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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기다리는 단맛, 조청[부엌데기 밥상 통신 - 07]

강추위가 몰려온 데다 눈까지 쏟아져 내려 얼마간 우리 마을은 고립되었다. 때문에 오기로 했던 손님도 못 오게 되고, 우리 집에서 열리는 공부 모임도 취소될 확률이 높아졌다. 온 세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 정지된 가운데 어쩐지 외로운 황홀한 기분.... 그렇다. 고립감이 주는 이상한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날 추운 걸 핑계로 마음껏 게을러지고 싶은 열망에 휩싸여 오히려 몸을 부지런히 놀렸다. 땅콩 넣고 멸치 볶음을 해서 밑반찬을 만들고, 시래기 청국장도 큰 솥으로 한가득 끓이고, 바깥 항아리에서 반쯤 얼어 있는 아이스 동치미도 미리 넉넉히 꺼내다 놓고... 음하하! 이제부터 며칠은 밥만 해서 먹으면 되리라.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겨울잠 자는 곰 흉내나 내 볼까나?

한편, 부지런쟁이 우리 신랑은 나무하러 다닐 수조차 없는 며칠 동안 조청을 만들겠단다. 이렇게 추운데 조청을? 이때다 하고 휴가를 가지려는 나와는 달리, 일 벌이기를 겁내지 않는 희한한 사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굿이나 보고 조청이나 먹자는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과연 혼자서 무지무지 바쁘다.

   
▲ 시래기 청국장은 질리지도 않아라. 몇 날 며칠 우리를 먹여 살린 고마운 밥상.ⓒ정청라

조청용으로 갈무리해 둔 나락을 정미기에 찧고, 쌀을 골라서 씻어서 불리고, (1월 초에 미리 싹을 틔워서 말려둔) 엿기름을 믹서에 갈고, 식혜밥을 삭힐 항아리를 씻어서 말려 놓고.... 그뿐인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난로에 넣을 장작을 나르느라 수도 없이 들락날락거린다. 너무 추워서 나와 아이들은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이불을 둘둘 말아 덮고 있는 와중에 방에 들어와 잠깐 앉을 틈조차 없이 말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고두밥이 다 쪄지고 엿기름 물에 버무린 고두밥은 드디어 아랫목 항아리에 앉혀졌다.

"오늘은 방이 너무 뜨거운 거 아니에요? 등짝이 녹아내리겠네."
"식혜밥이 잘 삭으려면 방바닥이 뜨거워야 돼요. 너무 뜨거우면 애들이랑 청라 씨가 윗목에서 자요."

그렇게 말하고는 식혜밥 들어 있는 항아리에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두 개나 덮어 주며 단도리를 해 준다. 오늘밤 이 방의 주인은 저 항아리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조청의 맛과 양은 식혜밥이 얼마나 잘 삭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고, 식혜밥이 잘 삭고 안 삭고는 삭히는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기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리라. 이건 그간의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결론!)

다음 날 아침, 아니나 다를까 눈 뜨자마자 항아리의 안부부터 묻는 신랑. 너무 오래 삭혔는지 식혜밥에서 약간 쉰내가 난다며 걱정을 했지만 내가 먹어 보니 식혜밥이 충분히 삭아 식혜물이 아주 달았다. "나도 먹을래!" 하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맛을 보여 줬더니 아이들도 달다며 좋아라 한다. 심지어 다울이는 "설탕 넣었어? 어떻게 이렇게 달지?" 하면서 능청까지 떨고 말이다.

   
▲ 식혜밥을 소쿠리에 받쳐 식혜물을 거르고 있다. 단물 한 방울 남김 없이 꼭꼭 짜서 거르고, 남은 식혜밥 찌꺼기는 논으로! 버릴 게 하나 없다. ⓒ정청라

우리들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신랑은 식혜물을 걸러 들통에 담았다. 쌀 네 되로 밥을 했는데 식혜물 양이 많아서 큰 들통에 한가득 담고도 한 바가지나 더 남았다. 이제 식혜물이 졸아들 때까지 온종일 저걸 졸여야 한다는 건데,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나는 혹시나 오후 간식 시간에 조청 맛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냉동실에 얼려둔 가래떡을 꺼내 놓고 식혜물이 졸아드는 기세를 살폈다. 아이들도 노는 틈틈이 조청이 얼마나 졸여졌나 궁금해하며 들여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신랑은 꼬박 난로 앞을 지키고 서서 조청을 저어 주고, 거품을 걷어 내고, 나무를 넣고.... 혹시나 조청이 끓어 넘칠세라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조청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오전 내내 졸였는데도 식혜물이 얼마 줄어들지 않았다. 낮잠 자고 일어나서 또 살폈지만 들통 가득 식혜물은 7센티미터 정도나 졸아들었을까? 할 수 없이 오후 간식은 가래떡 말고 고구마로 대체! 저녁밥 먹고 나면 입가심으로 맛볼 수 있겠지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웬걸, 아직도 더, 더 졸여야 한단다.

결국 밤 늦게까지 졸이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졸여 점심 먹을 무렵에야 모든 작업이 완료되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오래오래 가슴을 졸이며 기다려야 했던 단맛이란 말인가. 들통과 국자 바닥에 눌어붙은 조청을 맛보며 나와 아이들도 아주 오랫동안 "음~" 소리를 내며 맛을 음미했다. 설탕처럼 강렬한 단맛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그 깊고 그윽한 단맛에 자꾸만 숟가락을 빨면서 말이다. 또한 오후에는 숯불에 구운 가래떡에 해바라기씨랑 검은깨를 잔뜩 빻아 넣은 조청을 찍어 먹으며 더없는 행복감에 젖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조청 만들기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던 이는 맛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길고 긴 낮잠에 빠져 들었다. 우리 가족 1년 먹을 조청을 마련한다고 이틀 동안 밤잠도 설쳐, 새벽부터 불 때.... 정말 많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결국 우리가 맛보는 단맛은 그의 헌신과 정성이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건데, 그걸 생각하면 조청 한 방울도 어찌 함부로 흘리리오. 이게 어떤 단맛인데, 이게 얼마나 오래 기다린 단맛인데!!!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아이들에게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옛날에 멍멍이랑 야옹이랑 괴물이 살았어.(다랑이는 밤마다 '멍멍 야옹 괴물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모든 이야기에 이 세 인물이 등장한다.) 셋이서 같이 놀고 있는데 어느 날 다울이 다랑이 집에서 다디단 냄새가 나는 거야. 그래서 찾아가 봤더니 다울이 아빠가 조청을 만들고 있지 않겠어? 셋은 조금만 기다리면 조청을 얻어먹을 수 있겠지 하고 잠자코 기다렸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더 기다려야 한대. '이젠 됐겠지' 하고 물어보면 또 더 기다려야 한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결국 기다리다 지쳐서 눈알이 튀어나오고 목이 빠지고 잠이 쏟아져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에야 '와, 드디어 조청이 다 됐다' 소리가 들렸대. 그렇게 기다려서 먹는 맛이니 얼마나 맛있어? 셋은 가래떡에 조청을 찍어 게눈 감추듯 냠냠 맛있게 먹었대."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줄 때 아이들은 야옹 멍멍 괴물이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치는 대목에서 배꼽 빠지게 깔깔 웃어댔다. 남 얘기가 아니라 더 실감이 났던 모양이다. 크크. 오랜 기다림은 이렇게 달달하고 재미난 이야기로 남았다.

   
▲ 우리 가족 일 년 먹을 조청이 갈무리되었다. 몇 개는 오는 손님 선물용.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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