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완공 앞둔 강정마을 이야기

2월 26일 제주 해군기지 준공 뒤 한달 여. 제주 강정마을에도 부활이 찾아왔다.

몇 달 만에 찾은 강정 마을은 지도 자체가 바뀌어 있다. 십 여개의 해군 숙소동과 기지는 물론, 돌고래 바닷길을 장악한 항만 시설, 마을 쪽으로 뻗은 새 도로는 마치 신도시 하나가 들어선 듯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뿐만은 아니다. 마을 곳곳에는 공사를 위한 차량이 돌아다니고, 기지 관련 인구도 늘어난다. 하나뿐인 초등학교에는 벌써 교실 하나가 늘어날 정도로 전학생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매일미사와 그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오전 11시 매일미사는 같은 자리에서 봉헌되고 있고, 미사시간 전후를 지키는 마을 주민과 평화 활동가들도 그 자리에 있다. 정문 앞 풍경은 바뀌었지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2-3번 씩 사람들을 들어내는 경찰들도 여전하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잊지 않고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이어진다.

▲ 완공된 해군 관사를 뒤로, 강정 생명평화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잊지 않은 이들 덕분에 강정은 외롭지 않다. ⓒ정현진 기자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야 43, 18-19)

28일, 부활을 갓 지낸 강정마을에 엠마오 순례객들이 찾았다. 이날 미사 주례를 맡은 예수회 김영근 신부는 “우리는 강정에서 누구를 찾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부활해서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가 아니라 재판받고, 십자가와 쓰러지고, 못박혀 죽은 예수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강정에서 지내는 부활의 의미를 물었다.

김 신부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 왔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을 만난 뒤, 부활을 전하러 돌아가는 것처럼 그 시선을 돌리자”고 청했다.

그는, 부활해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예수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초대하고 있지 않은가라며,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는 절망, 다 끝났다며 등 돌리는 모습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보이는 세계에 마음과 눈을 열자”고 당부했다.

미사에 참여해 온 한 강정마을 주민은 “일 때문에 매일 오지는 못해도, 짬이 나면 참여하고 있다”면서, 기지 준공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 다 지어졌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고, 와서 기도할 뿐”이라고 답했다.

▲ 800여 일,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를 위한 삼보일배를 해 온 오철근 씨. 그는 해군기지가 들어섰지만 삼보일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홀로 삼보일배를 진행하는 오철근 씨. 그는 2011년부터 강정 해군기지 건설 현장 앞에서 삼보일배를 해왔다. 미사 내내 절을 하며, 기지 주변을 돌던 그는, 해군기지 완공과 관계 없이, 계속 삼보일배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해군기지가 허물어질 것이고, 그것은 끊임없이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기운으로 이뤄질 것이라면서,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계속 말하기 위해서,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서, 해군기지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해군기지는 들어섰지만, 강정의 삶은 계속 된다. ⓒ정현진 기자

해군기지 준공식이 열리던 지난 2월 26일.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강정마을을 ‘생명평화문화의 마을’로 선포했다.

강정 주민들은 이날, “해군기지는 주민들의 인권과 자연을 짓밟은 무자비한 국가폭력 앞에 세워졌지만, 지난 9년의 싸움은 국가폭력에 맞선 평화의 역사”라면서, “해군기지가 준공됐지만, 강정은 해군기지 마을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마을로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살아가고 있는 예수회 김성환 신부도 이에 동의한다. 3월 28일 만난 김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생명평화문화의 마을 선포식은 그날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랜 진행형”이라며, “이곳에서 해군기지가 물러날 때까지 살아갈 것이며, 군사기지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 평화운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1년 9월 미사를 시작할 당시에는 해군기지 건설 중단에 지향을 뒀지만, 어느 순간 막지 못한다면 이 군사기지가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200년 이상 유지되는 군사기지는 없다. 더구나 강정 해군기지는 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다음 세대라도 기지가 없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개관한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도 그 중심축이다.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위한 치유, 교육을 위한 센터이기도 하지만, 군사기지를 비롯한 반 평화 상황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염두에 뒀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 평화교육과 치유작업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김성환 신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동반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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