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신부의 '환대의 집' 여행-3] 미국 대학생을 만나다 2

3월 8일과 10일 맨해튼 칼리지와 유니언 신학대학, 포덤 대학에서 강연이 이어졌다.

맨해튼 칼리지는 1963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중 발표된 회칙 ‘지상의 평화’의 영향으로 평화학을 대학의 공식 과목으로 채택해 오늘날까지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고 있다.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대참사와 대량학살) 센터’가 학교 안에서 운영되고 있고 학생들 중 군에 복무해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위한 치유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번 강연 역시 3월에 진행되는 ‘PEACE WEEK’ 프로그램의 하나로 문정현 신부와 가톨릭일꾼 운동의 마사 헤네시가 공동 강연자로 초대되었다.

유니언 신학대학에는 정현경 교수가 “평화는 가능하다”라는 주제의 평화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번 학기 이들은 미국의 군사주의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해 오고 있었다. 마침 미 육군 대령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전역 뒤 반전 운동을 하고 있는 앤 라이트가 초대되어 미 군사주의에 대해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정현경 교수는 문정현 신부가 미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 문 신부를 초대했다. 강정에도 여러 차례 방문한 앤 라이트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했다. 특히나 미국 정부는 민간인의 희생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지속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두 학교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이미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고 배움을 통해 비폭력 평화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문 신부의 이야기에 웃고 울며 진지하게 강연에 함께 했다. 평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그를 초대한 맨해튼 칼리지의 케빈 교수는 강정의 거리 미사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고 “강정의 거리 미사는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벌였던 그때 우리들과 똑같다”며 “강정에서나 여기에서나 비슷한 경험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디서나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비슷한 점들이 있다. 학생들은 강연이 끝난 뒤 문 신부가 40년 이상 현장에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또 평화로 가는 방법에 대해 공통적으로 물었다.

▲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강연 도중 몸을 푸는 문정현 신부와 학생들.(사진 제공 = 한선남)

“외할아버지 품에서 자라면서 순교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역사 역시 순교의 역사이지요.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그것이 저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아요. 여러분은 더 큰 기지, 새로운 무기, 많은 군인이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나요?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한다면 뭐가 남겠습니까? 평화는 평화로써 지켜질 수 있어요.”

누구나 말하는 원론적 이야기이지만, 40년을 길 위에서 살아온 노사제의 말에는 파급력이 있다. 오랜 현장 경험 속에서 결국은 비폭력 직접행동만이 우리가 가야 할 방법이라는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현장에서의 투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될 때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감정이 공유되고 노 사제의 절절한 외침이 전염되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강연이었던 포덤 대학에서의 강연은 다른 학교에서의 만남과는 무척 다른 분위기였다. 포담 대학에 초대한 에릭 교수는 강연 시작 전에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해군도 있고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던 학생도 있다”고 했다. 포덤 대학은 예수회가 설립한 천주교 학교로 특별히 ‘애국심’이 높아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많은 학교라고 한다.

문정현 신부는 어린 시절 미군이 자신을 목표로 총을 겨눈 이야기부터 시작해 제주도에서 벌어진 4.3학살, 불평등한 SOFA로 두 여중생이 장갑차에 깔려 죽었을 때 미군을 처벌할 수 없었던 이야기, 강정에 짓고 있는 해군 기지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군 기지임을 역설했다. 그는 미국의 정책을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강연장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돌았다.

강연이 끝난 뒤 질문이 이어졌다. “당신의 이야기는 예수의 말씀으로서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세상에서 전쟁이 없어질 수 있는가? 전쟁은 역사적으로 있었고 앞으로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던진 한국계 남학생은 “할머니에게 들었을 때 미군이 물론 잘못을 저지른 부분은 있지만 한국을 해방시켰다고 들었다.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사실이 아니냐?” 그는 또,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아프간 전장에서 죽은 내 친구들은 무엇이냐? 당신은 전쟁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강연에 참여한 가톨릭일꾼 운동의 카르멘은 “미국의 전쟁은 모두 나쁜 전쟁이었다. 모든 점령국을 억압한 전쟁이었다.”며 “그것은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연장에 있던 학생 중 일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전쟁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테러를 종식시킨다는 미국 정부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고 군에 복무하기도 했던 학생들에게 그것은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었다는 말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일 것이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이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테러와 싸우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것은 9.11테러 이후 더욱 공고해진 미국의 ‘국가 중심의 안보’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 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문정현 신부는 미국 사회의 일반적 인식에 도전했고, 일부 학생들은 그에게 도전했다.

▲ 3월 10일 포덤 대학에서 강연 뒤 학생들과 함께 한 문정현 신부(앞줄 가운데).(사진 제공 = 한선남)

한때, 강연장은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문정현신부는 차분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제주는 4.3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습니다.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고 비무장 평화의 섬을 선언했지만 해군기지가 완공됐습니다. 큰 기지, 새로운 무기가 평화를 가져오나요? 지난 40년 동안 길 위에서 있으면서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폭력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비폭력적으로 평화의 길을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토론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내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 폭력을 없애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뜨거웠던 강연이 끝난 뒤 문 신부는 강연 중 뛰쳐나간 학생을 염려했다. “내가 겪은 경험이 거짓이 아니거든, 그런데 그 학생이 자기 친구가 전쟁에서 죽었다며 그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죽음이냐고 물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어. 진실은 진실인데. 그 아이도 상처가 있는 거거든. 사실은 국가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데, 그들이 전쟁에 참여한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닌데. 시간을 많이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문정현 신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미국의 대학생 그룹이었지만 평화를 지지하고 그것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그의 강연을 통해 미국 사회를 돌아보고 있었다. 점령국의 시민으로서 깊은 우려를 표했고 문 신부의 활동을 지지했다. 하지만 국가가 말하는 것, ‘정의로운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신념으로 알고 있던 학생들에게 그의 강연은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문 신부는 평화는 평화로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임을 50년 사제의 길을 통해, 팔십 년 인생을 통해 역설했다. 평화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그 씨앗이 언제 어떻게 자라나 열매를 맺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씨앗을 키워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기고 지는 것 보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 맴돈다. 오늘의 강연을 통해 사람들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문 신부는 온 몸으로, 온 인생으로 평화의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언젠가 드러나는 진실처럼 그 작은 씨앗도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가져 본다.

한선남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화활동가 단체 ‘평화바람’에서 일하며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해 왔다. 현재는 강정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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