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종교중립 위반”....개신교 집중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하 ‘종자연’)이 총선 예비후보 중 10명을 종교중립을 어긴 낙천 대상으로 발표했다.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거나 공적 자리에서 개신교 신자로서 신앙을 표현한 것, 교회가 특혜를 받도록 도운 의혹이 있다는 등 이유다.

개신교 개혁 단체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종자연의 존재 목적에 맞는 활동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더 폭넓게 사례를 모아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상지종 신부도 다른 종교에 속한 후보자들 중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종자연이 2월 26일 총선 예비후보 등록자와 각 정당 공천신청자들 중 정교분리, 종교중립 원칙을 위반했다며 발표한 낙천 대상 후보는 모두 10명이다. 새누리당은 김을동, 안상수, 이재오, 이혜훈, 황우여 의원, 박성중 전 서울 서초구청장, 주대준 전 대통령비서실 경호처 차장 등 7명, 더불어민주당은 김진표, 이석현, 이윤석 의원 등 3명이다.

종자연은 언론에 보도된 이들의 말, 행동 가운데 종교인 과세를 반대한 사례와 함께, ‘신정정치’나 지역의 ‘성시화’를 요구하며 개신교 신자로서 사명감을 표현한 일을 지적했다.

▲ 국회의사당 ⓒ강한 기자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이윤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09년 지역구 행사장에서 찬송가를 불러 불교계의 반발을 샀던 것을 이유로 들었다.

새누리당 김을동, 이재오 의원에 대해서는 2015년 12월 종교인 과세법이 통과되기를 앞두고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한 발언을 지적했다. 종자연은 <뷰스앤뷰스> 2015년 12월 3일 기사에서 두 사람의 발언을 인용했는데, 교회 집사인 이재오 의원은 “지금까지 우리 당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 서로 간섭을 안 해 왔지 않나. 서울과 수도권의 목사님들이 기반을 만들어 줘서 그나마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것”이라며 종교인 과세에 대해 반발했다. 또 김을동 의원도 “선거를 앞두고 불리하지 않나. 왜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나. 실익이 뭔가”라며 거들었다.

종자연은 7가지 정교분리, 종교중립 원칙 위반 심사 기준을 밝혔다. 우선, 공직자가 공공장소나 공적 행사에서 자신의 신앙, 종교적 신념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 둘째, 공직자 임면, 징계 때 인사권자나 인사 대상자의 종교에 따라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셋째, 직위를 이용해 다른 직원에게 개종, 입교를 강요하면 안 된다. 넷째, 직위를 이용해 특정 종교단체에 특혜나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다섯째, 공공기관은 특정 종교를 홍보하는 정책이나 특정 종교 단체를 위한 예산 지원, 특혜를 주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여섯째, 공공시설에 특정 종교의 교리, 신념을 나타내는 표현이 게시되면 안 된다. 일곱째,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또 종자연은 종교의 자유와 함께,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한 헌법,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한 국가공무원법을 근거로 들었다.

종자연 담당자는 낙천 대상자를 추가로 발표할 예정은 아직 없으며, 이미 발표된 10명의 문제 언행을 더 밝힐 계획은 있다고 2월 2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개신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정치인들의 문제 언행은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 “일부러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찾지 못했다”고 답했다.

종자연의 낙천 대상 발표에 대해 김형남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려면, 특히 정치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인격을 다지는 것과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불교 신자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정치인이 공적 활동을 통해 불교를 위해서만 활동하고 정치를 한다면 제재가 가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2월 17일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 기념공간 건립공사 착공식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과 정관계 인사들. 국회 가톨릭 신도의원회장 우윤근 의원 등 신자 정치인들도 참석했다. ⓒ강한 기자

개신교의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은 종자연이 낙천 대상으로 발표한 정치인들 중에는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거나 국회에서 신우회 등 모임을 만들고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본인이 밝힌 사람들이 많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국장은 그동안 선거철에 개신교회들이 예배 도중 후보를 소개하거나 목회자가 설교를 통해 특정 정당을 지지할 것을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등 이런 낙천 운동의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종자연이 발표한 낙천 대상이 지나치게 개신교계에 집중돼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국장은 “이는 공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이 때문에 종자연이 주장하는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억측과 왜곡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종교중립 위반 후보에 대한 사례 수집이 더 폭넓고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보수 개신교 단체에서는 종자연의 정체성을 문제 삼으며 ‘불교 단체의 나팔수’, ‘한국 교회의 주적’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상지종 신부는 종자연의 요구가 “일리 있다”며, 공직자는 종교중립,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상 신부는 따져 보면 다른 종교를 가진 후보자들 중에도 문제 언행을 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는 “천주교 신자로서 공직자라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며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상 신부는 “우리나라는 국회의원도, 정부도 가진 자들 편에서 정책을 펴 나가고 있다”면서, 사회적 가르침에 따라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봤다.

천주교는 지난 총선, 대선을 앞두고 주교회의와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들에게 정책 제안서와 질의서를 보내고, 그들의 답변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천주교계에서 나온 눈에 띄는 활동은 아직까지 없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2월 5일 발표한 사순 메시지에서 “올봄에 우리나라의 총선은 진정으로 당리당략과 이기심을 넘어서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선출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총선)는 오는 4월 1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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