흑인 거주 지역이라 허리케인 대책에 등한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부시는 처음에는 카트리나 내습 예보를 보고, 대책에 만전을 기했다고 변명했으나 나중에 대책이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뉴올리언스 주민에게 큰 피해를 준 데 대해 사과했다.

부시는 재난 대책에 소홀했던 점을 인정했다.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했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지 5년 뒤 2010년에 발간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에서 부시는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면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책임자가 대통령”이라면서 국민의 안전과 안보 문제가 제기되면 당연히 제1차적 책임을 지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원칙을 인정했다. 따라서 부시는 “카트리나로 인해 (자신의)비판자들에게 다년간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과 함께 카트리나 재난 대책 실패로 2005년 가을을 나의 대통령 임기 중에서 부정적인 시기로 본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사실 카트리나 사건은 부시 통치 내리막길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은 자연 재난까지도 당연히 책임지는 자리라는 것이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카트리나 복구 책임은 공화당의 부시 다음으로 백악관 주인이 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에게 돌아왔다. 공공정책여론 조사기관이 2013년에 실시한 조사는 카트리나가 지나간 지 3년 반이 지난 뒤 취임한 오바마에게 허리케인 피해 복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루이지애나 공화당원이 29퍼센트나 됐다.

부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책에 관해 비판받게 된 발단은 허리케인이 걸프만에 내습하는데도 그가 텍사스에서 휴가를 보내며 진지하게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였다. 그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나흘 뒤에야 전용기를 타고 뉴올리언스 상공을 날아 워싱턴으로 귀환했다. 그가 재난 지역에서 그냥 지나갈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내려 현지인들에게 어려움을 묻고 위로의 인사를 나눴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냥 2500미터 상공에서 재난 지역을 내려다보며 워싱턴으로 날아가 버린 것도 흠이었다.

부시는 회고록에서 가슴이 찬 이런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준 자신의 행동을 깊이 후회했다. 그는 “내가 대책이 미흡한 것을 더 빨리 인식하고 더 신속하게 행동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부시는 카트리나 재난에 대한 부적절했던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고 그것이 자신의 정치 생명에 미칠 피해도 인정했다. 정치적으로 결코 회복할 수 없는 피해였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제 가톨릭교회의 교황도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다르다. 이런 차거운 가슴을 가진 정치인으로 어떻게 주권자인 국민과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소크라테스가 박근혜를 본다면 “너 자신을 알라”고 충고하지 않을까?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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