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차원에서 구체적 실천 기획

경기도 평택에 있는 서정동 성당. 성전에 들어서자 큼지막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 ‘자비의 희년 본당 세부 실천사항’이 쓰여 있다. 지금이 4월이라 “4-7월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주며” 부분이 유독 크게 강조돼 있다.

성당 건물 맞은편에는 샛노란 컨테이너가 있다. 이름은 ‘365 플러스마트’. 입구 옆에는 영어, 중국어, 인도네시아어, 한국어로 안내문이 붙어 있다. “환영합니다! 서정동 성당 신자들의 정성입니다.”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았다. 옷들은 하나하나 다림질했다. 컨테이너 안에 옷, 신발, 생필품 등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마트다.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물건 값은 헌금함에 자유롭게 넣으면 된다. 서정동 성당 신자들이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주며”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 성당 건물 앞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365 플러스마트. ⓒ배선영 기자

자비의 희년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칙서 “자비의 얼굴”에는 자비를 실천하는 육체적 활동으로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 주며, 병든 이들을 돌봐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을 제안한다.

서정동 성당은 이 사항을 실천할 구체적 방법을 세웠다. 1-3월에는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를 실천하기 위해 성당 입구에 모금함을 마련했다. 지난 4월 5일, 주일 미사 때 신자들이 모금한 약 410만 원을 안성시 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에 전달했다.

▲ 성전에 걸린 자비의 희년 서정동 본당 실천 사항. ⓒ배선영 기자
8월에는 “병든 이들을 돌봐 주고”다. 성당 관내에 있는 요양시설 등 주변에 아픈 이들을 찾고, 구역별로 고리기도를 할 계획이다. 9-10월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며”는 교정사목 담당 신부와 논의해서 어떻게 도울지 정하려고 한다. 자비의 희년이 막을 내리는 위령성월 11월에는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이주민을 위한 생필품 마트는 올해 내내 운영한다.

문우관 서정동 본당 제분과위원장(아우구스티노)은 “각자 하려면 어렵고 안 하게 되는데, 본당에서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 준 것”이라고 했다. 성당에서 마련한 모금함에 참여하고, 안 쓰는 물건을 내면, 어려운 이웃과 이주민을 직접 찾지 않아도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주임인 이승제 신부와 수녀, 사목위원들은 지난해 12월 8일 자비의 희년이 시작되기 일찍 전부터 “자비의 얼굴”을 읽고  준비했다. 사목위원회가 큰 틀을 만들고, 설문조사를 통해 소공동체의 의견을 받아 실천방안을 만들었다.

이승제 신부는 “신부가 다 아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 내려면 묻고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들이 자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기 전이라 전체 신자의 의견을 묻고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사목위원 차원에서 이끌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우관 제분과위원장도 “실제로 실행하는 이들은 소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신부에게 신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묻자, 처음부터 모든 신자가 함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점점 동참을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종종 미사 때 실천하는 것들의 중간사항을 알린다. 그래서일까. 교육실 한 방에는 365 플러스마트로 향할 물건이 잔뜩 쌓여 있다.

서정동 성당의 신자 이백 씨(미카엘, 42)는 종교를 한정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를 돕기로 한 것을 보고 “신선하다”고 느꼈다. 그는 “자비가 하느님이 내려 주신 선물”이라며, 이렇게 나누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자 전영란 씨(마리아, 58)도 이런 실천이 자비의 해뿐 아니라 계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당의 노력으로 ‘자비’를 계속 생각하고 마음에 두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서정동 성당은 본당 차원의 큰 실천 말고도 ‘이웃을 보고 웃기’, ‘아픈 사람 부축하기’ 등 생활 속에서 하는 1일 1자비 실천하기도 독려하고 있다. 조별 단체톡방에 그날 실천한 것을 올리면서 서로 자극도 받는다.

김용태 사목회장(베드로)은 처음에는 귀찮지만 계속 실천하면 자비도 즐거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자비를 실천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쉽지 않은데, “자비의 희년은 하느님이 주신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라고 말했다.

▲ 지난 4월 5일 서정동 성당 신자들이 1-3월 모금한 돈을 안성시 푸드뱅크에 기부했다.(사진 제공 = 서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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