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43]

지금 우리 집에는 메리와 로 두 아이만 있고 욜라는 제 외할머니 집에 가 있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늘 셋트로 움직이던 누나하고도 떨어져 홀로 외갓집에 가 있는 욜라의 소식을 전하면.... 이모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언맨, 또봇 등 각종 아이템들을 획득하면서 이모들 주머니를 털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뭘 구체적으로 조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이모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며 탁자 밑에 숨기 바쁜 부끄럼쟁이로, 다만 뛰고 솟고 놀다 아무리 넘어져도 울지 않고, 다시 뛰고 솟길 반복하는 상남자의 모습에 매료된 이모들이 뭐에 홀린 듯 자꾸만 지갑을 술술 열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욜라가 외따로 있게 되었을까?

마트에 가면 욜라는 꼭 수산 코너에 들르는 아이였다. 어느 날은 “엄마, 이거 뭐야? 이거 먹고 싶어.”해서 보니 아주 커다란 랍스터가 아닌가. 남편이랑 연애할 때 딱 한 번 먹어 보고 다시는 안 먹는, 생각보다 맛없는 랍스터. 나는 욜라의 등을 뚜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얘야, 이게 진정 먹고 싶니? 이 집게발 좀 봐라, 우아~ 무섭다아~ (내겐 비싼 가격이 더 무서움). 랍스터는 다음에 크면 (니 돈으로 사) 먹을 수 있을 거야.” 하였다. 또 하루는 “엄마, 이 물고기는 왜 이렇게 생겼어? 왜 몸에 피가 났어?”하며 원양어선에서 잡히자마자 급랭되었다 녹으면서 흐물거리며 다소 핏기를 띤 동태를 보고 물었다.

‘아악, 깜짝이야, 동태가 무섭게 생겼네. 후아.... 애들도 놀랐겠구나, 진정시키자. 진정.’
“응, 얘는 동탠데, 원래 이렇게 생겼어. 멀리서 잡혀서 여기까지 오다 보니 피부가 좀 까져서 이렇게 된 건가.... 어쨌든 아픈 거 아니야. (이미 죽었으니 뭐) 괜찮아.... 흠, 괜찮을 거야.”하며 놀란 아이들을, 아니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리를 뜨려는데 욜라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거 먹을래.”

▲ 부끄럼쟁이 욜라.(사진 제공 = 김혜율)

그런 식으로 수산 코너에 붙어 서서 문어며 낙지며 주꾸미, 갈치, 고등어, 해삼, 멍게, 성게 등을 구경하고 입맛을 다시던 욜라가 외할머니 생신을 축하드리러 외갓집에 갔다가 외할비랑 물고기시장에 가 보자는 말에 그만 혹한 것이다. 꽃게를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욜라는 혼자 남겠노라 결심이 선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반반이었다. 욜라가 없으면 그만큼 내 몸이 편하겠지? 얼씨구나 지화자 쾌지나칭칭나네하는 마음과 욜라를 2주 동안 못 본다니 얼마나 보고 싶을까 벌써부터 시무룩해지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나 딸의 육아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려는 부모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욜라를 남겨 두고 집으로 오는 길, 어두운 차 안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말이 없던 메리가 불쑥 “엄마, 나 지금 우는 거 아냐, 하품해서 눈물 난 거야.”라고 말했다.

대놓고 울기는 멋쩍고, 그래도 두고 온 동생이 보고 싶어 마음이 쓰이는 메리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할 수는 없으니 집에까지 왔는데, 욜라의 부재가 여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욜라도 지금쯤은 엄마아빠 보고 싶다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밤에 자다 깨서 울면서 집에 간다고 떼쓰진 않을까?하는 걱정이 슬며시 올라왔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우려와 달리 욜라는 전혀 아무렇지 않게 지내며 매우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자다가 오줌 싸는 일도 없고 이도 잘 닦는다고 했다. 다만 웃음 띤 얼굴을 하고는 말은 지지리 안 듣는다고 한다. 욜라더러 머리핀으로 장난치는 거 하지 말라고 열 번도 넘게 말하던 중 기어이 그 머리핀에 눈을 찔리고 만 내 동생이 아파 울며 욜라 엉덩이를 후려치려고 하는 순간, 일이 어찌 돌아간 건지 갑자기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하는데.... 욜라가 이모를 ‘심쿵’하게 한 전말은 다음과 같다. 개구짐을 넘어서 작은 악마로 변모한 녀석이, 눈알을 감싸 쥐고 고통을 호소하며 화를 내는 이모에게 다가가 “이모, 미안해. 엉엉엉. 미안해, 이모. 엉엉엉”하고 울면서 양팔을 벌리고 안아 주었단다. 그 녀석의 깜짝 사과는 나도 몇 번 겪었는데 실로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 어떤 화라도 단숨에 식게 만들었고, 화낸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다.

어느 날 말 안 듣는 욜라에게 화가 난 내가 큰소리로 욜라를 나무라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묵묵히 듣고만 있나 싶던 욜라가 갑자기 큰소리로 울며 내게 “.... 잘못했어! 엉엉엉.”하는 게 아닌가. 엄마가 잘못한 거라고 항의하는 것으로 안 나는 순간, 그래, 하는 데까지 해 보자, “뭐어? 엄마가 잘못했다고? 엄마가 뭘 잘못했는데!” 하며 더 큰소리로 화를 냈다. 그러자 욜라가 아이구 참, 보다 선명한 발음으로 “아니, 내가 잘못했다고, 엉엉엉. 엄마, 잘못했어, 미안해. 으아앙~~”하는 게 아닌가. 그날 나는 결심했었다. 이 천사같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바르고 착하게 살겠노라고. 반대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쇠고랑이라도 차겠노라고! 다른 집 아이들은 엄마한테 혼날 때마다 반성하고 잘못을 시인하며 적절한 사과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이라도 (절대 잘못을 시인하는 법이 없으며 말싸움으로도 이겨 낼 수 없는 메리라는 아이를 딸로 둔) 나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에 젊은이들이 쓰는 말, 조금 속되기는 하나 감동을 넘어서는 감동, ‘개감동!’이라는 표현을 빌리고 싶다.

▲ 사나이 대장부 욜라.(사진 제공 = 김혜율)
하루는 막내 이모가 욜라에게 무심히 물었다.

“이모한테 무슨 선물 줄 거야?”
“선물 안 줘!”
“으응? 이모는 선물 받고 싶은데~ 욜라가 선물 안 주면 이모가 슬퍼할 거야 어쩌구저쩌구....”

욜라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군 하는 투로 선물을 약속했다.

“그럼 이모한테 나는 별 줄게.”
“응? 뭘 준다고?”
“별. 하늘에 반짝이는 별 줄게. 달도 주고.”
“뭐? 하늘에 별도 달도 다 따 준다고?”
“응. 별이랑 달이랑 이모 많이 줄게.”

자, 여기서 이모는 ‘감동을 넘어서는 감동’을 받고 말았다는데.... 그런 엄청난 말을 뱉은 욜라는 슈퍼에서 과자를 골랐을 뿐이라는 투의 지극히 일상적인 표정이었다고.

듣자 하니 시간이 갈수록 욜라는 엄마아빠를 그리워하는지도 의문이며 몇 밤만 더 자면 엄마아빠가 오냐고 묻기는 하나, 그 뉘앙스가 외할머니집에 더 있을 수 있어서 기뻐하는 듯하다는 동생의 해석이 너무 오버한 것이 아닌가 싶다가도, 저녁마다 화상 통화를 엄마아빠가 아닌 자기가 사귄 이모들하고 하는 모양을 볼 때면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오늘 오랜만에 욜라와 전화 통화를 했다. 옆에서 제 외할머니가 속살속살 일러 주는 대로 말을 한다. 나는 모르는 척 두고 보았다.

외할머니 : (엄마, 욜라 씩씩하게 지내요)
욜라 : “엄마, 욜라 씩씩하게 지내요.”
외할머니 : (엄마, 사랑해요)
욜라 : “엄마, 사랑해요.”
갑자기 외할머니가 끼어들며 “이제 욜라, 대답도 잘한다. 욜라야~ 부르면 네~ 한다. 자 해 보자, 욜라야~”
욜라 : “네~”

너무 모범적으로 변모한 욜라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무리수를 두시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 (엄마, 저는 사나이 대장부예요)
욜라 : “...”
외할머니 : (욜라야, 엄마, 저는 사나이 대장부예요~ 해야지)
욜라 : “....익, 싫어!!” (홱, 멀리 달아나는 소리)
“크하하하, 엄마~ 사나이 대장부가 거기서 왜 나와? 그리고 말을 왜 계속 옆에서 가르쳐 줘~ 욜라도 다 할 줄 아는데.”

딸만 넷을 키운 우리 엄마는 그렇게 오늘 사나이 대장부를 키우시며 못다 한 꿈을 이루시는가.

▲ 아우에게 보내는 메리의 편지.ⓒ김혜율
막내 이모가 며칠 여행을 떠나고 같이 로봇놀이해 주는 이모가 없어서 어찌 지내나 궁금하던 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하고 잘 지내고 있는 욜라의 모습이 가족 카톡방에 움직이는 사진으로 올라왔다. 할머니랑 장난치며 마구 깔깔거리며 웃는 얼굴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서 훌쩍 크게 자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아이가 제 마음주머니를 넉넉히 넓히는 중이다.

며칠 전 유치원 갔다 온 메리가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엄마, 지금 가서 욜라 데리고 와.”

그러더니 유치원에서 욜라에게 쓴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야 한단다. 그래, 얼마든지 같이 가 주마. 봉투에 외갓집 주소를 적고 받는 이엔 욜라 이름을 적어 우표도 한 장 붙여서 편지를 부치자. 너는 물었지. 이 편지가 밤새도록 욜라에게 가는 거냐고. 응, 그래. 밤새 편지가 분류되어 우편차에 실려 가는 거지. 다음 날 해가 떠 날이 밝으면 우체부 아저씨가 외갓집 우편함에 네 편지를 배달해 주실거야~.

“히힛, 욜라가 편지 받고 깜짝 놀라겠다. 아~ 어서 빨리 내일이 됐으면 좋겠어, 엄마.”
‘메리야, 그것이 그리움이고 사랑의 마음이란다.’

훗, 녀석들.... 그렇다면 그에 맞춰 마음의 키를 키워야 하는 건 이제 엄마로서의 내 자신이구나. 그리하여 며칠 뒤로 다가온 음력 설에는, 한 살 더 먹어 형님이 된 고 녀석, 그 형님의 형님인 요 녀석 둘 사이를 끌어당겨서는 꼬옥 안아 줘야지. 부쩍 자란 엄마 품으로, 더 넉넉해진 엄마 품으로.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4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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