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어느 책에서 읽은 문답

1. 첫째 질문, 개인과 사회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지난달 28일, 한일 외무장관이 발표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합의 내용에 대해서 피해 당사자 이용수 할머니는 “오늘 회담결과를 전부 무시하겠다.... 우리가 돈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죄에 대한 공식 배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어느 노사제가 신문 지상(서울신문, 1월 18일자)을 통해 의견을 피력했는데, 내가 파악한 그분의 논지는 이러하다.

“어린 나이에 성적 노예로 전락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당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정은 딱하다. 그러나 “국제적 안보환경과 경제문제, 한국과 일본의 선의의 국민에게 피해”가 가서야 되겠는가. 그러니 “국익을 위해서 상당한 결실을 거두며 합의한 내용에 딴지”를 걸어서는 곤란하다. 바야흐로 지금은 사사로운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을 앞세울 때이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선동해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가로막는 단체들은 부당하다.

이것이 내가 읽은 노사제의 기고문이다. 그분의 충심을 잘못 이해한 탓인지 몰라도, 그 기고문을 읽자마자 어느 책에서 본 질문이 생각났다. “개인과 사회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국익을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소수의 개인들은 자중해 달라는 식의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질문이기도 하다. 소수의 권익을 이야기하거나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때마다 듣게 되는 ‘개인의 이익을 어떻게 일일이 다 챙길 수 있겠느냐’는 대답은 거의 정해진 공식에 가깝다.

▲ 지난 14일 용산참사 7주기를 앞두고, 새누리당사 앞에서 유가족 등이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새누리당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규탄했다. ⓒ배선영 기자

2. 둘째 질문, 권위는 언제 적법하게 실현되나요?

올해 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들 가운데 용산참사 진압 책임자 김석기 후보가 있다.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에도 책임은커녕 으리으리한 직함을 유지하다가 국민의 대표자가 되겠다며 벌써 두 번째 그 자리들을 박차 버린 김 후보자는 용산참사를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고 술회한다. 자신이 지휘한 진압 작전이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강변하는 한편, 대통령께서도 “법과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인정하셨음을 자랑한다. 정당하고 적법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애초에 따로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또 그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것이라도 정당하고 적법해지기라도 한 듯 기염을 토하는 후보자다.

그러고 보면 직사 물대포를 맞고 아직 병상을 떠나지 못하는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도 ‘정당하고 적법한 법집행의 대상’이란다. 노동인권을 주장하다가 오늘도 해직의 아픔을 곱씹는 이들도 정당하고 적법한 법집행의 결과일 뿐이란다. 이 ‘정당하고 적법한 법집행’의 행렬 앞에서 나는 어느 책에서 본 또 다른 질문을 떠올린다. “권위는 언제 적법하게 실현되나요?”

3, 어느 책은 대답한다

▲ 클라우스 디크, 베른하르트 모이저, 루돌프 게리히, 안드레아스 쥐스 글, 최용호 옮김, "'YOUCAT 고해성사", 가톨릭출판사, 2014
내가 본 어느 책은 “개인과 사회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라는 질문에 ‘하느님 앞에서는 무엇보다 각 개인이 인격체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공동체는 그 다음 자리를 차지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책은 사회란 결코 개인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부연하기까지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노사제께서는 뭔가 오해하고 계신 것 같다.

그뿐 아니라 내가 본 그 책은 권위가 언제 적법하게 실현되느냐는 질문에 ‘공동선의 목표에 도달하려고 권위가 공동선의 직무를 수행하고 정당한 수단을 사용할 때’라고 응답한다. 그 공동선이 뭐냐고 물을까 봐 그 책은 ‘공동선은 개인의 기본권이 존중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마음껏 발전할 수 있는 곳에서 형성된다’는 문장도 덧붙이고 있다.

내가 읽은 그 책, 노사제와 공권력의 집행자에게 당돌하게 대드는 그 책이 불온 좌경 서적으로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읽은 그 책은 오스트리아 주교회의가 발간하고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추천한 “가톨릭 청년 교리서”(Youcat)다.

박용욱 신부 (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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