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21]

1. 남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 가르침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부분 ‘사랑’이라 답한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면 다들 머뭇거린다. 사랑을 가리키는 표현과 현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럼 제일 가까워 보이는 현상 하나를 골라 보라 하면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나 자선 행위를 든다. 특히 종교인들은 이웃 사랑을 자선, 구제, 희사 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왜 그럴까?

2.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살펴보면 초대 교회부터 그리스도인은 서로는 물론 주변의 이웃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 사랑은 원수조차 품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일이라 하였던 터라 이 정도는 아니어도 무언가는 실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공동체 구성원과 이웃에게 희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후 사랑은 교회사 내내 여러 형태로 이어진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선과 구제로 범위가 좁아지는 점이 특징이다. 시대가 변한 탓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시대를 거스르지 못한 것이 더 큰 원인일 터.

▲ 2015년 서울대교구 세월호참사 1주년 미사에서 사제들은 모두 제의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배선영 기자

3. 교회사를, 특히 사랑 실천 측면에서 살펴보면 왜 요즘 신앙인들이 사랑을 자선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는지 이해가 된다. 알다시피 그리스도교는 초기 삼백여 년 동안 동족 유대인들의 방해와 때로 이들의 사주와 선동에 동조한 로마의 박해로 허리를 펼 날이 제대로 없었다.

그리스도교 탄생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모태인 유대교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배기에 강대국과 맞서 사랑을 정치적으로 실천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사랑의 정치적 실천은 자칫 항쟁으로 치달을 수 있었고 이는 곧 죽음 내지 몰살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야훼에 대한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족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실제로 그렇게 수백 년을 살다 보니 사랑은 철저히 자선의 범주 안에 갇히게 되었다.

교회사에서도 사랑 실천이 이웃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일로 이어지면 이는 어김없이 정치적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런 사정은 유럽 대륙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중남미에서 해방신학이, 제2차 세계대전 뒤 각종 정치신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본래 자비와 희사는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를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사회교리에서는 ‘그 사람의 본래 몫을 돌려주는 것이 정의이고, 내 몫을 나눠 주는 것을 사랑’이라 이해하는데 자비는 정의 차원에 머무는 행위다. 그나마 이 일도 하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니 사랑을 위해 정치적 실천으로까지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모험이다.

이처럼 교회사 내내 봐 온 일이 자선과 구제이고, 이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신앙인의 의무가 아니라 배워왔는데, 그리고 이 정도만 해도 세상을 이리 바꿔 왔는데 굳이 대결과 갈등의 한복판에 들어가 자신과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일을 해야 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가진 생각일 터이다.

4. 전통의 무게가 이러한 탓에 이웃 사랑은 자선의 범주를 넘기 어려웠다. 그 덕에 사랑은 추상적 표현이 되었다. 정의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대수천’도 ‘가톨릭행동’도 각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정의라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향이 다른 데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5공화국 시절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을 표어로 내세웠다. 자신이 정의를 어기고 정권을 도둑질한 이었음에도 뻔뻔하게 정의를 앞세웠다. 그가 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안에서 힘이 곧 정의라는 사실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정의와 동일시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 단어가 본래의 뜻을 잃으면 엉뚱한 이가 그 의미를 도둑질해 사용하게 된다.

그럼 바깥에서는 그렇다 치고 교회 안에서 핵심 가르침들이 이렇게 오용되는 것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사랑, 정의, 평화의 본래 의미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5. 올해를 자비의 성년으로 선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방법의 하나로 자비의 육체적 활동을 희년 칙서 ‘자비의 얼굴’에서 제안하고 있는데 이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듯하다. 그가 말하는 육체적 활동은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 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15항)이다. 이 활동은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말하는 최후 심판의 기준이기도 하다.

또한 “절망으로 몰아넣고 흔히 외로움의 근원이 되는 의혹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수단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을, 특히 어린이들이 무지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일, 외롭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일, 우리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용서하고 폭력을 낳는 온갖 분노와 증오를 떨쳐 버리는 일, 하느님께서 한없이 우리를 참아 주신 것처럼 그렇게 인내하는 일,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드리는 일”.... “고문당한 이들, 상처 입은 이들, 채찍질당한 이들, 굶주리는 이들과 난민들의 몸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가 알아보고 만지며 정성껏 돌보는 일”(15항)이다.

둘째는 사회교리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회교리도 그동안 북반구에서는 추상적 가르침으로 이해돼 왔다. 사회교리의 본래 정신을 따르면 현존 질서를 근본에서 부정해야 하는데, 그 구조의 수혜자들이 이리 행동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본질을 은폐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못하도록 까다로운 조건들을 붙였다.

어떤 경우는 사회교리를 신학화해 마치 지상에서 초월적 차원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실천은 무용지물이라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완벽한 실천이 될 때까지 주지주의(主知主義)적으로 접근하거나, 기도에 매달려야 했다. 결국 완벽에 이르지 못했고, 그러지 못할 바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역사에서 실천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가르침은 반드시 추상화된다. 그리고 이 기간이 길어지면 방향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단어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럴 때 그 근본정신을 살리는 일은 숙고 대신에 실천을 앞세우는 것이다. 신학이 실천에 대한 반성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신학을 앞세워 실천을 막았던 과거의 폐습을 극복할 수 있다. 실제 지상의 삶에서 완벽한 실천은 불가능하다. 어느 모로 완벽한 이해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신학은 이러한 실천과 이해가 가능할 것처럼 말해 왔다. 그러나 이 말의 오류는 방향을 달리하는 집단들이 같은 단어를 사용해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현상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목표는 애초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6.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책임을 통감한다. 사랑과 자비가 추상화되게 만든 일, 정의 평화를 지상에서 실현이 불가능한 저 세상에서 가능한 일로 보게 한 일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니 말이다. 해서 자비의 희년인 올해는 사랑과 해방이 동전의 앞뒷면임을 알리고 또 증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보리라 결심해 본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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