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나쁜 나라", 김진열 감독, 2015

영화 "나쁜 나라"를 보러 갔다. 나도 미처 예상 못한 감정들에 한동안 사로잡혀서 생각보다 늦게야 결심이 섰다. 몇 번의 망설임과 수많은 핑계들을 간신히 눌러가며 집에서 꽤나 먼 극장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내내 스산했다. 그날따라 날씨는 정말 추웠다. 나도 모르게 손수건을 챙겨 주머니에 넣고 가는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보고 싶은 마음과 피하거나 잠깐 미루고 싶은 마음,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고 꼭 제때 봐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너무나 기다렸던 영화. 이렇게 세상에 나와 주기를 정말 많은 사람이 마음을 다해 기다리고 응원했을 영화. 그러나 마음이 아파 선뜻 몸이 일으켜지지 않는 영화. 이렇게 복잡한 기분이 들 때마다 한숨이 나오게 되는 우리들의 현재.

 (사진 제공 = 시네마 달)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이미 눈물은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닷물이 몸에 닿는 것 같은 한기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도 애썼건만 여전히 오리무중인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얼마나 우리의 진을 빼고 있는지를 객석에 앉아 절감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이 다 빠진 채 나가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텨 온 사람들이 영화 속에 있었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그 힘으로, 살아서 해야 할 일을 기어이 찾아낸 부모들이 있었다.

304명이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날의 세월호참사에서,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희생은 너무나 컸다. 학생 미수습자 4명 포함 250명의 아이가 바다에 수장되었고, 그 아이들의 부모들은 유가족이 되었다. 그로부터 이 유가족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깊은 슬픔과 얼마나 지독한 고통의 나날이었는지는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영화는 ‘투쟁’의 기록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그 모진 시간들을 어떻게 죽지 않고 견뎌 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조차 없이 그저 시간만 끌려고 하는 ‘관계자’들의 냉대를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이제와 돌아보는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참사 발생 뒤 50여 일 만에야 처음 생겼다는 국정조사특위. 여당 국회의원 18명이 그나마 처음으로 진도를 ‘방문’하게 만들었던 그날의 영상 기록은, 울화통이 치밀어 참고 보기 힘든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그저 시작의 시작에 불과했다. 고통이나 울화, 분노에 졌다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아야 했을 가혹한 날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사진 제공 = 시네마 달)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참사 뒤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기적 같다는 느낌이다. 이 여전히 암담하고 눈 앞이 가려진 것 같은 상황마저도 그렇다는 것이다. 2014년 7월 30일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뒤, 정국의 흐름은 숨 가쁠 정도로 빨랐다. 8월 7일에 여야의 양당 당시 대표가 만나 10분 만에 협상을 통과시키고, 다음 날 유가족들은 국회 농성장에서 퇴거를 명령받는다. 정부가 원하는 정해진 수순에 따라 일은 척척 진행되었고, 모든 언로는 막혔다. 바로 그때, 교종 프란치스코의 광화문 미사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데 이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왈칵 나왔다.

지나고 보니, 우리가 나름 잘해 왔다고 뿌듯해 할 만한 순간들도 있었다. 고비를 그때그때 잘 넘긴 것도 있었다. 그래도 유가족들 곁에서 뭐라도 힘이 되고자 애썼다는 위안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자리에 앉아 지켜본 소감은, 그야말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한숨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 가느다란 실낱 같은 끈을 붙잡고 온 날들이었다. 교종이 바티칸으로 떠나자마자 다시 8월 19일 여야는 2차 합의에 서명한다. 유가족들의 목숨을 건 단식과 호소, 수많은 국민들의 연대와 서명운동, 그럼에도 그 모든 순간순간은 가족들과 시민들의 편이 아니었다. 세월호를 영원히 묻어 버릴 수도 있을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서 1년 9개월이 흘렀다. 너무나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외줄타기 같은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녀린 끈은 놀랍게도 끊어지지 않았고, 우리는 이 참사의 진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주 잘 깨달아가고 있다.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이 올 때까지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킬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아주 힘들게 배워 가고 있다. 영화 “나쁜 나라”를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위한 밑거름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시중의 극장이 거의 열리지 않는 이 가혹한 상영 환경 속에서도 이미 3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기억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이 나쁘고 불행한 나라에서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기억을 이어 가고 지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김원(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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