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5]

우리 동네 산과 들에는 냉이며 달래가 지천이라고 했다. 하루는 현관문 유리창에 코를 대고 밖을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마을 어귀 집 할머니가 어린 손녀딸을 데리고 냉이 캐러 간다며 지나가셨다. 때가 벌써 3월 하고도 중순이다. 나는 ‘캬, 냉이! 된장국에 넣으면 향긋한데!’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냉이는커녕 잡초 뽑을 시간도 못 낸다.

겨우내 잠잠하던 잡초도 봄이 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당에 초록을 켜는데 말이다. 어린 잡초 잎싹은 ‘이것은 금잔디?’라는 순간 착시를 일으키는 위장술을 부리지만 언제 그 악마 같은 본성을 드러내고 마당을 눈 깜짝할 새 잡초 천지로 만들지는 두고 보면 알 터이다.

어찌 됐건 내가 마당을 비롯해, 우리 동네 산과 들을 오가며 쳐다만 보고 사는 건 어린 자식들 수발하느라 바빠서가 아니겠는가.... 변명하려 해도 차를 타고 꽤 나가야 하는 시내 마트에는 용을 쓰고 잘도 가니, 이런 나를 작가 알베르 카뮈가 보았다면 그의 ‘부조리’ 문학에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될 판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뮤즈가 되지는 못하는 게 마트에서 냉이 한 봉지, 쑥 한 봉지를 선뜻 고르지는 못한다. 흙이 털린 채로 스티로폼이나 비닐과 짝꿍하여 깔끔하게 포장된 마트의 나물은 동네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나물 쇼핑에 취약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나물로 태어나 이만하면 됐다는 식으로 이마에 가격표를 붙이고 새침하고 다소곳해진 나물거리를 볼 때마다 양껏 퍼 주고도 언제나 넉넉한, 때 묻은 할머니의 나물 바구니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야말로 나에게 삶의 영감을 주는 뮤즈들인데, 그분들이 일하시는 걸 나는 불량스레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어깨 너머로 종종 보았다. “이게 뭐에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하는 바보천치 같은 물음을 입에 달고서 말이다. 할머니는 땅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걷어 오시고 나서도 이를 갈무리하느라 곱절로 애를 쓰셨다. 다듬고, 삶고, 말리고, 가루 내어 음식을 만들고 일부는 저장을 해 놓으신다.

그 일련의 과정은 하루 종일, 혹은 며칠에 걸쳐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할머니는 ‘시골서는 죽어야 일이 끝나는겨.’ 하시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으셨다. 끝없는 시골 일거리에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시면서도 꼭 자식들 것까지 챙기시는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도시에 사는 우리네 자식들이 밉고 야속했다. ‘치, 이렇게 해다가 바리바리 보내 줘 봤자 ‘사 먹지 않아도 되니(돈 굳어서) 좋네’ 하고 받겠지?(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속의 정성과 노고를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반이라도 알겠어?(내가 몰랐던 것처럼)’ 하는 심보에서였다.

물론 나 또한 많은 공을 들여 음식을 차려 내는 것은 엄두조차 못내는 반 푼수긴 해도, 그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음식들이 우리 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음을 느낀다. 전국 방방곡곡 할머니들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20살을 못 넘기고 돌아가실 테고, 우리 엄마들도 늙어서 다 죽고 말면 큰일이다. 왜냐면 나물 캐고 삶아서 반찬 만들 줄 모르는 나 같은 엄마 사람이 득세한다면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 사느냐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무얼 먹고 자라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 무얼 먹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마트에 가서 채소 코너의 냉이를 그냥 지나친다.

그것은 내가 먹어야 하는 음식이면서도 땅에 허리 숙여 절하고 무릎 꿇어 가며 얻은 것만을 주로 잡수시는 우리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시골에 오고서도 먹을 거리를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부끄러워 그런다. 그리하여 올해 나의 된장국엔 봄나물이 실종되었다. 대신 아침마다 엄마 손을 놓고 그 품이 아쉬워 우는 아이의 울음 소리가 집 마당에서부터 유치원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 길가마다 봄나물처럼 돋아났다. 나는 파릇파릇한 욜라의 울음을 아침마다 뜯어서 국에도 넣어 먹고 생으로 무쳐 먹었다. 아침마다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욜라의 유치원 적응기. 아직은 현재 진행형인 그 순간들을 따라가 보자.

▲ 유치원 가는 욜라. ⓒ김혜율
욜라에게 유치원은 애초에 놀이 동산 같은 곳이었다. 메리의 유치원 가방 속에 가끔 들어 있는 사탕과 캐러멜을 얻어 먹으며 유치원에 대한 꿈을 튼실히 키워 나가던 욜라는 제 누나가 유치원에서 가져오는 온갖 진귀한 신문물(정체불명의 공작물들, 그림들, 종이딱지 같은 것)에 매혹당했고 그럴 때마다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날만을 고대해 왔던 것이다. 언제는 어린이집이라도 보내 줄 것처럼 하던 엄마마저 마음을 바꿔, 아예 다섯 살 형님이 되면 유치원에 보내 주겠다고 선포했던 탓에 욜라는 갈수록 유치원에 가고 싶어 애를 태웠다.

그렇게 다섯 살이 되도록 집에서 빈둥거리며 마당에서 흙 파고, 물 뿌리고, 불장난 하며 놀던 욜라는 올해 드디어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유치원 첫날, 나는 유치원에 간다고 들뜬 욜라를 위해 유치원 에이스들이 입을 법한 패션을 고심해서 제시해 보았다. 블랙 앤 화이트로 모던하게 가되, 북유럽스타일하면 빠질 수 없는 큼직한 별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로 톡톡 튀는 감성을 가미하였고, 머리는 고데기로 곱슬하게 말아 번듯한 귀공자같이 꾸며 주었다. 부쩍 출중해진 욜라 외모를 접한 직계 방계 가족들은 ‘강원도서 원빈 났듯이, 충청도서 욜라 났다’며 감격해 했고 내가 봐도 맨날 흙만 파던 욜라가 키즈 카페에서 노는 아이 같아 보여서 깜짝 놀랐다. 그러나 거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욜라는 그날의 패션에 화룡점정을 찍듯 붉은색 렌즈의 패션 선글라스를 꺼내 왔고, 나는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한겨울에 여름 샌들을, 한여름에 털장갑을 끼는 족속들인 것을 알고 있기에, 그대로 욜라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강남스타일’이 된 욜라는 뒤도 안 돌아보고 아이들과 섞여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무슨 괴물 뱃속으로 들어간 것도 아닌데, 욜라와 아이들을 꿀꺽 삼키고 잠잠해진 유치원 건물을 보자니 가슴이 콕콕 쑤셔 왔다. 이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엄마 품안을 떠나나 보다. 엄마가 없는 그곳에서 아이는 아마도 무수히 넘어지고 길을 잃고 헤맬 것이다. 힘들고 혼란스럽고 아파할 것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것은 아이가 만드는 자신의 왕국을 짓는 일, 그 속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과정인걸. 엄마는 그저 아이 내면의 힘을 믿으며 응원해 줄 뿐이다.

그날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온 욜라는 의기양양했던 아침과는 달리 뭔가를 사색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침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 가방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늘 욜라가 바지에 오줌을 쌌어요. 오줌 누고 싶다고 해서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누이고 보니 바지에 오줌이 조금 묻었더라구요. 그래서....”

헉. 욜라를 돌아보니 자기는 모르는 일인 양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욜라가 원래 많이 과묵한 편인가요? 말을 거의 하지 않더라구요.”

또 헉. 욜라가 재잘재잘 아기 참새같이 떠드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욜라가 중간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긴 했는데, 울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점심 시간에 밥 안 먹고 집에 간다고 해서 제가 엄마한테 전화 거는 척을 했어요. 일부러 들으라고 큰소리로 ‘욜라 엄마~ 유치원에 오세요~ 그런데 급하게 오시면 자동차 사고 나니까 천천히 오세요. 욜라는 그 사이에 밥 먹고 놀면서 기다릴게요.’ 했어요. 그랬더니 잘 놀다 갔어요.”

그랬구나, 욜라.

그날 나는 욜라에게 되도록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리던 유치원이었어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처음이다 보니 낯설고 부끄러웠을 것이다. 급하게 화장실로 가다가 오줌까지 지린 욜라는 친구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고 집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욜라는 그날 저녁밥을 거의 먹지 않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욜라는 이번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집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대뜸 제 할머니 발을 걸어 쓰러뜨리더니 “으하하하. 이 겁쟁이들아! 까불지 마라.”한다. 유치원에서 친구가 한 말을 따라하는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저런 말을? 궁금해 하는 찰나, 메리가 옆에서 “엄마, 욜라 반에 뚱뚱한 동생이 있는데 나보다 더 커! 그 애가 욜라 꼬집고 막 때리고 괴롭혔대.” 하고 제보를 한다. 나는 바로 벌떡 일어나 인터넷을 켜고 유치원 사이트에 접속해 사진 게시판을 열어 보았다. 과연.... 한 아이가 있었다. 몸집이 다섯 살 아이 두 명을 합친 것 정도 되는 우량한 사내아이로 파르라니 짧게 자른 잔디 머리와 형형한 눈빛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아이는 한때 씨름판의 황제, 강호동을 연상케 했다. 아이 사진을 본 남편도 부모가 호적에 늦게 올린 실제 7살 아이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운명의 장난인 듯 그 아이는 그나마 덩치가 좀 있는 욜라의 놀이 짝궁이었다. 유치원에서 찍은 사진마다 욜라의 바로 옆에 리틀 강호동이 있었고 ‘친구를 안아 주어요’ 제목의 사진에선 욜라는 표정이 언 채 리틀 강호동의 품에 폭 안겨 있었다. 유치원에서 욜라를 지켜 주도록 임무를 받은 메리조차도 리틀 강호동에겐 감히 범접을 못하고 있으니 과연 욜라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욜라의 유치원 생활적응기 to be continued....!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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