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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2[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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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5  14: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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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의 실제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읽는 성서는 우리를 성서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준다. 지금까지 기득권과 현상 유지의 측면에서 성서를 바라보고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성서 이해를 갖게 만들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며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행동하고 생동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러면 성서를 읽게 될 때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생기는 것일까?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를 읽을 때 먼저 생기는 일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동체 의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서는 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서 유대인들의 공동체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성서 읽기에서 공동체 의식 형성으로의 발전은 매우 자연스러운 단계다. 두 번째, 공동체 의식의 회복은 민중을 위한 섬김과 헌신으로 발전한다. 성서 읽기가 단순한 읽기 혹은 의식의 변화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위한 실천적 행위와 행동 그리고 헌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삶과 함께 하는 참여적-실천적 행위는 결과적으로 성서 이해의 깊이를 더해 가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읽는 성서는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이해하기’-‘공동체 의식의 회복’-‘참여-실천적 행동으로서 민중 섬기기’의 세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것은 해석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단계가 반드시 순서대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요소가 가난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삶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상황, 역사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정해진다. 그럼에도 위의 세 가지 요소는 어느 하나도 배제되지 않는 요소들이다. 세 가지 요소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자.

1. 성서 이해하기
성서 읽기는 단순한 성서 공부에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적 의식 속에서 기도와 찬양을 통해 성서 읽기에 참여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성령의 움직임을 경험한다. 그러한 성령의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벗겨지는 경험을 한다.(2코린 3,12-17) 그리고 그들은 성서 텍스트와 자신의 삶의 경험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실감한다.

2. 공동체 의식 회복과 형성
공동체 의식의 회복은 성서 읽기를 통하여 마치 샘물이 터지듯 생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공동체 의식은 읽기 참여자들로 하여금 언제나 그리고 또다시 성서의 말씀을 향하게 한다. 성서 텍스트는 그들의 공동체를 존재케 하는 기본적 전제로 자리매김한다. 성서의 텍스트에 대한 신실성은 공동체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하고 그들의 상황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는 해방신학을 존재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해방신학의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헌신은 이 같은 성서의 말씀을 향한 신실함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민중에 대한 헌신
삶의 변화를 향한 민중의 헌신은 기초공동체가 민중운동에 가담하고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정치적 행위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상황 변화를 위한 정치적 행위를 마다하지는 않는다. 민중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 정치적 행위는 행위로 끝나지 않고 또 다시 성서의 텍스트로 향하면서 깊은 해방의 영성적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럼에도 공동체 안에서 어떤 경우에 각각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성서 읽기의 세 가지 요소 중 특정 요소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도 생기며 이것은 그들 안에서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구성원들은 대화를 통하여 긴장을 완화시키며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성서의 해석은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독단적 해석의 가능성이 줄기도 한다. 위의 세 가지 요소는 매우 역동적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각각의 요소는 다른 요소에서 비롯된다. 각각의 요소는 다른 요소를 전제하고 있으며 또 다른 요소를 형성하도록 하면서 상호 간 매우 역동적 관계를 이룬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요소 간에 다른 요소를 배제하려는 시도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에서 이 세 가지 요소 간에 이루어지는 균형은 필연적이다.

성서 읽기의 위험성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은 성서를 인용한다. 근본주의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그러하다. 믿는 이들을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들 성서를 읽고 성서의 말씀대로 산다고 주장한다.

성서의 이름으로 근본주의자들은 세상을 향하여 교회의 문을 열기를 거부한다. 현실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성서의 이름으로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성서 읽기를 통하여 더욱 더 보수적, 근본적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성서를 보급하고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삶의 현장 특히 공동체의 상황과 민중을 향한 헌신을 고려하지 않는 성서 읽기는 매우 이중적 모습의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불의한 세력에게 정당성을 주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토착민 학살의 경우와 아프리카 흑인 노예 매매는 물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은 이러한 성서 읽기의 오류의 가장 분명한 실례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의미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지나친 정치적 읽기는 어떤 경우에는 우리는 성서 공부와 기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 읽기의 세 가지 요소의 균형 잡힌 적용은 성서의 풍요로운 의미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민중의 삶의 현장과 성서 텍스트 간에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대화와 연관성이다. 성서 텍스트가 삶의 현장과 연관되어 있고 삶의 현장으로부터 성서를 읽어 가게 될 때 성서 읽기의 오류의 가능성은 상당 부분 줄 것이다. 성서와 삶의 현장의 지속적 대화는 성서 읽기의 이중성을 해소하는 데 필수 요소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성서 텍스트와 삶의 현장 대화

브라질의 한 기초 공동체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기초 공동체는 극빈자들의 공동체였다. 성서 읽기에서 레위기 11장 7-8절을 읽었다. 이 구절에는 돼지고기는 부정한 음식이므로 먹지 말라는 명령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돼지고기는 이 지역의 가난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음식이었고 그리 비싸지 않은 관계로 이들이 매우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돼지고기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따라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그들 안에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결론에 이르렀을까?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에게는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신다. 사막은 물이 부족한 곳이다. 물이 부족한 관계로 위생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돼지고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과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금지시켰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상황은 당시 사막에서 살던 그들의 상황과는 다르다. 우리들은 돼지고기를 어떻게 요리하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돼지고기는 우리들의 자녀들의 단백질 공급을 위한 유일하게 값싼 음식이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오늘 우리들에게 돼지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이들의 논리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돼지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결과의 도출은 정당하다. 이처럼 성서의 텍스트를 삶의 현장과 연관시키고 대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텍스트와 삶의 현장 사이의 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방법론에 대하여

성서 읽기의 방법론은 성서 읽기에 대한 단순한 기술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성서 읽기의 요소들이 역동적으로 연결되고 이로 말미암아 성서가 오늘의 삶이 현장을 향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1. 현실로부터 출발하기: 가난한 사람들은 성서를 자신들의 삶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읽고자 한다. 그들의 실제 문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찾고자 한다. 이러한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읽기는 그들로 하여금 성서가 매우 친숙한 책임을 알고 깨닫게 해 준다.

2. 공동체의 신앙으로부터 출발하기: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는 우리 사이에 살아 계신다.”라는 공동체의 신앙으로부터 성서를 읽고자 한다. 성서 읽기는 그들로 하여금 공동체적 신앙을 형성하도록 만든다. 그들은 공동체의 삶을 통해 성서를 거룩한 책으로 읽기 시작하며 그로 인하여 성서 읽기는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데 있어서 자유로움을 경험하도록 한다.

3. 성서 텍스트 존중하기: 가난한 사람들은 성서 텍스트를 존중한다. 어떤 경우에는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려고 시도한다. 성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부족을 그들의 행위로 만회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행위로 실천한다.

결국 이러한 성서 읽기의 궁극적 목표는 오늘의 상황에서 하느님 말씀 듣기로 귀결된다. 이것이 ‘민중 성서 읽기: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의 최종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의 공헌

1. 과거 사건의 의미를 찾고자 함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서 그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2. 해석의 주체는 해석자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성서 해석에서 공동체의 모든 일원이 참여하게 만들어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한다. 공동체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도록 장려한다.
3.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눈으로 성서를 읽게 함으로써 성서 읽기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을 극복하도록 도와 준다.
4. 성서와 삶의 현장을 연결함으로써 성서 읽기를 해방적이 되도록 한다.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성서 읽기를 가능하게 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성서 읽기는 필연적으로 해방적이 되어야 한다.

이미 성서는 우리 삶의 등불이며 영감의 원천이다. 성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유일한 삶의 척도다. 그러므로 성서 읽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형태의 삶을 사는가는 어떻게 성서를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의 성서 읽기는 주로 다음과 같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째는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울타리다. 많은 경우 허공을 맴돌다 땅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하느님의 말씀이 되곤 한다. 둘째는 교리적 차원이다. 성서의 의미를 교리적으로 해석함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교리 안에 가두기도 한다. 해석의 자유가 없어짐으로써 그 의미의 풍성함을 잃기도 한다. 셋째는 이데올로기적 울타리다. 성서를 특정 체제의 기득권 수호와 현상 유지를 위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이 같은 울타리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서를 점차 우리의 삶과는 큰 관련이 없는 책으로 만들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 성서 읽기: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 읽기’는 성서를 이러한 울타리를 극복하여 우리의 삶에서 살아 있는 하느님의 음성으로 읽히도록 해 주고 있다. 이처럼 성서는 해방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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