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CR 사설

(이 글은 ‘사랑의 기쁨’이 발표된 뒤 미국의 평신도 매체인 <NCR>에 실린 사설입니다. - 편집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교황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은 현대 사회의 가정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교황권고를 천천히 그리고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NCR>에서는 앞으로 여러 주에 걸쳐 신중하게 이 문헌을 살펴볼 것이지만, 일단 당장 우리는 특히 언급할 가치가 있는 두 가지에 대한 성찰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

우선, ‘사랑의 기쁨’은 현대 가정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 해결책은 별로 내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쉬운 답변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경계한다. 대신에 ‘사랑의 기쁨’은 주교, 사목자,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서로 함께 모여 자기들 안에서 해답을 찾아보라고 대담하게 요구한다.

이 점에서 이번 교황권고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에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시노드 개막연설에서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사랑의 기쁨’은 파레시아(parrhesia, 진실의 용기, 즉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더 나은 결말을 위해 진실을 말하는 용기)로 이끄는 도전이다. 즉, 대담하고, 두려움 없이 가정에 관해 대화하라는 것이다.

▲ 란츠게마인데(직접 민주제의 한 형태인 스위스의 주민총회).(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사도행전 4장 13절에 "파레시아"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우리는 가톨릭교회 안의 모든 지도자들이 이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촉구한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미국 주교들은 –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다른 나라의 주교들도- 가정에 관한 두 번의 세계 주교시노드에 신자들이 온전히 참여하도록 이끌 기회를 놓쳤다.

도구와 권유가 있었으며, <NCR>은 가정 생활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을 토론하려는 열정이 가톨릭 공동체 전반에 크게 퍼져 있음을 보도했다. 동시에 우리는 교회를 넘어선 사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기회임을 인식했다. 하지만 이 열정에 발을 담근 교구는 너무 적었다.

‘사랑의 기쁨’을 발표함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공동체에 두 번째 기회를 줬다. 4월 8일에 이 교황권고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시카고 대교구의 블레이즈 수피치 대주교는 이 문서는 “우리의 상상력에 불꽃을 튀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목자들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울 팀들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 교회의 혼인 준비 프로그램을 향상시킬 방법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환영하는 가정들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 낼 만한 프로그램이 있을까?”라고 예를 들었다.

우리는 수피치 대주교가 한 이런 질문에 말에 “예!”라고 외치며 대답할 것이다.

가톨릭인들의 상상력에는 이미 불꽃이 붙었다. 그리고 ‘사랑의 기쁨’을 냄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우리는 주교들과 교구 지도자들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촉구한다. 각 본당과 지구로 가서 폭넓게 협의를 하시라.

‘사랑의 기쁨’은 아주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현장의 구체적 협의에 지침으로 쓰기에 완벽하다. ‘사랑의 기쁨’은 각 지역에서 현지 교회와 문화에 맞는 사목 프로그램을 찾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협의 과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촉구하고 있는 파레시아가 싹트는 온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협의 과정으로부터 새복음화의 정신이 움터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가톨릭 평신도 등을 비롯한 이들이 자신들의 주교와 교구 지도자들에 대해 참을성을 갖기를 촉구한다. 이들이 ‘사랑의 기쁨’을 충분히, 그리고 깊이 연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즉, 이들에게 시간을 주시라.

‘사랑의 기쁨’은 그늘의 모습들에서 한 언어와 스타일 즉 사목신학을 이끌어 내는데, 이 사목신학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비방을 받아 왔었다. 교구 지도부에 속하는 많은 이가 이 접근법에 다시 친숙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 언어와 접근법에 확신이 없고 잘 알지 못하여서, 이들이 (지금으로서는) 어떤 협의를 요청하더라도 제대로 된 협의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인공피임이나 (바티칸이 쓴 표현으로) “비정상적”(irregular) (혼인) 관계와 같은 문제들에 관련된 가르침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결코 메우지 못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우리 지도부가 ‘사랑의 기쁨’을 제대로 이해하고 익혀서 그 중요성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줘야 한다. 이는 우리의 다음 문제로 이어진다.

‘사랑의 기쁨’이 발표된 뒤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교회에 변화를 불러오지 않고 있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이는 이 교황권고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에 담긴 깊은 메시지를 오해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대중을 오도하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반대해 온 이들은 이 교황권고를 즉각 내리 깎을 태세를 보였다. 미국의 (보수파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사랑의 기쁨’이 “교도권 행위가 아니다”고 썼다. 그는 말하기를, 이는 “(교황으로서의 교도권이 아니라 프란치스코) 개인 의견인즉 비교도권적.... 문서”로, “교황 성부의 성찰”이라고 말했다.

버크 추기경이 말한 것은 2014년과 2015년에 두 번 있었던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시노드 중에 가정 관련 교회 생각에 황금률로 인용되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일부 주교들은 ‘사랑의 기쁨’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이 문서는, 2014년과 2015년 시노드에 참석했던 워싱턴 대교구의 도널드 우얼 추기경의 말처럼, “이 모임들과 여러 의견들의 총의를 반영한 것”이며, 또 2015년 시노드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접 임명으로 대의원이 되어 참석했던 수피치 대주교에 따르면, 시노드에 참석한 주교들이 2/3 다수로 승인했던 바에 충실한 “권위 있는 가르침 문서”라고 지적한다. (편집자 주- 시노드에 제출된 안건들의 의결정족수는 2/3이다.)

확실히 말하자. 일부, 아마도 상당히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사랑의 기쁨’에 실망할 것이다. 이혼하고 재혼한 가톨릭인들에 대해 ‘사랑의 기쁨’은 제일 좋게 보아도 결론을 유보했을 뿐이다. ‘사랑의 기쁨’은 우리의 성소수자 형제자매들이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 안의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낸 가정 생활을 불존중한다.

더 많은 것을 바랐던 이들에게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 ‘사랑의 기쁨’이 엄밀히 말해 혁명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발전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기쁨'을 지난 35년간 (편집자 주- 1978년에 선출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부터 그 후임자로서 2013년에 사퇴한 베네딕토 교황 때까지) 길가에 주저앉아 있던 이 순례자 교회를 일어나 앞으로 가라고 찔러대고 있음이 사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을 통해서 교회 안의 권위의 틀을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 그가 이전부터 이번에까지 반복하고 있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모든 문제의 답을 로마와 규정집에서만 찾지 말라. (“교의적, 도덕적 또는 사목적 문제들에 관한 모든 토의들이 교도권의 개입에 의해 해결될 필요는 없다.” ‘사랑의 기쁨’, 3항)

당신의 전통과 지역 상황에 맞는 답을 찾아라. (“더욱이 각자의 나라 또는 지방은 자신의 문화에 더 적합하고 각자의 전통과 지역적 필요에 더 민감한 해결책을 추구할 수 있다.” 3항)

당신들 자신을 믿어라. (“성령께서는 전체 진리를 향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3항)

즉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 교회가 되라고 다시금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양심에 대해 쓴 부분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개인 양심이 교회의 실천에 더 잘 통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덧붙일 수 있다.”(303항) “우리는 또한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각자 자신의 식별을 실행할 능력이 있는.... 신자들의 양심들에 공간을 잘 내 주지 못하고 있다.”(37항) 그리고, “우리는 양심을 양성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지 (아무런 양심적 고민과 성찰을 할 필요 없이 따르기만 하면 되는 규칙 같은 것으로) 양심을 대체하라고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37항)

늘 교사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에도 ‘사랑의 기쁨’을 통해 가정생활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 있지만, 또한 교회가 어떻게 작동하기를 자신이 바라는지 그 틀을 잡아 보여 주는 기회로도 쓰고 있다. 그는 가톨릭 공동체에 두 가지 과제를 내놓는다. 서로 간에 용기와 겸손으로 말하고 듣는, 진실의 용기를 가진 공동체로서 살라는 것. 그리고 교황 자신이 행동과 문서로 보여 주는 개방성을 각 본당 안에서 사목적 담화와 열정적 행동으로 실천할 것.

기사 원문: http://ncronline.org/news/vatican/editorial-take-amoris-laetitias-challenge-seriously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