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2월 7일(연중 제5주일) 루카 5,1-11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경악할 사건들이 앞다투어 보도된다. 자식을 찢어 죽이는 것, 몽둥이로 내려쳐 죽이는 것, 그 끔찍한 사건 앞에 할 말을 잃은 우리는 ‘헬조선’의 현실이라 되뇌며 분노한다.

분노는 당연한 듯하지만 거북한 것 또한 사실이다. ‘헬조선’이라 말하면서 우리는 ‘헬조선’을 즐기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 땅, 이 사회를 대상화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자신의 본모습이 바로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는 둔감하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죽이는 끔찍한 사건에 온갖 비난을 해대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학원에, 과외에, 입시 지옥에 던져 넣고도 ‘현실’을 핑계로 당당할 수 있는 태도가 있는 한, 우리의 분노는 늘 위선적 자위에 불과하다. 어쩌면 우리는 ‘헬조선’을 우리 일상의 끔찍함을 제거 혹은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즐기는 듯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요즘 우리 주위를 분노케 하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보다 더 끔찍한 건, 제 현실을 사유하거나 극복하지 못해 현실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의 두려움일 테다.

 ⓒ김상훈

오늘 복음은 예수를 따르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예수는 가르친다. 가르침 중에 예수는 어부가 아님에도 어부에게 그물 칠 곳을 정확히 가리킨다. 밤새 ‘전문적’으로 고기를 잡고자 했으나 잡지 못했던 시몬은 웬일인지 예수의 ‘비현실적’ 명령을 따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주석학자는 주님에 대한 제자됨의 절대적 ‘순종’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내려놓음으로써 제자됨의 참모습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주를 이룬 해석이다.

예수의 ‘비현실적’ 명령대로 움직인 시몬은 엄청난 고기를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똑똑히 쳐다본다. 스스로 ‘죄인’이라 한다. 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일까. 많은 고기를 보고 겁이나서? 자신의 ‘전문성’이 감당 못할 예수의 신비한 기운이라도 느꼈기 때문에? 아니면 정말 예수가 메시아임을 깨달아서 무조건적인 순종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

죄인이라 고백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사유가 오늘 복음의 핵심이다. 자신의 ‘현실’을 포기하거나 거부함으로써 죄인이란 고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자기 은폐나 도피에 가깝다. 단순히 절대적 존재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한다고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할 수도 없다. 그런 고백은 찰나의 두렵고 떨리는 순간을 모면하는 비루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일 뿐이다. 참으로 죄인이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현실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저항 정신’에서 가능하다. ‘이제껏 잘못 살았구나’,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 ‘내 속에 너무 갇혀 있었구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저항정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힘이다. 그 힘이 또한 현실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현실을 도모하기 위해 떠나갈 수 있는 힘으로도 작용될 터이다.

예수는 소위 ‘전문적’이라는 ‘현실’을 떠나게 ‘비전문가’로서 시몬을 불러들인다. 기존의 인식체계와 현실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저항의 길은 누구나에게 ‘비전문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길을 닦고 그 길을 고르게 하는 일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일이며, 우리 해방을, 우리 구원을 준비하는 길이라는 사실은 복음서마다 이야기되는 요한 세례자의 존재 이유이며 메시아를 갈망하는 우리 신앙인이 살아갈 이유다.

시몬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낚는다’라는 동사가 그리스말로 ‘조그레오’인데, 그 본디 의미는 ‘살게끔 이끈다, 조종한다’ 이다. 아이들이 끔찍이 죽어 가는 현실 안에 아이들을 살게끔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을 모색하는 저항 정신이 사람을 낚는 일이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오늘날 한국사회의 교육 현실과 같은 지옥을 만든 기성세대는 없다. 창피하고 죄스럽고 미안해해야 할 일들 앞에서 ‘헬조선’이라며 탄식하며 현실을 비난하는 건 비겁하다. 지금의 현실에 저항하며 스스로 죄인이라 말하는 게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갖추어야 될 최소한의 예의다. 그 예의를 갖추는 게 신앙이지 현실에 안주하거나 현실 적응력을 키워내는 데 신앙을 소비하는 건, 민망하거나 추하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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