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이달 말이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이 된다. 앞으로 두 달 있으면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는 일반적으로 여당에 대한 야당의 심판론을 중심으로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다음 권력을 누구에게 넘겨 줄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도 정치인들의 심판론은 필요하다. 4.13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낡은 경제세력 교체와 정부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가 이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책임이 있다고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공격했다. 한편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오만한 여당과 무능한 야당이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새누리당이 대기업을 위해 만든 “원샷법”을 통과시켰다며 “총선을 거쳐 강력한 제3당으로 대한민국 정치판을 바꾸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4.13 선거운동은 판도가 다른 선거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탈법적 행동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이면서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국회의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국회를 청와대의 “제2 중대”로 격하시켰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선거로 선출한 원내대표(유승민)를 친박 의원들을 통해 해임시켰다. 이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의 존엄을 유린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 5.16 쿠데타 당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장도영(왼쪽)과 부위원장 박정희.(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

청와대는 법무장관을 통해 검찰의 국정원 불법선거운동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혼외 아들이 있다는, 사건과는 아무 관계없는 꼬투리를 잡아 몰아냈다. 검사의 직무에 충실한 국정원 댓글 수사 검사들을 좌천시켜 대선 불법선거의 수사를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에 충실히 따른 공로로 그때의 법무장관은 총리가 됐다.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돼 있으나 이런 상황은 실제로 독재나 다름없다. 제2 유신이라는 말이 공허한 말이 아니다. 언론은 우익 이념을 같이 하는 재벌신문매체와 낙하산 인사를 통한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한 종편의 조종을 통해 언론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낙담한 기자들은 스스로를 “기레기”라고 자조하고 있다.

가톨릭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국정원의 대통령선거 개입에 항의하는 미사와 시민단체의 거리 시위가 한물가고 권력의 안정을 확인하게 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권력 유지에 자신이 섰는지 사용하는 어휘가 조금씩 거칠어져 갔다. 배신자 발언이 대표적이다. 원조 친박 유승민은 그 대표적인 희생자라 하겠다.

그런데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수훈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김종인은 더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됐고, 김종인 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대선후보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정치쇄신 특별위원 등을 역임한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는 박근혜와 헤어져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또 한 사람의 청와대 최측근으로 정윤회 사건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무죄 판결을 받고 청와대를 떠난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 문건’ 사건의 주인공이다. 검찰은 그가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과 함께 청와대 문건들을 박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에게 건넨 혐의로 기소했지만 그들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대선 당시 대선 네거티브 대응과 친인척 관리를 맡아 박근혜 정권의 속살을 볼 위치에 있었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조응천 비서관이 더민주당에 입당하자 정치권에서 긴장하고 있다는 보도다. 더민주당에서는 박근혜 정권에서 반대하는 인사를 영입한 것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새누리당에서는 “금도를 벗어난 행위”라고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위에서 소개된 인사들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필요에 따라 영입했던 인물들이다. 모두 박근혜를 저버린 “배신자”들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약속했던 가치를 박근혜 쪽에서 배반해서 그의 곁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 어느 쪽을 배신자라고 부를 것인가? 본인들은 결코 자신들이 박근혜를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반대가 아닐까?

선거일이 가까워 오면서 최근 친박, 비박이 더욱 분화하고 있다. 친박이 신박, 진박 등으로 분화하면서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경제부총리로 있다가 총선 출마를 위해 자리를 그만 둔 최경환 부총리는 대구 경북과 부산 경남 지역 특정 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을 돌며 이 사람이야말로 진박이라는 식의 인증 발언을 하고 다닌다는 보도다. 친박 핵심이라는 조원진 의원이 유승민 의원을 겨냥해 했던 말을 근거로 <조선일보>는 “‘헌법보다 의리’라는 친박(親朴)들, 국민을 뭐로 보고 그런 말 내뱉나”라는 비판 사설을 실었다.

친박 주변의 이 같은 비이성적인 행동은 정치를 인간끼리의 경쟁관계로 보지 않고 정치를 전쟁으로 보는 군인 사고방식의 영향 때문이다. 하버드 신학교 대학원을 나온 뒤 <뉴욕타임즈>의 종군 기자로 유럽과 남미의 전쟁을 담당한 베스트셀러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은 전쟁”이라는 책에서 우리 주변에는 항상 조그마한 권력과 특권을 위해 말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잔인한 행동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이런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인간성까지도 버린다고 말한다. 전쟁 행위에서의 스릴을 삶의 의미로 느끼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일생을 보내며, 인생을 전쟁으로 간주하는 유신시대 박정희 장군류의 인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도 유신을 보고 자라면서 본인도 모르게 유신의 피가 몸 안에서 흐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런 정치인은 민주주의에는 적합지 않은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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