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로봇, 소리", 이호재 감독, 2016

눈 뜨면 보이고,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던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유조차 알 수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변할까?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가족의 실종은 상상으로라도 견디기 쉽지 않은 경험이다. 영화 “로봇, 소리”는 바로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아버지가 주인공이다. 해관(이성민 분)은 사라진 딸을 찾아 10년 넘도록 전국을 다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세상의 모든 통화를 기록하고 목소리를 추적해 그 위치를 찾아내는 기능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인간형 로봇)을 만나게 되고, 해관은 로봇의 정보와 도움으로 딸을 찾아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다.

▲ "로봇, 소리"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왼쪽)과 해관(이성민 분).(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A. I.”(스티븐 스필버그, 2001)나 “아이, 로봇”(앨릭스 프로야스, 2004)과 같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의 교감을 다룬 영화를 우리는 이미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소재로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낯설다. 앞에 언급한 휴머노이드 소재 할리우드 영화들은 주로 로봇과 인간의 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로봇, 소리”는 딸을 찾는 아버지의 여정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SF 혹은 음모영화의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상실, 후회, 자기성찰이라는 주제를 보다 깊이 다룬다. 그런 점에서 딸을 찾는 여정을 통한 한 남성, 아버지의 성장담이며, 치유와 회복의 영화라 할 수 있다.

해관은 시쳇말로 ‘딸바보’다. 해관과 딸 유주는 유주가 어릴 때부터 둘만의 아지트(아이스크림 가게)와 비밀을 나누는 사이좋은 부녀였다. 하지만 유주가 성장하여 사춘기를 지나면서 해관과 그녀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졌고, 유주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 자취하게 되면서 둘은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들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한 것은 가수라는 유주의 꿈이었다. 해관은 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가수가 되는 것을 일방적으로 반대했다. 그리고 서울에 살면서 가수가 되겠다는 유주를 무작정 대구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해관과 유주는 차 안에서 크게 말다툼을 하고 그 뒤 유주는 사라졌는데, 그 날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다. 모두가 유주가 지하철 사고로 죽었다고 했지만 해관은 그럴 리 없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유주를 찾아 방방곡곡을 헤맸던 것이다. 하지만 로봇이 인도해 준 곳에서 만난 유주의 남자 친구, 그가 들려 준 유주의 메시지는 해관이 유주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서야 해관은 유주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딸의 죽음,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얼마간의 시간 뒤에 그 상실을 극복해 낸다. 그렇다면 해관에게 유주를 찾아 다녔던 10년은 딸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필수적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유주에 대한 해관의 애정은 컸으며 맹목적이었으니 말이다. 해관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이 딸의 죽음을 마주하기 위한 준비의 필수조건이었다면, 로봇과의 만남은 충분조건이었던 듯하다. 로봇은 그동안 잘 몰랐던 유주의 모습으로 해관을 인도해 주었고, 해관이 무시하며 듣지 않았던 유주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었고, 그 결과 해관은 딸 유주를 이해함으로써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로봇은 대상을 잃은 해관의 부성애를 위한 새로운 대상이 되어 준다.

▲ "로봇, 소리"의 한 장면.(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딸을 찾는 아버지와 로봇의 동행 여정을 보여 주면서, 영화는 해관과 유주라는 부녀 관계를 해관과 로봇이라는 유사 부녀 관계로 자연스럽게 치환시킨다. 영화 제목이 “로봇, 소리”인 것은 해관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기 때문이다. 즉, 로봇은 해관에게서 이름을 받았다. 망가졌던 로봇이 목소리를 얻고 해관을 통해 인간과 교감하면서 로봇 ‘소리’는 해관에게 점점 딸처럼 받아들여지고, 마침내 해관은 ‘소리’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감청 로봇을 확보하려는 미국과 한국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해 로봇 ‘소리’를 배에 태워 해외로 보내려 한 것인데, 그 이유는 ‘소리’가 분쟁 지역에 사는 한 소녀를 찾기 위해 지구에 떨어졌고, 그것이 ‘소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옷을 입혀 주고, 로봇의 꿈을 이루도록 해 주면서, 즉 해관이 딸 유주에게 주고 싶었던 애정을 ‘소리’에게 쏟음으로써 그는 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치유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결국 딸을 잃은 딸바보 아버지의 애도 과정을 그린 서사이기도 하다.

독특한 소재를 감성적인 부성애의 이야기로 귀결시켰다는 점, 중반 이후 몇몇 장면에서 감동을 이끌어 내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기법들이 과도하게 사용되었다는 점, 이하늬가 연기하는 항공우주연구원이나 이희준이 연기하는 국정원 요원 등 캐릭터가 잘 잡힌 인물들을 서사에서 적극 활용하지 못한 점 등은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다. 길게 나열된 단점의 항목들이 영화의 가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쉬움의 크기는 늘 가능성과 기대의 크기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적절히 작용하는 유머, 신선한 소재, 안정된 연기, 보편적인 감수성에 호소하는 주제와 다각적으로 전개되는 서사 등은 따뜻한 가족 영화로서 이 영화가 갖춘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 딸 유주(왼쪽)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해관.(사진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오늘 '정민아의 주말영화'는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성진수 씨가 집필해 주셨습니다. 칼럼을 써 준 성진수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성진수(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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