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종단, 파견법 토론회

“기간제법을 양보했으니, 파견법을 받아들여 달라는 정부. 만약 폭행과 강도 중 하나만 당하게 되는 것에 합의하자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양보와 타협일까요?”

정부와 여당이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관련 4대 법안 중,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주제로 종교 간 토론회가 열렸다.

2월 18일 명동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종교가 바라본 파견법’ 토론회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의 주최로 마련됐다.  

▲ 2월 18일 서울 명동에서 천주교, 개신교, 불교 세 종단이 '파견법'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정현진 기자

정부와 여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힌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파견법과 논의가 미뤄진 기간제법 등은 전반적으로 노동시간과 고용기간,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방향이지만, 특히 파견법은 하도급, 파견, 일용직 등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동시에 현행법상 불법을 합법화하기 때문에 그 파장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2014년 기준 300명 이하 사업장 간접고용 노동자는 약 200만 명. 개정안에 따른 파견직 확대 대상인 주조, 금형, 용접, 열처리 등 제조업 기초 작업에 해당하는 뿌리산업, 고소득자, 초중고 교사와 간호사, 간호 조무사, 보험금융관리자, 고연령자 등을 적용하면, 10명 중 4명이 파견노동의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이미 늘어난 비정규직을 일반적 고용형태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김혜진 상임활동가는 이에 대해, “도둑질도 만연하면 인정하고, 세금포탈이 만연하면 정당화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면서, “정부는 불법파견을 범죄가 아닌 기업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불법파견을 관리감독, 처벌하지 않고 노동자들의 노예화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파견법 개악의 문제점에 대해 근본적으로 “직접 고용하고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해야 한다”는 고용의 원칙을 뒤바꾸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노동에 따른 위험과 책임을 하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파견허용 업종이 늘어나면 노동자 파견을 위한 중간착취업체(파견업체)가 생겨나는데, 이를 정부가 허용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실업급여 지급, 일자리 주선, 직업 훈련 등의 ‘고용서비스’ 기능과 의무를 ‘민간 산업화’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신종 인신 매매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진 활동가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모든 책임을 사회 전체와 노동자 개인이 떠안도록 하는 간접고용은 정상적 고용이 아니며, 절대 인정해서는 안 되는 고용형태”라고 강조하면서, “어렵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연대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원청이 사용자로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제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 정수용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법상 스님(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최형묵 목사(NCCK 비정규직대책한국교회연대)도 정부의 파견법 개정이 각 종교의 교리와 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용을 이유로 노동을 상품화하며, 극단적으로 노동자를 노예화하는 파견법은 종교가 가르치는 인간존엄과 공동선, 성경에서 제시하는 정의와 노동 개념에 반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정수용 신부는, 파견법 개정안의 핵심은 합법적으로 “노동은 상품, 사람은 생산의 소모품이 된다는 것”이라면서, “모든 재화는 그 소유가 개인에게 있음이 보장되더라도 재화 자체가 가지는 보편적 목적상 사용에 있어서는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상 재화의 사용에 대한 보편적 권리를 다시 확인했다.

파견법 개악에 따른 구체적 실천에 대해 정 신부는,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배척의 문화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며, 돈이 아니라 사람이 경제 체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좌우하는 노동법 개정 앞에 ‘절반씩 양보하자’는 기계적 균형을 요구할 수 없다. 어떤 제도가 공동선을 실현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최형묵 목사는 성경에서 이르는 “일용할 양식”은 모든 문제에 앞서는 가장 선결적인 조건이며, 누구나 기본적 생활상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그는 “고용 불안은 기업의 비용을 줄일지 모르겠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과 사회적 비용을 극대화할 것”이라면서, “노동 문제를 사회적 위기로 인식해야 하며, 특히 종교 안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다는 사회윤리적 개념, 보편적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 토론자로 나선 법상 스님은 평등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은 평등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며,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파견법이) 누구의 입장인가, 또 누구의 입장에서 인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혜진 활동가는 “미래의 희망을 잃은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갖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상태에서는 노동을 통해 자기 삶을 스스로 구성하고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쥐어짜는 대로 침묵하고 일하는 것이라면서, “미래 희망을 잃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분노를 드러내거나 약자를 괴롭히거나 우경화되는 등 부작용이 충분히 예상된다. 파견법에 대한 논의는 잃어버린 희망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대한 시작이며, 궁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이들은 노동법 개악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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