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23]

1. 한 달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 남한의 점술업 매출 규모가 연간 4조 원대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게 된 생각이다. 무속인 숫자가 30만이고 그 가운데 20만이 현업에 종사하며, 역술가 명리학자 등과 같이 유사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숫자도 상당하니 이 액수가 무리한 추정은 아닐 터. 게다가 열심하다는 신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점을 보러 다니는 형편이지 않은가?

2. 새삼 신기할 일이 없는 이러한 소재를 굳이 떠올린 이유는 한국의 제도 종교 일반이 침체기에 접어드는 이유가 부분적으로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제도 종교와 점술업은 한국사에서 늘 공존해 왔지만 시대 상황에 따라 두 집단이 동원하는 자원 규모는 반비례 관계에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집단은 이용자들의 돈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관계이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불확실성이 커지면 점술업 매출은 늘고, 반대로 제도 종교에서 동원하는 자원 규모는 감소했을 것이다.

3. 문제는 왜 불확실성이 커질 때 제도 종교에 속한 이들조차 점술업에 기대는가이다. 그동안의 여러 사회조사와 필자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점술가들이 제도 종교의 성직자들에 비해 더 신속하게 답을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찾는 이가 느끼는 불확실성, 즉 그의 신념 체계 안에서 경험하는 모호함을 이들이 빨리 없애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무녀신무', 신윤복.(18세기 말-19세기 초)

둘째는 그리스도교에 치명적인 이야기지만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사실 그리스도교를 겉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 종교인 다수가 현세 복리주의와 그에 따른 구복적 성향에 따라 점술업을 그들이 가진 종교의 대체재 내지 보완재로 활용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당연한 현상이라는 말이다.

셋째는 두 번째와 연결되는 측면인데 제도 종교는 성직자들이 세속적 기준에서 볼 때 점술업 종사자들보다 자격을 더 잘 갖추고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더 세련돼 있고, 개인보다 제도의 힘과 이미지로 개인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평화 시나 경기가 좋을 때는 사회에 불확실성이 낮기 때문에 일상적 관리에 치중해도 이용자들의 불만을 사지 않는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절박한 이용자들의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외면을 당한다. 아마 요즘이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제도 종교는 평화 시, 즉 위기가 없거나 불확실성이 적을 때 하나의 준거 집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제도 종교가 사회 변동의 흐름을 거의 읽지 못했고,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가르침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자들의 불확실성을 더 키웠다. 특히나 1990년대 말부터 경험하게 된 세계 금융위기와 그의 본질인 자본주의의 한계 노정, 정보사회가 성숙단계로 접어들면서 확연하게 커진 일자리 감소 현상, 그에 수반되는 노동 유연성 증가, 이 흐름을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 정치 등 존재 영역의 변화를 제도 종교는 알아차리지도 설명하지도 못했고, 또 그리하려는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점술업에 기대는 일이 일시적 위안밖에 주지 못하는 아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의 절박함 탓에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일 터.

4. 올해 중반에 통계청 ‘2015 인구총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확인될 테지만 제도 종교는 신자 규모가 다소 줄었을 것이다. 이 경향은 이미 한국 갤럽이 2014년에 실시하여 2015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에서 확인된 바 있다. 10년 전에 비해 종교인구 비율이 3퍼센트포인트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설사 감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신자들이 앞에서 추정한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적 투신’은 약화되었을 것이다. 이는 천주교처럼 신자의 절대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는데 미사 참석자와 비활동적 신자는 이 보다 더 크게 감소하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불교 신자들의 경우처럼 절에 다니지 않아도 자신을 불교와 동일시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 현상들은 이른바 제도에 대한 소속은 유지하면서 활동은 하지 않는 ‘탈제도적 종교성’의 확대로 개념화할 수 있겠다.

5. 한국에서 종교 인구를 급격하게 팽창시켜 온 힘은 일차적으로 한국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 직후 약 십여 년간은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종교인구변동사에서 가장 폭발적 증가세를 기록한 시기였다. 두 번째는 이때 보다 증가율은 1/3 정도로 감소했지만 양적 측면에서는 전쟁 직후 시기보다 2-3배 컸던 1970-80년대다. 이때는 산업화 시기로, 산업화는 도시화를 촉진하여 전통사회의 붕괴를 초래했다. 이때 종교는 유사 공동체의 보금자리 역할을 통해 도시로 온 농촌 인구를 빠르게 흡수했다. 불교도 이 시기 신도 숫자가 급증하였다. 산업화가 안정기에 이르고 도시화 속도도 진정 기미를 보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신자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최근으로 올수록 천주교를 제외하고는 정체 내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제도 종교의 성장과 팽창이 나름 사회적 역할과 관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나름 긍정적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을 얻었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 역할이 감소하면 신자 규모가 정체되거나 감소할 수 있다. 물론 이 정체와 감소는 복지국가에서처럼 불확실성의 반대, 즉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에도 일어난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복지국가는 종교 인구가 적다. 인생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불활실성 가운데 죽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복지를 통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와는 반대 이유로 종교인구 감소를 경험한 셈이다.

6. 요즘의 한국 사회처럼 불확실성이 계속 증가하면, 상당 기간 이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아마 제도 종교는 두 가지 방향을 다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는 신도들을 계속 잃거나, 설사 잃지 않더라도 신자들을 점술업과 같은 유사종교 집단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도 종교가 더 기복화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은밀하였다면 이를 노골화 할 수 있다. 개신교는 두 번의 성장기에 이 덕을 보았으니 다시 돌아가긴 민망할 터이고, 그러니 천주교가 이런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여러 차례 사제들과 신자들의 욕구가 상반되는 점을 지적해 왔는데 신자들이 이런 성향을 더 노골화하면 사제들의 내적 갈등이 클 것이다.

어떤 상황으로 가든 한국의 제도 종교는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럴 만한 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운 좋게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쇠퇴가 불가피할 것이라 전망한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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