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신부의 '환대의 집' 여행-1]

문정현 신부가 3월 1일부터 15일까지 가톨릭일꾼 운동 활동가들의 초대로 미국 뉴욕에 있는 '환대의 집'을 방문합니다. 문 신부와 동행한 평화활동가 한선남 씨가 4회에 걸쳐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가톨릭일꾼 운동은 도러시 데이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사회운동으로 환대의 집을 운영하며 노숙인들에게 먹거리와 샤워 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선언했던 1976년 3.1구국선언 4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주최로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2013년 36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선언자 중 한 사람으로 감옥까지 갔던 문정현 신부는 살아남은 사람 중에서도 여전히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사람이다. 명동성당 기념미사에 당연히 함께했어야 하는 그는 같은 시간 미국 뉴욕의 한복판 맨해튼에 와 있었다. 올해로 사제서품 50주년을 맞는 노 신부가 뉴욕까지 온 까닭은 가톨릭일꾼 활동가들의 초청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 강연을 하지 않은 문정현 신부인데, 작년에 선종하신 예수회 빅셀(빅스) 신부가 휠체어를 타고 강정에 오신 이후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가톨릭일꾼의 간곡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어 미국행을 결정했다.

▲ '환대의 집'에 걸려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사진.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도러시 데이가 보인다. ⓒ한선남

그런데, 미국에 오기까지도 쉽지 않았다. 강정 마을 투쟁 중 검찰에 기소된 한 사건이 문제였다. 검찰은 이 사건을 빌미로 차일피일 여권 발급을 늦췄다. 결국 출발 3일 전에야 1년짜리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문 신부는 물론이고 모든 준비를 해 놓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가톨릭일꾼, 한국에서 미국 방문을 지원하는 팀들 모두 전전긍긍하던 시간이었다. 2월 26일 해군기지 준공식을 지켜보며 우울한 마음을 어찌하지도 못한 채 육지에 올라가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와 육지를 숱하게 왔다 갔다 한 덕분에 이코노미석을 비즈니스석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일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동행한 이와 함께하는 것이 더 좋다며 인혁당 사건이 이후 장애가 된 무릎을 펼 수도 없는 이코노미석에 몸을 싣고 연신 불편한 몸을 뒤척이며 14시간을 넘어 뉴욕에 왔다. 메리놀신학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떠났던 것이 1995년, 이후 소파 개정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오랜 시간이 흘렀다. 혈기왕성했던 시절은 멀리 지나고 이제는 동행인이 있음을 확인하고서야 승무원이 안심하는 노년이 되었다. 오랜 시간을 건너 세상의 악이지만, 선한 친구들이 많은 뉴욕에 갔다.

가톨릭일꾼 운동의 메리 하우스는 맨해튼 동쪽 지역에 있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이지만 땅값은 수천만 달러가 넘는 곳이다. 150년도 더 된 이 건물에서 도러시 데이는 ‘환대의 집’을 운영했고, 그 모습 그대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건물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곳곳은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쌓여 있고 그동안 이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흔적은 미끈하게 닳은 계단참 손잡이에서, 얇게 닳아 버린 스테인리스 주전자에서, 뻥 뚫린 천장을 겨우 가려 놓은 널빤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도러시 데이, 마틴 루서 킹, 간디 등 가톨릭일꾼이 따르고 존경하는 인물들이 벽 곳곳에 선언처럼 붙어 있다.

▲ '메리 하우스'에 머물고 있는 문정현 신부. ⓒ한선남
가톨릭일꾼은 문정현 신부에게 생전의 도러시 데이가 쓰던 방을 내주었다. 방은 도러시 데이의 흔적을 담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박한 옷장, 침대, 책상, 생전에 읽던 책, 오래된 라디오가 전부인 작은 방이다. 문 신부는 도러시 데이의 방을 내준 가톨릭일꾼에 감사하다고 하며 “여기도 내 것 이랑 똑같은 지팡이가 있어” 하며 좋아한다.

메리 하우스는 미국이라는 자본의 중심, 그 속에서도 맨해튼으로 상징되는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다. 뉴욕 거리는 서울과도 많이 닮아 있는데, 교통체증, 답답한 공기, 높은 물가 그리고 노숙인들이 많은 거리가 그것이다. 이런저런 짐들을 수레에 싣고 블록을 옮겨 다니는 집 없는 사람들이 흔히 보인다. 맨해튼의 화려한 거리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물가가 더 싼 지역으로 옮겨 갈 수도 없는 사람들.

가톨릭일꾼은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들이 쉴 수 있고, 씻을 수 있는 공간을 내주고 소박한 식사를 제공한다. 화려한 맨해튼 동쪽의 작은 공간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에 뒤처졌다고 내쫓긴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일꾼 운동 활동가들을 포함해 약 20명 정도의 여성과 노약자들이 메리 하우스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성 요셉의 집’이 있다. 이곳은 남성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려한 도심 한복판에서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멀리 지구 반대편 강정까지 왔다는 사실이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문정현 신부는 사제로서는 영광스러운 서품 50주년을 앞두고 그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거리의 사람들 곁에 왔다. 지팡이에 의지한 노구를 이끌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속으로 간다.

▲ 뉴욕에 있는 메리 하우스. ⓒ한선남

한선남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화활동가 단체 ‘평화바람’에서 일하며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해 왔다. 현재는 강정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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