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귀향', 조정래 감독, 2016

이 작은 영화를 둘러싸고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 영화의 스크린 독점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에서 제작하고 배급하는 영화가 아닌 저예산 작은 영화는 개봉 첫날부터 스크린을 잡기가 어렵고, 그러다 보니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홍보와 입소문을 타지 못한 채 조용히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 스타가 등장하는 거대 자본의 장르영화가 아닌, 예술영화, 저예산영화, 작가영화, 다양성영화 등 여러 용어로 불리는 영화들은 알게 모르게 극장에 잠깐 걸렸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겪는다.

소규모영화, 손숙이나 오정혜 정도를 제외하고는 알 만한 배우가 없는 영화, 일본군 ‘위안부’ 실화를 다루는 영화,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영화다. '귀향'은 극장가에 내어놓기도 전에 이미 상업적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현재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객이 '귀향' 보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개봉 첫날 흥행 1위에 올라섰다.

같은 날 개봉한 전도연, 공유 주연의 스타 영화 '남과 여' 뿐만 아니라 천만 관객을 향해 가고 있는 '검사외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데드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를 제쳤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첫날 기록으로 보아 아마도 손익분기점인 60만은 넘을 것이고, 백만, 이백만 관객까지 예측된다. 소규모영화가 백만을 넘는다는 것은 주류 상업영화의 천만 관객에 버금가는 수치다. 이러한 관객의 반응은 대기업도 움직이게 하여,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도 스크린을 '귀향'에게 대거 내어주었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전개된, 한국인으로서는 복장 터지는 국내외 상황이 '귀향'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2015년 12월에 타결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고, 이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 행동이 두 달째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서 지난해부터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즉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혹은 자발성 논쟁이 법원의 판결과 함께 대중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위안부’ 소재 영화 '귀향'이 ‘위안부’ 이슈의 중심부로 등장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하는 사건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위안부’는 식민지 조선이 당한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이며, 현재 반일감정이 유지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위안부’를 다룬 미디어 재현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관련 영화나 책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면서 역사적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일에 힘겨워 한다.

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극영화로는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1965), '어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91), '소리굽쇠'(2014), '마지막 위안부'(2014) 정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위안부’ 소재 재현물은 TV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일 것이다. 영화 '귀향'은 아마도 가장 성공한 ‘위안부’ 소재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여 배급과 상영에 이르기까지 나날이 기적의 연속이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하던 당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불타는 처녀’를 보며 영화를 구상했다. 그리고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제작비를 모금하기 위해 2014년부터 유투브와 포털 사이트에 티저 영상을 올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7만 5000여 명으로부터 후원금을 모았다. 지난달까지 국내와 해외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후원자 시사회를 열었고, 눈물의 후기가 기사화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영화가 국내에서 정식 개봉되었다.

▲ 영화 '귀향' 예고편 중에서 (사진 출처 = ThetvSeoul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전쟁 당시 20만 명의 ‘위안부’ 여성이 있었다고 추정되지만, 238명만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44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열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소각 명령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영화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1943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차디찬 이국땅으로 끌려간 열네 살 정민(강하나)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군홧발 아래서 성노예로 부림당하지만, 끔찍한 삶 속에서 소녀들은 존재 자체로 서로 위안이 된다. 1991년 현재엔 성폭행을 당해 반쯤 정신이 나간 소녀 은경(최리)이 있다.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세상에 밝힌 때다. 은경은 만신 송희(황화순)의 신딸로 지내다 과거 위안소 생활을 했던 영옥(손숙)을 만난다. 은경은 꿈을 통해 영옥의 악몽을 보고 죽은 자들의 넋을 고향으로 데려올 씻김굿을 준비한다.

영화는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을 영화에 녹여낸다. 일본군을 위해 위안소를 운영했던 조선인 업자가 등장하고, 시골 소녀뿐만 아니라 기생도 위안소로 끌려갔다는 사실,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 등이 드러난다.

조정래 감독은 한 개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보다는 전장에 설치된 비참한 위안소의 재현에 중점을 두어, 영화를 역사적 증거물이 되게 한다. 영화는 신파적 표현을 절제하고 있지만 보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1940년대 식민지 소녀가 현재 시점에서 영매가 된 또 다른 소녀를 통해 이승의 살아남은 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형식을 통해 영화는 억울하게 죽은 소녀들의 영혼을 달래는 씻김굿 한판이 된다.

만듦새나 구성, 연출과 연기 면에서 보이는 아쉬움은 작은 영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보인다. 그러나 다루기 힘든,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다만, 제국주의가 식민지 소녀들을 폭력적 국가 조직을 이용하여 유린하였으므로, 이 사건은 영매를 통한 개인의 살풀이 수준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 일이 아니다. 좀 더 성큼 나아가, 국가라는 구조적 폭력의 문제를 드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여전히 일제 잔재 문제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 나아가 구조적 폭력을 용인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소재 영화가 적절한 시기에 역사교육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이 훨씬 많다는 점, 살아있는 할머니들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는 점에서 영화는 사회적 각성을 일으키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이는 영화의 역할을 둘러싼 또 하나의 논쟁거리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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