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한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경제학”, 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자코모 갈레아치, 갈라파고스, 2016

“우리는 소외와 불평등을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멈춰!’라고 소리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증시는 조금만 하락해도 그에 관한 기사들이 폭주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사임 이후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 그때만 해도 우리는 그를 잘 몰랐다.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라는 점이다. 추가로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 아르헨티나인. 많은 사람들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비롯해 몇몇 파격적 말과 행보에 환호했다. 이전 보수적 교황에 시큰둥했던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교황주의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환호했다. 이 책 “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의 경제관’을 통해 현 교황의 말과 행보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복음과 사회교리의 전통 속에서 놓여 있음을 밝혀 낸다. 아울러 지금 우리 앞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한 의미를 면밀하게 짚어 낸다.

▲ “이놈의 경제가 사람잡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한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경제학”, 안드레아 토르니엘리, 자코모 갈레아치, 갈라파고스, 2016
이 책의 공저자 중 하나인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올 초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 처음으로 발간된 책 “하느님의 이름은 자비”의 대담자인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을 예상했던 유일한 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최고의 정보력을 갖고 있는 바티칸 전문가로서, 여러 추기경 및 주교들과 친분관계를 갖고, 신학 서적을 이야기책인 양 무리 없이 소화해 내며 가장 정확하고 박식하게 글을 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교황과 매우 가깝게 지내며 해외 순방에도 같이했던 안드레아 토르니엘리는 교황의 말과 행보를 면밀하게 추적해 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독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강조한다. 사실 ‘가난한 자들의 우선적 선택’은 교회의 중요한 전통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톨릭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섰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교황은 그 점을 정확하게 직시한다. 교회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라 한다. 교황이 먼저 세상 밖으로 나간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람페두사와 사르데냐를 찾아 생존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과 자신들의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을 위로한다. 그들을 위로하면서 지금의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향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 낸다.

이 책의 저자는 교황의 말과 행보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교황은 해방신학이나 급진적 사상이 아닌 복음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힘주어 강조하는 바가 바로 이 지점이고,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은 일종의 시발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직후 발표한 ‘복음의 기쁨’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임을 천명했다. 나아가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 투기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새로운 독재’ 때문에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다수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이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호소했다. 이 권고가 발표되자마자 보수진영은 교황에 크게 반발한다. 특히 보수적인 미국인들 사이에서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는데,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교황의 진단을 빌미 삼아 그를 레닌의 추종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자본주의를 신성시하는 이들, 가톨릭과 자본주의의 신성동맹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교황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교황을 향해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 낸다. ‘교황이 아직 경제를 모른다, 경제공부가 더 필요하다. 아르헨티나의 낙후된 상황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전체를 못 보고 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미국 안에서 교황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바마가 일자리와 임금문제를 혁신하려 할 때 교황을 인용한 일이나, 많은 미국인들이 열렬하게 지지하는 버니 샌더스의 교황에 대한 동조를 보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죽음을 불러들이는 저주스러운 국제은행, 혹은 돈의 제국주의”를 향해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돈의 제국주의’는 이미 1931년 비오 11세가 대공황 이후 파국을 불러온 탐욕의 자본주의를 공격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교황의 발언들은 이처럼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

▲ 병원을 방문해 환자를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사진 출처 =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가톨릭 사회회칙은 파국을 자초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린 경제를 비판해 왔다. 그런 전통이 약해지고, 가톨릭교회에는 나약한 목소리들만 남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러한 전통을 복원해 준다는 점을 저자는 확실하게 짚어 준다. 특히 실물경제를 침식해 유령처럼 떠돌며 하느님의 자리를 대체한 금융자본을 향해 호되게 비판하는 것이다.

교황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교회가 나아갈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했다. ‘자비의 특별희년’을 맞아 교회의 전통이 무엇인지, 교회의 좌표가 어디에 놓여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가톨릭교회가 잊었던 많은 것들을 복원하고 세상을 향해 올곧게 나아가라는 강력한 지표로 이해된다. 우리는 이런 교황에 대해 환호한다. 하지만 간혹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교황이 전해 주는 메시지들일 것이다. 그것은 복음이요, 자비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지러워진 세상 속에서 하느님나라의 모습을 전해 주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을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라는 우상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그에 대한 반발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시대를 종언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으로 ‘자비의 경제학’을 제안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종교의 수장 그 이상의 의미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시대를 꿰뚫는 메시지들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할지, 그것을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 일깨우고 촉구한다. 교황의 말처럼 상처 받더라도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며, 군말 없이 실천하는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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