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서울시청에 기도천막 설치

유성기업 노조원 한광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9일 만에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하고, 천주교 등 종교계는 추모기도회 천막을 설치했다.

4월 4일, 서울시청 앞 임시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범시민대책위는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 현대차 자본 처벌과 한광호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싸움을 선언하고, 앞으로 범국민대회와 전국 노동자대회를 비롯한 집중행동기간을 갖고, 서명운동, 법률대응과 사회적 진상조사 사업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범시민대책위에 참여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등 72개 시민사회 단체들은 유성기업과 현대차의 노조파괴 행위에 대해,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살인교사 행위이며, 노동자들이 지켜 온 가치를 부수고, 노동인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사회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한광호 씨의 죽음에 대해 유성기업과 함께 현대차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노조파괴 자금 500억 원을 유성기업에 지원한 정황이 청문회에서 밝혀졌음에도 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면서, “한광호 열사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아서 죽은 것이며, 그는 유성기업, 현대차, 검찰 그리고 이 정부에 의해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광호 열사의 죽음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한 싸움은 유성기업만의 것이 아니라 노조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을 끝내기 위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 천주교, 개신교, 불교 3개 종단이 한광호 씨 추모를 위한 기도 천막을 마련하고, 첫 기도회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범시민대책위 출범에 이어 종교계 기도 천막 설치

이날 기자회견 뒤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3대 종단이 한광호 씨 추모 기도회 천막을 마련하고 첫 기도회를 열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가 함께 마련한 이 천막에서는 수시로 기도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19일째, 노동자들이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계가 우선 나서서 기도 천막을 만들기로 했다. 연대와 참여를 위한 물꼬라도 터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 “집회 신고가 수월치 않아 오래 지속할지 알 수 없지만, 다른 단체들과 연대해서 천막을 유지하게 될 것 같다. 분향소 설치를 위해 서울시에 다시 한번 청원해 볼 예정”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설명했다.

첫 기도회에 참석한 종단 관계자들은 한광호 씨의 죽음은 자본의 탐욕이 자행한 비극이라면서, 기도 천막이라는 작은 추모의 공간을 통해 억압된 인간의 존엄이 회복되고, 한광호 씨의 영혼이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광호 씨, 죽기까지 무슨 일을 겪었나

한광호 씨가 자살하기까지 지난 5년간 겪은 일은 유성기업 노조 탄압의 압축판이다.

1995년 말, 유성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한 그는, 1999년부터 2014년까지 노조 대의원을 지냈다. 2011년 5월 18일 유성기업이 직장폐쇄에 맞서 싸우다가 2011년 10월 복귀한 그는, 복귀 직후부터 사측의 견책과 징계, 2013년 사측 관리자에 의한 폭행 등을 겪었다. 그가 노조 대의원 활동으로 사측에 고소당한 것은 11건,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8건이었다.

사측 관리자들에 의한 감시와 처벌, 고소고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2014년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고위험군으로 판정받아 상담 치료를 받기도 했다. 2016년 3월 10일, 야간근무 중 근태관련 징계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받고, 3월 15일 동료에게 미안하다는 연락을 한 뒤 연락이 끊겼으며, 3월 17일 새벽 6시 40분쯤 목을 매 자살한 상태로 발견됐다.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은 노조가 2011년 주야 연속 12시간 2교대제를 주간 연속 2교대제로 바꾸라고 요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미 2009년 사측과 노조는 임금과 교대제 개선에 합의하면서,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은 회사 경영 상황 등을 감안해 2011년 1월 1일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기로 했지만,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12차례 교섭이 결렬되면서 노조는 2011년 5월 18일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측은 파업 2시간 만에 직장폐쇄를 했고, 이에 항의해 공장으로 복귀한 조합원과 가족 500여 명을 강제 연행하기도 했다.

"밤에는 잠을 자고 싶다"는 요구에 차별,  직장폐쇄 복수노조, 고소고발 등으로 답한 사측

2012년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의 탄압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014년 12월 대전고등법원이 2011년 유성기업 사측의 직장폐쇄, 복수노조 설립 등 노조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음에도 사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노조원들에 대한 사측의 괴롭힘, 노조 파괴 방식은 대표적인 복수노조 설립, 대표적인 노조파괴 업체인 창조컨설팅을 통한 현대차의 개입, 조합원들에 대한 잔업과 특근 배제, 승진 차별, 일상적이고 지속적 감시와 처벌, 고소, 고발 등이다.

한광호 씨의 동료였던 전 지회장 홍종인 조합원은 “유성기업 현장에서는 지금도 관리자들이 채증, 사찰을 하고 있으며, 화장실을 가고 물을 먹는 시간까지 감시당하는 가학적인 노무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지회장 시절, 자살을 시도한 조합원만 20여 명이었다. 조합원들이 중증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와 입원, 산재신청을 하고 있다. 왜 이렇게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실행까지 해야 하는지 알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한광호 씨의 동료들이 서울시청에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올라왔지만, 천막을 칠 수 없어 노숙 투쟁을 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한광호 씨 죽음 이후, 동료조합원들은 분향소를 차리기 위해 서울시청에 와서도 경찰에 의해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고 했다.

홍종인 조합원은 분향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경찰이 한 시간마다 개인 방한용품, 깔개, 비닐까지 빼앗아가고 그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했다면서,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겪은 일을 여기서도 겪고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꽃샘추위와 일교차로 이미 건강에 이상이 생긴 동료들도 있고, 쓰레기 봉지를 덮고 자기도 했다면서, “이렇게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비닐 한 조각이라도 덮을 수 있는지, 처참함에 무너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계가 기도천막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 “함께해 줘서 큰 힘이 된다”며, “내일 새벽부터 경찰이 또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동료들을 더 이상 잃을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곳에서 반드시 끝을 보고 한광호 동지를 잘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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