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매진 주빌리" 저자, 양희송

부채탕감, 노예해방, 토지반환이 과연 21세기에 맞는 이야기일까. 지나친 빚 때문에 삶이 망가지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이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고 싶다는 바람의 끝이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인 현실, 공공재인 토지를 일부가 사유해 부당한 이득을 얻는 것이 당연할까? 우리에게 사람을 보호하려는 사회적 상상이 과연 있을까? 생각의 틀이 바뀌면 현실이 바뀐다.

이 책 "이매진 주빌리"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에 머물거나 그동안 들어왔던 흔한 희년 이야기가 아니다.

청어람ARMC에서 인문, 사회, 문화, 신학 대중 강좌를 기획해 온 양희송 대표가 이 시대 삶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희년으로 상상하라”고 주문한다. 이번에 출간한 책 “이매진 주빌리”에서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당연한 그러나 전혀 당연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그는, “뭘 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을 신념처럼 안고 사는 이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의 단초로 ‘희년’(Jubilee)을 제시하고 있다.

‘희년’은 고대 근동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내부적 가난과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규정이었다. 구약 성경 레위기에 등장하는 희년은 7번의 안식년이 지난 뒤 맞는 50번째 해로,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부채 탕감, 노예해방, 토지반환”이 이뤄지는 때다.

그는 '희년'이 하나의 동화 이야기가 아닌 실제 우리 현실이라고 깨우친다. 예를 들어 그는 노예제는 한국에서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논의 속의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이 노예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희년 사상은 유대-기독교 전통에서 등장한 강력한 사회경제적 상상이며, 종교적 영역을 넘어 빈곤과 압제 속에서 빚지고 빼앗기고 팔려 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간절한 열망에 답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통찰의 원천이 되었다”는 그는, “희년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밖을 보게 하고, 만연되어 있는 관점 너머를 보게 한다”고 말한다.

▲ 양희송, "이매진 주빌리", (주)메디치미디어, 2016
“이매진 주빌리”의 희년은 구약의 정신을 품고 신약을 통해 확장된 채로 21세기의 우리 앞에서 묻는다. 오늘 빚진 자들이 진 무게는 온당한가, 현대의 노예는 누구인가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토지를 사유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은 마땅한가. 저자는 이에 답하기 위해 과도한 부채를 양산하는 금융기관의 대출정책,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비인간화된 노동, 용산참사와 재개발로 땅에서 쫓겨 나는 이들을 불러낸다.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갈망할 수 없다”며, 사회적 상상력의 회복을 ‘희년’을 통해 제안하는 양희송 대표를 만나, 그와 그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의 ‘희년’은 제도가 아닌 상상력의 단초

먼저 그는 한국 사회의 상상력 빈곤에 대해서, “뭘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신념처럼 확고하다. 신뢰할 만한 정치 그룹, 시민사회도 없고 무언가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절망의 증거가 된다”며, 현실을 풀어갈 원천이 없고 절망이 당연시되는 것, 희망이나 절망에 대한 논의 자체가 주저앉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상상력, 통찰을 어디에서 가져올 것인가를 찾던 중, 역사적으로 삶이 흔들리고 힘들 때, 기존에 수용되기 힘들었던 과감한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그는, “무엇을 시도하기 전에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상력의 크기에 따라 실현의 크기도 달라진다”며, 상상력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희년과 사회적 상상력을 접목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이미 성경에 사회 회복을 위한 근거가 있고, 실천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너무 달라졌는데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희년’은 문자 그대로 적용하고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고, 환기시키며 자극하기 위한 단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교회에서 성경의 가치를 왜곡, 축소해 전달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특히 올해 가톨릭 교회에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했지만 희년과 관련한 별다른 구체적 언급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개신교 신자로서 종교의 역할을 가장 고민하면서 책을 썼다는 그는, 그리스도교는 2000년 역사적 기록 안에서 교회가 희년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평가해야 하고, 무엇보다 희년이 규정하는 사회적 실천을 제거하고 ‘영성화’해 온 것을 대해 성찰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매진 주빌리" 저자 양희송 대표. ⓒ정현진 기자

“종교는 희년을 영성화해 왔다”

“‘희년’은 사회제도적 측면보다는 종말론적, 묵시록적 시간을 세는 단위로 여겨졌다. 종교에서 실천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자주 쓰는 것이 영적 가치로의 환원이다. 영적 가치는 어떤 부분에서는 필요하지만 실천과 행함을 요구하는 가르침을 영적, 내면적 가치로 환원시키면 그것이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 알리바이가 되고, 종교가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책을 쓰면서 ‘영성화’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언제나 주의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과 얼마나 희년을 강조하지 않았는가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면서, 가톨릭교회가 이번에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한 만큼, “영성화에 대한 유혹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어떻게 실천과 행함으로 희년의 가치를 드러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이번 기간에 집중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에 1억 원으로 40억 원의 대학생 학자금 대출금을 탕감해 준 미국의 롤링 주빌리 그리고 한국의 주빌리 은행을 보면서 흥미롭게도 희년이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주는 데 반해, 오히려 교회는 상당히 조용하다면서, “역설적으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자”며, 사회적 움직임을 교회가 인정, 공유, 수용하고, 부채탕감 외에 희년의 가치를 실천하는 영역을 발견하고 시도하는 계기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는 교회가 먼저 주도하지 못한 것이 앞서 말한 실천을 회피하려는 영적 환원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교회 밖의 자극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실망스러움을 넘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회로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빚을 탕감해 주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일면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고액 세금 체납자가 아니라 보증이나 사업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과도한 고통을 겪는 이라면. 금융권 10퍼센트 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30퍼센트 대의 이자율을 감안한다면,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빚진 사람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대출 정책에 대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양희송 대표는 책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원인을 묻는 질문과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 가치관의 전환은 대중이 종교에 바라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종교의 책무에 대해서, “종교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다”며, “종교는 법적, 제도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앞에서 가져야 할 태도, 피해자를 돌보고 우선시하며 다가가고 억울함을 들어주는 태도를 보이는 것. 그 지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회가 희년이 어떻게 사회 안에서 수용되고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이야기해 준다면, 교회의 소중한 가치가 실현되는 선순환이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구체적인 정책과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집단들이 힘과 영감을 얻게 될 것이라면서, “종교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더 많이, 세련되게 이야기해야 하고, 다양한 논의로 퍼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 '희년', 앙리 르죈.(1819-1904)

예수의 공생활은 희년의 의미를 확장한 시간

양희송 대표가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 체험한 것이 있다. 희년의 관점에서 신약성경, 예수 공생활의 의미를 새롭게 읽고 해석한 것이다.

이미 개별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희년이라는 실에 성경을 다시 꿰어 보니 새로운 관점이 보였다는 그는, “예수의 공생활은 새로운 희년으로 나가겠다는 선포로 시작됐으며, 구약의 희년에서 그 대상과 의미를 확대한 시간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구약의 희년은 하느님의 가업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고, 선민들의 특권이었기 때문에 “네 가족을 보호하라”는 규율을 원론적으로 적용하면 배제되는 이들이 생긴다. 하지만 예수는 세리, 창녀, 문둥병자 등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이르는 이들을 먼저 만남으로써 소외되던 이들을 끌어들인다. 또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는 “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들”이라고 이름으로써 ‘가족’의 범위를 새롭게 확장한다.

양희송 대표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사회적 이방인, 소수자, 약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수가 바꾼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희년은 이렇게 복음의 의미를 다양하게 재조명하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소스라치게 확인하도록 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희년의 첫 시작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며, 안식일, 안식년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때, 희년도 지킬 수 있지만, 오늘날에는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칠 정도로 안식일조차 지켜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희년의 회복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의 회복”이라고 의미를 다시 짚었다.

양희송 대표는 이 책의 목적은 성서학 논문이나 당위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치열하게 시도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접목되는 다리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히면서, “이 책을 통해 희년의 논의가 시작되고, 사회, 경제, 정치적 연구와 연결될 수 있다면 족할 것”이라며, 나머지 상상력은 독자들의 몫이므로 더 많이 행간을 채워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업에 이어, 희년의 내적 의미, 개인적이고 영성적 차원을 별도로 재조명해 볼 생각이다. 희년의 영성화를 경계하자고 했지만, 너무 치우쳤기 때문에 다른 측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하는 그는, “논의를 내면과 외면, 개인과 사회, 개인구원과 사회정의로 나누는 것은 적절치 않다. 희년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유기적 결합,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적 상상력을 만들어 가는 논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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