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1]“화.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명진출판사, 2002

2016년의 4월이 시작되었다.
겨우내 추위에 얼은 땅은 꽃샘추위까지 모두 겪어내고 결국은 새싹을 틔워내기 시작했다. 헐벗은 나무들 역시 새로운 잎과 꽃으로 단장한다. 그리고 춘분을 지난 햇살은 바야흐로 그 화사함으로 온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런데 만우절의 유쾌한 거짓말과 함께 시작되는 이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온 세상이 길어지는 봄볕에 무장을 해제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 생명에 대한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4월이 잔인한 달이라니....

우리의 역사에서 4월은 유난히 잔인한 사건들이 불거져 드러난 달이다. 달력에 기억되는 사건들을 꼽아보면, 4월 3일 제주사건, 4월 19일 학생혁명, 4월 9일 인혁당 처형사건,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이 있다.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919년 4월 5일, 삼일만세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가 저지른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었다. 위 사건들의 공통점은 죄 없는 민초들이 이유 없이 죽음을 당한 것이라 하겠다. 게다가 이렇게 죽은 이들의 영혼이라도 달래 줄 역사적 해결의 실마리는 지난한 세월이 지나서도 제대로 찾아지거나 풀리지 않기에 그 안타까움은 해묵은 나무의 껍질들처럼 켜켜이 쌓여 간다.

 ⓒ최우혁

유대교의 묵시문학 전통은 나라가 해체되고 로마의 속국이 된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사해 문서 '전쟁 두루마리'와 '제4 에스드라' 등에서는 하느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역사에 개입하시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종말론적 기대를 찾아볼 수 있다. 악인을 심판하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죽음에 이른 이들은 부활하게 될 것이란 기대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이들을 향한 종교적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 안에서 무력하게 죽은 예수 역시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가 은연중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아니 정의롭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예수가 그렇게 스러질 수는 없다는 항의와 그분이 부활해야만 한다는 무의식과 기대는 여전히 우리에게 신비로 남아있는 부활사건의 뿌리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예수의 시신을 찾으러 헤매고 다녔을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고서 마침내 부활의 실제성을 증언하였다. 그에 더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부활을 믿는 이들은 더욱 복되다(요한 20,29)는 부활한 그리스도의 선포는 부활신앙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부활은 제자들 안에 응어리진 두려움과 울분을 말끔히 씻어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부활한 이와 더불어 죽음 이후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아니 부활한 그리스도를 경험한 이들은 그 기쁜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2016년의 4월, 온 나라는 선거 유세로 법석인데, 정의를 외치며 응어리진 울분을 토하는 이들은 여전히 기약이 없이 길 위에 서 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대개가 국민을 위해서 일하려고 국회로 진입하려는 것이 아닌 것을 선거권을 가진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다. 인기투표 하듯이 국회의원을 뽑는 것에 희망을 걸 수 없는 사람들은 투표 거부로 의사표시를 할 태세다. 그럼에도 국회가 바뀌면 뭔가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나의 문제는 늘 그렇듯이 그의 손바닥을 긁어 가려운 내 등에 가져다 대는 것처럼 하릴없이 뒷전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온 나라가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다. 바닥에 구멍이 난 배처럼 스멀스멀 물이 새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울분을 토해서 해결될 수위를 넘어섰다!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면, 좌절해도 살아남기 위해서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서는 스스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이 위기의 순간에 다가온 한 권의 책이 고맙다. 베트남 출신으로 참여불교의 길을 설파하면서 평화의 길을 걸어가는 틱녓하인(틱낫한) 스님의 "화" 라는 책이다. 스님은 썩을 대로 썩은 나라가 망한 뒤, 망명길에 올라 프랑스 남부의 앙굴렘에서 '자두 마을'로 불리게 된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 마을에서 진정하고 소박한 평화의 삶을 배우기 위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 온다. 스님이 앞장 서 걷고 있는 길을 따라 함께 걸어 보자.

▲ "화”,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명진출판사, 2002 (이미지 제공=예스24)
우리에게는 분노와 고통이란 감정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사랑하고 이해하고 연민을 가질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늘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사실들을 잊지 않고 있으면 비가 내릴 때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온 세상이 어두운 채로 비가 내리고 있지만 때가 되면 다시 태양이 나타날 것이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101쪽)

화의 실체를 파악해서 그것을 끌어안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각의 에너지가 생성되게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138쪽)

나는 곧 타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것을 통찰하면 우리의 행복과 고통도 우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나의 고통이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다.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그것을 통찰하면 우리는 남을 비난하거나 응징하려는 심정의 유혹을 떨칠 수 있다. 그리고 훨씬 더 지혜롭게 행동할 것이다. 그 지혜는 깊은 사고가 맺어준 결실이다.(140-142쪽)

그러므로 남을 도우려면 먼저 자신과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신을 돕는 것이 곧 남을 돕기 위한 최우선의 조건이다. 자아라고 하는 환상은 어서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화에서 벗어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타인들까지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수련의 요체다.(143쪽)

참다운 수련자로서 우리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사태를 주시해야 하고, 전쟁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우리가 통찰과 깨달음을 갖고 있으면, 타인들도 똑같은 것을 통찰하고 깨닫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155쪽)

자각의 첫째 기능은 확인을 하는 것이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마음속이 화로 들끓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우리는 그것을 감싸 안을 수 있다. 화를 감싸 안는 것이 자각의 둘째 기능이다.... 자각의 셋째 기능은 화를 달래고 위로하는 것이다. 화가 아직 거기에 있지만 이제는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 (170-171쪽)

우리는 누구나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내놓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안에 한 명의 아기를 갖고 있다. 그 아기가 바로 부처다. 우리가 인류와 세계를 위해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아기 부처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 부처를 잘 보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늘 자각 속에서 살아야 한다.(202쪽)

우리 안에 있는 부처의 에너지가 우리로 하여금 참다운 사랑의 편지를 쓰게 해 주고 타인과 화해에 이르게 해준다. 참다운 사랑의 편지는 통찰과 이해와 연민으로 쓰여진 편지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의 편지가 아니다. 참다운 사랑의 편지는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서 변화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세상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타인에게서 변화를 일으키려면 먼저 나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편지를 쓰는 데는 우리의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201-203쪽)

틱녁하인 스님은 평생에 걸쳐 쓰는 편지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편지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 시대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썩어 넘어가는 나라를 보고도 구할 수 없었던 스님은 새롭고 작은 공동체를 모델로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 역시 그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길을 오롯이 걸어간 모델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년 전 봄, 한순간에 모든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마치 다시는 꽃을 피울 수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힘을 다해 피어난 것 같이.... 예감했을까, 그 아이들의 죽음을? 온 나라를 뒤엎을 것 같았던 그 화를 나무들은 진작에 알아서 꽃(花)으로 피워낸 것일까? 올해에도 꽃들이 다 함께 활짝 피었다. 잔인한 사월이다. 하늘을 향한 화려한 아우성 같다. 사월에 죽어간 억울한 이들의 영혼이 모두 꽃으로 피어난 것일까? 나무들은 겨우내 묵묵하게 추위와 바람을 겪어내고 결국은 살아나서, 스스로 그 고통에서 해방되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봄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워낸다. 그 고통을 조금씩 녹이며 미풍에도 흔들리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낸다. 스스로 화를 풀어내는 화해의 몸짓이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를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본다.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립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립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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