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서 보낸 4년]

▲ 소풍 갔던 날

노작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이제 다시 저녁 먹을 시간이 온다. 애들은 노작시간이 끝나기 두어 시간 전부터 배고프다고 난리다. 같이 배고프다고 곡소리를 내는 게 이쯤 되면 시위 수준이다. 나도 시위대에 합류해서 곡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진짜 정말 배가 고프다. 아침에 얼마나 많이 먹었느냐는 무시되는 게 당연한 듯 상관없는 것이 푸른 누리에서의 허기짐이다.

긴 노작시간이 끝나고 먹는 밥의 맛을 나는 보람찬 맛이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한 번도 이렇게 긴 시간을 일해본 적이 없었고, 일을 하느라 허기져 본 적도 없었다. 창 밖에 말끔하게 정리되어 가지런히 놓여 진 땔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면 밥이 맛없을 수가 없다.

한 시간 반 정도 쉬고 나면 다시 명상시간이 돌아온다. 짧아진 뒤로는 명상 시간에 대해 불만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20분도 못 참는 친구들은 그새 또 장난치거나 잠들어 버린다. 명상이 끝나면 다 같이 한 사람 씩 주어진 종이에 일지 및 일기를 쓰고 파일에 보관한다.

▲ 화전

Toilet Friend

우리는 푸른 누리에서 TF라는 것을 결성했다. TF는 Toilet Friend의 줄임말이다. 화장실을 같이 가는 친구들끼리 만든 모임이다. 밤이 되면 방과 화장실 안을 제외한 어디에도 불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어두컴컴하고 으슥하기 때문이다. 같이 가서 보는 볼 일의 목적이 다르더라도 기다려 주는 게 TF의 철칙이다.

푸른 누리에서 큰 볼일 보는 일은 굉장히 흥미롭다. 처음에 왔을 때 친구들은 삽에다 재를 퍼서 그 위에 똥을 눈 뒤 그 삽을 들고 밖으로 나와 거름통에 넣어야 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여겼었다. 그래서 친구들은 일주일 동안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처절한 전투를 벌이곤 했다. 그러다 결국 참다못한 친구들이 하나 둘 화장실에 가기 시작했는데 처음 갔던 세 명은 부끄럽다며 ‘하나 둘 셋’하고 세 명이서 동시에 나오기로 했다.

“하나 둘 셋!”
“푸하하하 야 너 똥 생긴 게 왜 이래”
“니 똥은 무슨 김태흰 줄 아냐? 똑같구만”
“야! 그래도 너보다 잘 생겼거든? 근데 나 진짜 엄청 편하게 잘 나오더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친구는 “야 니들 똥 가지고 왜 이래”라며 삽을 들고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상과 달리 서로 똥 가지고 농담도 주고받고 웃는 분위기가 쇼트트랙에서 금, 은, 동을 휩쓴 한국 올림픽 대표들이 단상에서 농담하는 모습 같았다.

한 번은 어떤 녀석이 재를 안 퍼고 그만 똥을 삽에다 눠버린 것이었다. 그러면 똥이 삽에서 잘 안 떨어지는데 이너마가 뒤늦게 삽으로 재를 푸려다 하다 그만 똥을 재가 담긴 통에 빠뜨려 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은 크게 이슈화 되어 추측성 발언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푸른 누리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 것을 누구도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나중엔 서로의 똥을 보면서 분석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변의 색깔을 보아하니 .........” 이쯤 되면 전문가 수준이다. 사실 분석할 것도 없는 게 음식이 워낙 자연 친화적이고 독한 음식도 없고 조미료도 거의 안 넣다시피 해서 배출하는 것도 편하고 특별할 게 없었다.

▲ 촛불로 하트 만들기

행복한 목요일, 선녀탕과 중국집

생태생활을 위주로 돌아가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우린 완전히 생태적인 생활을 했던 건 아니다. 우리들은 매주 목요일 선녀탕이라는 목욕탕에 갔다. 따뜻한 물에 씻을 수도 있고 목욕탕 주인님께 허락을 얻어 빨래도 할 수 있었다. 계곡에서 한 빨래는 깨끗할지 몰라도 도통 마르질 않아 입으려면 한참 걸렸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특별히 허락을 얻어내 주셨다.

머리에 기름기가 많은 친구들은 일주일 동안 한 번도 머리를 안 감고 있다가 목욕탕에 올 때 감는다. 일주일동안 머리에서 참기름 통에 절인 마냥 반짝이는 머리를 보면 표정이 절로 ‘으.......’라는 소리와 함께 찡그려진다.

푸른 누리 밖으로 나오니 오랜만에 못 먹었던 것들도 먹을 수 있다. 친구들은 목욕탕에서 파는 음료수나 핫바 같은 걸 사먹으며 천국의 아이들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너도나도 한 입씩 달라고 하니 먼저 사는 사람만 큰 손해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늘 먹을 게 부족한 우리들로선 그런 손해까지 감수해가며 먹을 의향을 가진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목욕탕 아저씨는 우리만 오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평소의 시큰둥한 표정과는 달리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입장권을 걷어가곤 했다.

목욕을 하고 밖으로 나오면 일주일동안 그렇게 꽤 죄죄 해보이던 애들이 갑자기 뽀얘져서 나타난다. 서로 허물을 벗었느니, 흑인이 백인이 됐다는 둥 덕담 아닌 덕담이 오고 간다. 모든 사람이 다 나오면 다 함께 선녀탕 옆에 있는 중국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이 목요일을 행복해하는 이유는 선녀탕도 선녀탕이지만 바로 옆에 중국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자장면, 짬뽕, 볶음밥 중 3자 택일해야 하는 수요일 저녁은 일생일대 기로의 순간이다. 그렇게 선택한 메뉴를 선생님은 아이들이 목욕하고 나오기 전에 가서 미리 주문을 해놓으신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하면 금방 금방 먹을 수 있게 메뉴가 나온다. 4사람 당 하나씩 탕수육이 나오고 곧 개인 메뉴가 속속들이 나온다. 짐작 컨데 아이들은 정말 이 중국집을 사랑했을 것이다. 탕수육과 조미료를 유일하게 맛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도 정말 많이 그리고 잘 먹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자신의 몸에 그렇게 좋지도 않은 걸 먹으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러니 할 따름이다. 자연에서 수확한 무로 만든 동치미, 상추, 배추김치. 나물, 강낭콩 밥에는 부족함을 느끼고 튀긴 고기, 춘장, 짬뽕 국물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이란. 세상에 길들여진다는 것, 내가 먹을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탕수육의 바삭하고 부드러운 맛에, 춘장의 짠 맛에, 짬뽕 국물의 매콤함에 매료되어 닥치는 대로 음식을 집어넣었다. 성찰 진짜 더럽게 안 되네.

그렇게 우리는 28일을 푸른 누리에서 보냈다. 뽀얀 얼굴부터 더러워서 좀 씻으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의 얼굴까지 다 보고 28일을 지냈다. 밥도 함께 짓고, 함께 먹고, 서로의 배변도 공유하고, 냇물에 빠뜨렸다 건져내고, 선생님 몰래 슈퍼로 뛰어 내려가 초콜릿 가져오다 들키고, 벌칙으로 하루 종일 땅을 파서 사람만한 칡도 캐고, 설거지도 같이 하고, 밀가루도 뿌리고, 눈싸움도 하고, 언덕에 누워 하늘을 보며 누가 마음에 드는지 이야기하고, 생일파티도 하고, 화전도 하고, 무도 캐고, 톱질도 하고, 진실게임도 하고, 소풍도 가고, 김밥도 만들고, 나무도 심고, 공동체 놀이도 하고, 명상도 하고, 말다툼하다 몸싸움도 하고 볼 꼴 안 볼 꼴 다 보며 28일을 보냈다.

첩첩산중을 괜히 찾아왔나 하며 불안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졌다. 아 정말 행복한 28일이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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