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사제들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자신이 로마 가톨릭 사제와 결혼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열심한 가톨릭 신자들이 공식적으로 “스티브 신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 굿리치의 성 마르코 성당에서 스티브 앤더슨 신부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서있다. 맨 왼쪽에 며느리 케이티(27), 아들 오스틴(24), 아내 신디(49), 뒤쪽에 아들 스티븐(14)과 크리스챤(11). 2003년 앤더슨은 독신 규정의 예외 하에 서품 받은 미시건의 두번째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신디 앤더슨과 그녀의 세 아들은 예외이다. 이들은 굿리치에 있는 성 마르코 성당의 오전 10시 주일미사에 모여든 신자들 틈에 있었다.

본당 신부는 신디의 남편이자 오스틴(24), 스티븐 2세(14), 크리스챤(11)의 아버지이다. 스티븐 앤더슨 신부는 2003년 이래 가톨릭 사제로 활동해 왔는데. 그 당시 그는 미시건에서 두번째로, 개신교 기혼 목회자들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독신 규정 예외 아래에서 서품받았다. 1980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허가 이후, 약 100명의 기혼 남성-- 이들은 주로 미국 성공회 사제였다 --이 가톨릭 사제로서 서품 승인을 요청했다.

자동차 엔지니어인 오스틴 앤더슨은 “물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마 당신은 부제를 의미할 겁니다,’ ‘아마 당신은 다른 교파를 말하는 거겠지요’라고 말하지요.” 그러고 나면 오스틴이 자신의 아버지 직업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듣게 되는 농담이 있다. “그럼 당신은 ‘아버지 신부님(Father Father)’이라고 부르겠네요?”

신디 앤더슨에게 사제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흔치 않으면서도 도전적인 일이다. “그동안 나는 좋은 반응을 들어 왔습니다.” 49살의 그녀가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사례가 더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나를 잘 받아들여 주었어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린 이런 경우(사제의 가족)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

▲ 신디 앤더슨이 남편에게서 성체를 받고 있다. 이 두 사람은 한 장로교 신학교에서 만났고, 남편은 그 뒤 성공회 사제가 됐다. 가족은 1999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케터링 대학 기계공학과 로라 설리번 교수는 그렇게 말한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앤더슨을 따라 이전 본당인 그랜드 블랑 성가정 교회에서 앤더슨이 현재 사목중인 곳으로 왔다. 주일미사 후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앤더슨 신부처럼 가족이 있는 사제는, 우리 아이들이 대화할 수 있고 결혼한 이들이 마음을 통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은 그러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셈이죠.”

또 성 마르코 성당 신자인 케시 트럼블리도 이 말에 동의했다.

“앤더슨 신부님은 우리 모두를 격려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문제로 여기는 이는 없습니다.” “그의 강론에 관해서, 아내가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앤더슨을 지켜본 랜싱교구의 마이클 디볼드 대변인은 본당 신자들이 결혼한 사제 – ‘기혼사제’라는 개념은 바티칸의 사제 독신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입장과 반대된다 - 의 참신함을 환영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디볼드는 “만약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 사제에게 좀 더 다가가기 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존재하는 독신 사제들을 폄하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혼 사실이 자신들의 삶에 긍정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겠죠.”

독신제에 대한 반대없이

앤더슨과 윌리엄 립스콤 신부 – 그는 1997년 가톨릭 사제서품을 받은 미시건 최초의 성공회 기혼 사제로서, 현재 트래버스시(市)의 본당사제이다 – 는 자신들이 로마의 독신 조건을 종식시키는 캠페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사제이지, 정책 결정자가 아닙니다”라고 앤더슨 (50세)는 말한다. 그는 어떤 입장에 서기를 조심스럽게 피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혼과 가족이 사목에 방해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앤더슨은 “기혼자로서, 당신은 결혼사제직의 유익성과 정당성을 보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고대의 방식은, 사제들이 결혼하는 것이었죠… 그것은 오늘날 행해지는 방식이 아니구요.”

4월 9일 성 목요일에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될 예정인 립스콤 신부는, 자신이 독신제에 동의한다고 트래버스시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말했다. 립스콤(70)은 “나는 (독신) 규정에 동의합니다. … 나는 규정을 변화시키기 위한 깃발을 드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아내에게 무언가가 발생한다면, 나는 모든 다른 사제들이 하는 것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와 그의 부인 셜리는 본당 사제관 대신 교회에서 몇 마일 떨어진 자신들의 집에서 산다. 그들의 네 자녀는 이미 다 성장했다 – 그들 중 둘은 현재 가톨릭 신자다. 그는 지난 해 한 아들의 혼배성사를 주례했다.

립스콤과 앤더슨은 모두 그들의 가톨릭교회를 향한 신앙여정이 성공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과 동성애자 사제서품과 관련한 논쟁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립스콤은 그가 가톨릭 신앙에 이끌린 부분적 이유가, 공군에서 성공회 군목으로 28년 동안 일하면서 만난 가톨릭의 사제들과 함께 했던 봉사활동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앤더슨의 여정은, 그 자신을 젊은 시절의 장로교회를 거쳐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오럴 로버츠 대학에서의 학위 취득으로 이어졌다. 1995년, ‘성령파 성공회 교회 (the Charismatic Episcopal Church)’의 서품 사제가 됐는데, 이 교회는 1992년 시작된 운동으로서 전통적인 성공회 실천들과 성령 강림절 교회의 영향(a Pentecostal influence)이 혼합된 것이라고 설명된다. 앤더슨은 부활 교회라 불리우는 성령파 성공회 성당을 브라이튼에 설립했다.

앤더슨은 가톨릭 신자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열망을 부채질한 것은 바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학문적 저작들에 관한 독서였다고 말한다. 앤더슨은 “나는 어떤 것에 대한 반발로 가톨릭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온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그 길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말한다.

그와 그의 가족은 1999년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했다. 그는 2000년에 디트로이트의 성심 대신학교 (Sacred Heart Major Seminary)에 입학했고, 같은 해 현재 은퇴한 칼 멘겔링 주교는 앤더슨이 가톨릭 사제직을 위해 공부하도록 허락해주길 바티칸에 청했다.

신디 앤더슨은 존경하는 맘으로 – 그리고 자상하게도 – 그와 함께 길을 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영향에 대해 함께 탐색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신디는 말한다. 그녀의 남편이 그의 공부가 그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그 여정에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는 좋은 팀이예요’

스티브 앤더슨과 신디는 화이트 레이크 타운십에 있는 화이트 레이크 장로교회의 여름 성경 학교에서 만났다. 그녀는 성경학교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고, 그는 그룹활동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34년 후, 나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모든 노래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는 미사와 같은 다른 모든 교회 활동들을 합니다.” 그녀가 말한다. “우리는 좋은 팀이예요.”

앤더슨 부부 또한 성 마르코 성당에서 몇 마일 떨어진, 그랜드 블랑의 자신들 집에서 산다. 이 부부는 표준적인 가톨릭 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데, 집의 사무실에서 오전 5:30에서 6:30까지 함께 그 기도를 암송한다.

이와 같이 특별한 일요일에, 신디 앤더슨은 나갈 채비를 하며 오렌지색 티셔츠를 준비하는데, 티셔츠의 앞쪽에는 “이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라는 문장이, 그리고 뒤쪽에는 “얼마나 놀라운 신앙입니까”라는 문장이 씌어있다. 이는 그의 남편이 매 강론을 마칠 때마다 쓰는 문구이다. 그가 섬기는 교회와 그가 교목으로 일하면서 신학과목을 가르치는 플린트 파워스 고등학교의 청소년 그룹들은, 기금을 모으기 위해 그 티셔츠를 만들고 있다.

스티브 앤더슨은 오늘 신자들에게 알릴 소식이 있다. 성 마르코 성당에서 단지 몇 달 지낸 후, 37마일 떨어진 몬트로즈의 선한 목자 본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놀람과 아쉬움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가 말했다. “주교님께서는 제가 가진 어떤 것이 그들(새 본당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7월이면 그는 새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열심한 신자인 그랜드 블랭의 마조리 맥엘로이(43)는 눈물을 떨궜다. 세 자녀를 둔 정보기술자인 맥엘로이는 “신부님은 정말 우리와 같았고, 정말 평범함 보통 사람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신부님을 아는 순간부터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마음을 터 놓기가 더 쉬워보입니다.”

그녀는 앤더슨 신부와 그 가족을 본당 안에 받아들이는 것이 “본당 가족이라는 관념 모두를 우리를 위해 함께 결합했다”고 덧붙였다.

번역 / 황인철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09.4.4. 패트리샤 몬테머리]
(자유기고가, 2009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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