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떠나며

기형도의 ‘밤눈’이라는 시를 읽습니다.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은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2007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전신인 <가톨릭인터넷언론-지금여기>를 다음 카페로 열 때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처럼 종알거리며 조용히 꾸었던 꿈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몬 베유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분열된 세상에서 점이지대를 확장하며 경계선을 넘나들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교회와 세상, 나와 너 사이를 점선으로 잇기 위한 안간힘이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었습니다. 혁명은 단지 바깥에서만 벌어지는 투쟁이 아니었지요. 함석헌 선생의 말마따나 ‘너 자신을 혁명하라’고 지긋이 나 자신에게 일러주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잣대를 교회를 향해, 이윽고 나 자신을 향해서도 들이밀어야 제대로된 ‘영적 혁명’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난 8년 동안 ‘가톨릭언론’ 매체를 통해 벗들과 더불어 나아갔던 것이지요. 나름대로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이제 그 생활을 마감하고 또 다른 하늘을 찾아 떠나려고 합니다. 2016년 1월 27일, 정기이사회를 거치면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맺었던 공식적인 인연은 마무리됩니다. 지난 1년 동안은 상임이사로서 매체의 살림을 전담했고, 간간이 주필로서 칼럼을 게재해 왔지만, 이제 그것도 오늘로 마감합니다. 여기서 내 인생의 행간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떠나면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아껴주시고 지지해 주셨던 독자들과 후원자 여러분에게 먼저 감사의 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를 응원해주시길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교회언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른 종단은 교권세력을 견제하는 장치가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가톨릭교회는 자체정화를 위한 견제기관이 없는 까닭입니다. ‘정론직필’의 가치를 살리는 언론은 사관(史官)이며 간관(諫官)입니다. 이들이 있어야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일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매체와 나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한 채 한통속으로 여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매체와 나 자신이 한 몸처럼 느껴졌고, 이는 내가 흠모해 마지않는 도로시 데이가 ‘가톨릭일꾼’운동을 ‘신문’으로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인들이 조언해 준 것처럼 언론은 ‘공적 기구’이며, 어느 개인과 동일시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초대 편집국장, 주필, 상임이사 등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어쩌면 ‘언론은 공적 기구’이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더 홀가분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편집국장을 맡고 계시는 분은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을 오랫동안 맡아 오셨던 분이고, 언론에 튼튼한 디딤돌을 놓으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대가 되고, 여러분의 계속적인 지지를 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당분간 일에서 손을 놓고 쉬려고 합니다. 원고도 최소한으로 줄일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가장 기쁜 일은 지난해 12월에 제주 강정에 찾아온 도로시 데이의 손녀인 마사를 만난 일입니다. 저는 2월 중순에 뉴욕에 가서 두 주일가량 머물며 도로시 데이의 흔적을 더듬어 보려고 합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의 현재를 두루 살필 생각입니다. 그곳에 일꾼신문을 만들고 있는 메리하우스도 있습니다. 성요셉하우스, 피터 모린 농장도 방문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도로시 데이가 죽기 전 5년 동안 머물렀던 버몬트의 농장도 가고 싶습니다. 이번 뉴욕 방문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미리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충분한 휴식과 탐색과정을 거치면 도로시 데이의 정신을 한국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지난해 만난 미국 가톨릭일꾼 회원들을 보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은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의 전사로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한 철저한 신앙적 확신 안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국교회에도 양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마디로 “(제도)교회 안에서, 교회와 다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습니다. 교리를 넘어서는 신앙, 하느님 자비를 몸으로 실천하는 신앙이 한국교회 안에서 우러나오길 기대합니다.

기형도 시인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선이 하느님 자비 안에 머물 때, 우리가 지상의 어느 하늘 아래서 배회하더라도 여전히 아름답고 힘찹니다. 저 또한 그렇게 아름답고 힘찬 영혼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 길에서 여러분을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안녕하시고, 행복한 웃음이 집안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6년 1월 27일
한상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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