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위키드"]

“슈퍼스타 K”의 ‘악마의 편집’으로 이름난 <엠넷>에서 어린이가 경연자로 나서는 음악 프로그램 “위키드”를 만들었을 때 우선 염려하는 마음부터 들었던 게 사실이다. 재능 발굴과 자기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이제 어린이들마저 극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우려됐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즐길 자유마저 빼앗는 건 아닐지 걱정되기도 했다.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그들 방송사가 물론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았다. “위키드”는 청소년과 성인을 참가자로 하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달리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최대한 지웠다. 우선 참가자 개인 경연이 아닌 팀별 경연 방식으로 진행해 어린이 참가자들의 경쟁 부담을 줄였다. 매회 탈락자를 가려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모두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무대에 선다.

▲ 동요 "노을"을 부르는 홍의현 어린이(왼쪽)와 최예나 어린이.(사진 출처 = M.net 홈페이지)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의 시선들에 하나씩 응답하듯 “위키드”는 어린이들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과정에 있어서도 꽤 섬세한 조치를 취하는 듯 보였다. 무대 위에 서기 전 아이들은 ‘걱정 인형’에게 긴장되고 부담스런 마음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무대에서 실수할 경우에도 편안하게 다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긴 녹화 시간 동안에는 간식을 챙겨 주고 놀아 주는 보육교사와 함께한다고 한다. 어린이 배우에 대한 외국 규정들-학교 수업을 들어야 하고 하루 몇 시간 이상의 촬영 시간은 넘기지 말아야 하는 등-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어린이의 권리를 나름 배려하는 노력들이 눈에 띄었다.

“위키드”의 제작진이 밝힌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두 가지 정도다. 첫째, 어린이가 부를 만한 노래가 없고 들을 만한 노래도 부족한 현실에서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음악을 회복하겠다. 둘째, 아이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어른들도 듣고 싶은 음악을 보여 주겠다.

첫 번째에 대해서는 어린이들의 문화와 노래에 관심을 가져 온 이라면 선뜻 동의하며 반기는 바일 테다. 제작진의 지적처럼 요즘 아이들은 어른을 흉내 내며 어른의 음악을 소비한다. 유아에게는 애니메이션 주제곡, 초등학생에게는 가요가 가장 널리 친숙하게 접하는 노래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노래를 줄 수 있을까. 다음 주 목요일 최종회에서 공개될 대중음악 작곡가들의 ‘창작동요’가 제작진이 찾은 해답 하나를 제시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껏 방송을 보면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 같아 보인다.

▲ 청중인 어른과 아이가 동요를 듣고 그 노래가 좋다고 여길 경우 단추를 누르면 사진에 나온 것처럼 원이 불빛으로 채워진다.(사진 출처 = M.net 홈페이지)

지난주와 이번 주, 두 차례에 걸친 ‘레전드 동요 대상’ 순서에서는 새롭게 편곡된 ‘오빠 생각’과 ‘반달’을 들을 수 있었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동요를 편곡하고 아이들이 직접 쓴 가사로 2절을 만든 작업은 무척 신선해 보였다. 그런데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이 아이들조차 대중음악 양식으로 새롭게 편곡된 동요를 부르는 걸 처음에는 좀 어려워했다.

아이들이 부른 노래에는 산울림의 ‘안녕’도 있었는데 산울림 멤버인 김창완이 “‘안녕’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노래 가사의 의미를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이를 보고 “아이들에게 원하는 게 너무 많다”고 했지만 과연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어떠해야 할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전국민 동심저격 뮤직쇼”라는 문구를 내건 “위키드”는 한편 어린이들의 목소리와 노래를 통해 어른들이 위안 받을 수 있는 ‘힐링 뮤직쇼’를 추구한다.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걸 보면 마음이 한없이 환해지기도 하고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6-7살 가장 어린 참가자들의 귀여운 무대는 늘 어른 심사위원의 높은 점수를 받는다. 세월호참사 추모곡으로도 사용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듣고 그 어떤 목소리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마음의 떨림와 위안을 느꼈다는 어른들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 "위키드"에 쌤으로 출연하는 (왼쪽부터) 배우 박보영, 가수 타이거 JK, 배우 유연석.(사진 출처 = M.net 홈페이지)

때로는 아이의 목소리가, 즉 아이가 어른들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고향의 봄’을 부르는 꾸밈없는 목소리를 타고 그리움의 물결이 밀려오는 건 어쩌면 아이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위안을 아이에게서 구하기 위해 아이를 어른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른들이 이 험한 세상의 위안으로 아이들에게서 ‘동심’을 얻고자 할 때 아이의 존재가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동심’이라는 단어는 늘 ‘순수한’, ‘순진무구한’, ‘천진한’, ‘티 없는’, ‘맑은’ 등의 수식어와 함께 사용된다. 어른이 사랑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늘 민감하게 반응하고 향하는 아이들이 어른이 원하는 그러한 색깔의 ‘동심’을 갖추기 위해 저만의 존재에 가면을 드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슬픈 사람을 치유하고 위안해 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한 참가자 아이의 소망은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들린다. 그것이 오직 그 아이 고유의 소망이길 멀리서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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