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프란치스코"

그는 공개적인 적이 많다. 대체 뭘 믿고 저리 태평하게 버스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힘 있는 자들이 그를 싫어한다. 불편해 한다. 아주 사소한 ‘호사’조차 허용하지 않는 생활습관들은 수시로 주변인들까지 긴장하게 한다. 새 옷 한 벌도, 비행기 비즈니스 석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일들로 만들어 버린 탓이다. 그를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말한다. “신부님은 외로운 분이에요. 아주 외로우시죠.”

2013년 3월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로 선출 된 사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르헤 신부’로 살고자 했던 사람. 남들은 그가 시스티나 성당의 콘클라베에서 ‘호명’된 직후부터 보인 그 모든 행보를 ‘파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저 늘 하던 대로 하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역대 교황들이 어떤 ‘관행’ 속에서 움직였건,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격이라면 파격이다. 교황이라는 자리가 주는 권위에 갇히기는커녕 가장 자유롭고 담대하게 그 큰 권한을 쓰고 계신 듯하다.

 

▲ 영화 "프란치스코"에서 호르헤 신부가 정치적으로 쫓기는 사람을 피신시키는 장면.(사진 제공 = 스튜디오 프로그레시브 인큐베이터)

꼭 필요한 만큼만 쓰고 꼭 가야할 곳에는 어떻게든 갔다. 아무리 일정이 촘촘해도 만나야 할 사람들의 손은 반드시 잡아 주었다. 공간적 제약을 간단히 뛰어넘고 시간의 틈마저 가르는 그분의 기적과도 같은 ‘시간 내기’ 신공은 약간 마술처럼 신비한 면이 있다. 우리는 이미 2014년 여름 광화문 미사에서도 다 같이 확인한 바 있다. 단 1분이어도, 그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 사랑의 성사적 순간이었다. 그래서 영원처럼 새겨졌다. 실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장면들이었다. 그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어떤 치유의 약이 발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곧 개봉을 앞둔 영화 “프란치스코”는 일종의 전기 영화다.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일화들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훌륭한 어른의 삶이 담긴 영화인지라 왠지 위인전 느낌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실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관람할 땐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도 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그만 마음을 탁 놔 버렸다. 그리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여러분도 삶에 뛰어드세요. 예수님은 삶 속에 뛰어드신 분이죠.” 이렇게 툭 던지며 빙긋 웃으시는 그 익숙한 하얀 옷의 ‘호르헤 신부님’ 앞에서 무장해제가 되고 만 것이다.

영화는 따뜻하고 잔잔하게 ‘호르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서거 뒤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바티칸 출입 기자 ‘아나’는 우연히 베르골리오 대주교와 동석하게 된다. 콘클라베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친구가 된 그녀에게 그분은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해 준다. 때마침 아나는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던 중이었다. 아나는 이 만남을 통해 정말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은연중에 받는다.

 

▲ 젊은 시절의 프란치스코 교황.(사진 제공 = 스튜디오 프로그레시브 인큐베이터)

아나가 듣게 된 ‘호르헤 신부’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사제의 길을 가게 된 청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한눈에 반한 여인도 있었고, 협박과 외압의 위기도 있었지만, 호르헤 신부는 언제나 변함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한다. 그리고 대주교로서 은퇴하고 드디어 ‘35년 만의 휴가’를 얻어 쉴 단꿈에 젖어 있었는데 그만 교황으로 선출되는 뜻밖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할 성당들이 생각보다 아주 가난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분의 선출이 얼마나 놀라운 이변이었는지를 조금은 실감하게 된다. 이윽고 쩌렁쩌렁 울리는 호르헤 신부님의 강론이 들려온다. “여기서는 개가 노예보다 낫다고 합니다. 양심이 잠자고 있죠.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애통해 합시다.” 그 가난한 거리와 가난한 이들의 집을 속속들이 알고 속속들이 사랑하는 한 사제가, 인간의 고통 앞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 마음을 담아 전 세계에 호소한다. “교회는 변두리로 나가야 합니다. 실존적인 변두리,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 믿음이 없는 곳 말입니다.”

영화 카피의 “평범한 신부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숨겨진 이야기”라는 문구는 마음에 쏙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며칠간의 방한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그분은 그리 평범한 분이 아니셨다.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있지만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없는 분이었다. 하신 일이 결과로서 드러난 뒤엔 무릎을 탁 치며 ‘아하!’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셨지만, 그땐 이미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남기고 (그 나라에서 제일 작은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신 뒤였다. 참 한결같으신 못 말리는 할아버지(!)이셨다. 그분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는 영화를 보는 동안 직접 확인하시길. 마음이 어딘가 훈훈해지는 것은 덤이다.
 

▲ 미혼모의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사진 제공 = 스튜디오 프로그레시브 인큐베이터)
▲ 미혼모의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사진 제공 = 스튜디오 프로그레시브 인큐베이터)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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