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어 세상으로 10]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구약 편, 캐롤 A. 뉴섬, 샤론 H. 린지 엮음,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역, 이경숙, 박경미 감수, 대한기독교서회, 2015.

지난 2012년,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신약 편”이 출판된 뒤 짧지 않은 3년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8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구약 편”이 출간되었다. 신약편을 번역한 이화여대 여성신학연구소의 박인희, 장양미, 정혜진 연구원이 한 팀을 이루어서 작업을 하고, 구약학의 이경숙 교수와 신약학의 박경미 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여성신학연구소의 명예를 건 작업이 결실을 맺은 것에 무엇보다 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구약 편, 캐롤 A. 뉴섬, 샤론 H. 린지 엮음,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역, 이경숙, 박경미 감수, 대한기독교서회, 2015.
여성들을 위한 성서 주석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성신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여성의 시각과 언어로 성서를 다시 읽는 작업을 시작한 근대 여성들을 만날 때 주석서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다음 과정은 성서의 여성들을 만나며 시간을 거슬러 그 시원에 이르러 한처음을 확인하고, 되돌아오는 긴 여정의 주석서의 관점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여성신학의 배경사를 되돌아보자. 여성들의 관점에서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즈 (1748-93)는 1791년, “여성의 권리”를 작성한 죄목으로 단두대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미국에서는 노예폐지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이 연관을 맺고 발전하였으며 1792년 메리 월스톤크래프트가 “여성의 권리옹호”를 출판했다. 근대 여성들의 활동은 여성들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주었고 1895년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은 “여성의 성서”를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스탠턴은 "모든 개혁은 상호의존적이다!"라는 모토로 여성들의 존엄한 인격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서의 권위를 빌려 왔다. 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으며, 1920년대에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것은 전쟁에 동원되었던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 것이었다.

1960년, 벌래리아 세이빙이 최초로 여성 신학을 주제로 논문, ‘인간 상황: 여성의 관점’을 제출하였다. 이어서 1965년에 시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단 한 명의 여성도 참석할 수 없음에 충격을 받은 가톨릭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는 “교회와 제2의 성”, “하느님 아버지를 넘어서” 등의 책에서 남성중심의 교계구조와 교회 안에 살아 있는 여성혐오증을 연구하고 비판하였다. 그 이후에 신학을 공부한 많은 여성들이 그리스도교의 반여성적 입장을 비판하고 제도를 넘어갔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자신의 시대를 살아내는 대표적인 여성신학자로 엘리자베스 피오렌자와 기념비적인 첫 작품 “크리스천 기원의 여성 신학적 재건 ”(1983)을 꼽을 수 있다. 스탠턴을 기억하며 쓴 이 책에서 피오렌자는 여성들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는 새로운 네 가지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의심의 해석학, 선포의 해석학, 기억의 해석학, 창조적 실현의 해석학으로 불리는 그의 관점은 잊혀졌던 것을 기억하고, 기존의 해석을 의심하며,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새롭게 읽을 것을 제안하였다.

1992년, 1998년에 출판된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의 원제목은 “여성들의 성서 주석”(Women's Bible Commentary)이라고 할 수 있다. 주석 작업에 참여한 16명의 공동저자들은 유대교와 가톨릭, 개신교의 여성신학자들로서 피오렌자의 방법론을 따라 여성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고 주석하였다. 여성이며 동시에 랍비이거나, 수도자, 평신도로서, 또 지구의 다양한 지역에서 개별적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각자가 속한 여성들의 삶의 자리를 반영하며 작업을 했다. 각 장의 주석은 그 필자가 사용하는 성서의 본문을 기반으로 쓰였으며, 성서의 범위 또한 정경 이외의 외경들까지 포함하여 보편적 성서 주석서가 되도록 배려했다.

▲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신약 편, 캐롤 A. 뉴섬, 샤론 H. 린지 엮음,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역, 이경숙, 박경미 감수, 대한기독교서회, 2012.
따라서 이 주석서는 성서에 대한 전반적이고 총괄적인 주석이 아니라, 독자들이 해당 성서 각권에 친숙해지도록 전체 내용을 소개하고, 주요 논제들을 개관한다. 스탠턴의 “여성의 성서”를 모델로 삼아 특별히 여성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본문들을 선택해서 주석하도록 하였다. 여성 인물과 여성적 상징을 분명하게 다루고 있는 본문들과 여성의 상황을 담고 있는 본문들까지 주석의 대상으로 삼아서 가족의 여러 측면, 여성의 법적 지위, 종교제도, 경제제도, 공동체의 경계가 정의되고 유지되는 방식까지 다루었다.(32쪽)

편집을 주도한 샤론 린지는 여성의 시각으로 성서를 읽을 때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첫째, 성서가 쓰인 당시의 입장에서 저자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존중한다. 또한 여성의 경험을 기반으로 성서 저자들의 유산을 마주한다. 둘째, 성서시대의 여성을 그 시대를 배경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한다. 셋째, 성서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개의 경우 능동적인 행위자이기보다 침묵하는 대상으로, 목적으로 표현되는 것에 주목하고 그들이 당한 억압과 폭력이 종교적으로 승인되는 것을 비판적으로 읽는다.

가부장적 가치들이 생겨난 역사적 상황이 매우 다양하고, 성서 내 문서들이 다양한 목적에서 쓰여졌음에도, 성서의 기저에 가부장적 가치들이 흐르고 있다는 인식 아래 여성에 대한 성서의 부정적 관점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남성 중심적이고 규범화된 사회에 속한 여성들이 겪는 경험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보는 해석자들이 있다. 이들은 가부장적 가치를 옹호하는 본문을 보면서 거기에 묘사된 여성들의 삶과 그 본문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들을 기린다.(41쪽)

여성들은 성서를 해석할 때, 젠더적 관점에서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인다. 특별히 하느님(하나님)을 남성 단수로 표현하는 문제는 언어에 따라서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대명사를 쓰지 않고, 하느님(하나님)으로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인 그리스도 예수가 남성이란 사실이 여성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신학적 강조점은 그의 남성성이 아니라, 그의 인성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46쪽)

드로라 오도넬 세텔이 쓴 탈출기(출애굽기) 주석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들의 기원과 함께 여성 전승의 종교적 흔적을 가지고 피의 제사를 드리는 가부장적 종교로 정착하는 유대교의 초기 형태를 보여 준다. 제의에서 여성이 제외된 것이 제의화된 성스러움과 여성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이 피의 제사와 결합되어 발전되며 부계로 확립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대 종교에서 여성들은 제관으로 활동했지만, 희생제사와 연관해서는 그 지위와 활동이 망각되었거나 억눌린 것을 보여 준다. 여성들의 제관적 활동은 생명과 연관된 물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또한 광야에서 사람들을 격려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미르얌의 모습으로 상징되어 드러난다. 특별히 탈출기 15장 1-21절의 바다의 노래와 미르얌과 그 동료들의 춤은 유대교의 제의 형태가 아닌, 고대적 전승을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 "예언자이며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탈출 15,20), 채색 사본,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 소장.(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구약 성경이 실제로 시작되는 전승의 기원을 살펴볼 때, 여성적 읽기가 이제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읽을 수 있는 시선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여성신학적 주석이 갖는 의미는 여성적 관점을 통해서 지나쳤거나 무시되었던 성서의 여성들이 그들이 살았던 배경에서 역동성을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번역자들의 평가와 일치하기도 한다. 나아가 여성신학은 현대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대 종교의 시작에 함께한 여성들의 전통이 회복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부장제 이전의 기원에서 찾을 수 있는 종교적 풍요함으로 인도하는 물길이며, 생명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아가서의 주석은 그 생명의 기원이 신과 인간의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아가서를 여성적 역동성 안에서 재해석한 레나타 윔즈의 짧은 주석은 전체 주석을 모으는 샘물이라고 하겠다.

최우혁(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교황청립 데레사대학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교황청립 마리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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