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을 넘기고 4년 차에 들어섰다. 청와대는 출범 3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그 치적을 정리한 정책 모음집을 발표했다. 박근혜, 새누리 정권의 자화상이다. 박 정권의 자화상은 그 매력점(?)으로 평화통일 기반구축,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작전지휘권 전환 연기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무래도 좀 지나친 자화상 같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권임을 돋보이게 한 과대평가라는 느낌이다. 경향신문은 이를 빗대 '박근혜 정부 3년 치적 자랑 부끄럽지 않나'라는 사설을 실었다.(2월 25일)

지난 3년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나빠졌다. 박근혜 정권은 김대중 정부가 어렵사리 조성해 놓은 남북한 동족이 함께 일하는 유일한 공동작업장 개성공단을 지난달 10일 문을 닫아 버리게 만들었다. 그래 놓고 어떻게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다시 국정화 체제로 복원시켰다. 역사학자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박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해부터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바뀌는데 새 교과서에서 일본군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 문제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계엄군의 행적이 누락돼 있는 것이 발견됐으며 그래서 광주 교육청이 “역사교육 바로잡기”에 나섰다는 보도다. 박근혜-새누리 보수정권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때부터 의심했던 음모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한국 보수정권의 성격에 대해서 민주주의자들이 불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대목이다.

▲ 최근 출범 3년을 맞이한 박근혜 정부가 '3년 정책 모음집'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정화 교과서 내용 말고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합의한 위안부 문제의 여파로 두 외교장관이 “불가역적”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면서 합의 내용의 불변을 강조했지만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으로 사과의 뜻은 밝혔지만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탓에 그 해석을 놓고 양국 정부가 다른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그걸 부인하거나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역시 정부가 뭔가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 한일 정부 간 합의에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배상도 권고하고 있다. 이는 한일의 위안부 문제 합의가 인권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점으로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일 뿐 아니라 한일 합의 직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말한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자신들도 한일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며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외교의 무능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일 뿐 아니라 한국 외교의 치욕적 사건이다. 어찌 이것을 박근혜 정부의 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평가를 한 청와대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지면상 자세히 언급하기 어렵지만 전시작전권 문제도 자랑할 문제는 못된다.

따라서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별로 칭찬할 만한 치적을 찾기 힘들다.

문제는 앞날이다. 얼마 전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법을 어겨 가며 이 문제를 직권상정했다. 그동안 고 이만섭 의장을 정신적 멘토 삼아 국회를 공정하게 운영하겠다고 다짐한 정의화 의장이 제19대 국회 임기를 두 달 남겨 두고 역사에 씻지 못할 실책을 범했다.

테러방지법이 어떤 법인가? 대선에 개입하고 대선 개입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찍어 내기 위해 혼외 아들의 존재를 알아내 친정권 신문에 흘려 총장을 몰아내는 데 “지대한 공로”를 세워 정권의 호위조직으로 전락한 국정원에 국민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억압할 칼자루를 쥐여 준 법이다.

게다다 이제 사이버 테러방지법까지 제정하라고 국회의장을 또 압박하며 북한이 사이버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친정권 보수언론과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공영 아닌 관영(官營) 방송이 공포분위기를 일으키고 있다.

정보기관이 비밀을 다루는 기관으로 타락하면 민주주의는 정부기관의 여론 몰이에 농락당할 위험이 크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수재 분석가 에드워드 스노든은 이 기관이 수억 미국인의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헌법이 선언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말겠다는 위기감에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망명을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는 그를 간첩죄로 또는 배신자로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진의가 많이 이해됐다. 그리고 전직 고위 정보기관 간부들은 그에게 '정보윤리'상을 수상하도록 추천했다. 이것은 정보기관이 통제를 벗어날 때 민주주의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테러방지법과 사이버 테러방지법이 보장하는 권한을 국정원에 주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으며 박근혜, 새누리당이 영구 집권을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국민들의 각성과 경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 같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국정원은 현재의 정권 유지와 자기 조직의 세력 유지, 확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선을 넘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본인들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기 역할을 넘는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그리스 델포이 신전의 격언을 기억하라.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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