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교회의 꿈

(마이론 페레이라)

세계는 전환점에 서 있고 인도도 마찬가지인데, 다수결 만능주의인 현 인도 정부(친 힌두 정당인 인도인민당 집권)는 인도의 모습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인도 가톨릭교회도 또한 전환점-(곤충의) 변태와 같은-에 서 있는데, 교회가 자신을 재정의하고 있듯이, 교회법적 기관의 모습으로부터 세상 속에서 더 복음적으로 현존하는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1962년에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그 목적은 “교회를 (이미 바뀐) 세상에 적응(aggiornamento)”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깨닫듯이, 문제는 “적응”보다는 “변태”(mutating)하는 데 있다. 나비 애벌레가 (고치를 거쳐) 나비가 되거나, 태아가 아이가 되고 이어 어른이 되는 것처럼 교회도 변태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교회가 이뤄야 할 변화는 양적인 것뿐 아니라 질적인 것이고, 다른 종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절적 변화에 관한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흐름이 아니라 과거와 결별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우리 주변에서 급속히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말할 때든 국가나 세계에 말할 때든 다 그렇다.

시대의 징표

우리가 살고 있는 “불연속성의 시대”의 특징 몇 가지를 들어 보자. 세계화, 디지털화, 종교간 관계, 소수집단, 생태.

세계화는 좁아지는 우리 세상을 가리킨다. 물리적 거리가 짧아지고(자동차와 비행기 여행 덕분에), 정신적, 정서적 공간이 쉽게 채워진다.(텔레비전, 전화, 인터넷으로)

이런 세계화로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변했으며 교육의 전통적 양식에 엄청난 영향을 줬다.

현재 이 기술은 수많은 대중이 정보를 얻고 오락을 즐기며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날리며 연락을 유지하는 사회적 미디어(SNS)의 모습으로 “변태”했다. 그 모습은 인종과 계급, 그리고 성의 경계를 넘어 타인과 협력하는 뛰어난 모델이다.

종교간 관계는 종교가 세계무대에서 (주요 주체로) 재등장하면서 나타난 새 주제다. 한스 큉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듯이 “종교간에 평화가 있기 전에는 결코 국가 간에 평화가 없을 것이다.”

테러가 세계적 현상인 가운데, 종교와 정치를 근본주의적으로 이해하는 데 바탕을 두고, 인도 아대륙에서 테러는 집단중심주의(communalism. 편집자 주- 성, 인종, 계급, 지역, 종교 등을 경계로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소수집단의 박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편집자 주- 인도 아대륙(sub-continent)은 히말라야 산맥 남쪽의 파키스탄, 네팔,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의 지역을 아울러 이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불연속적” 시대의 또 다른 측면은 소수집단의 흥성이다.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작고 가난한 집단들의 주장조차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집단들 가운데, 여성은 모든 차원에서 더 큰 참여를 요구한다. 어떠한 것이든 성직주의적 딱지가 붙은 것과는 삐걱거리는 요구들인데 사회정치적 참여, 교회적 참여다.

사회 일반에서는, 성적 소수집단의 권리신장 운동이 어디에서나 사회를 혼란 속에 빠트리고 있다. 파악해야 할 새 사고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려해야 할 새 가치관들도 있다.

끝으로,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영향(대기 오염과 수질 오염, 확대되는 오존 구멍, 급속한 사막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시대 최대 이슈인 환경 문제들에 대해 한마디.

파리 기후회의가 막 끝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회칙 “찬미받으소서”로 세상의 관심을 이 문제에 돌렸으며 이를 보정하기 위한 행동을 요구했다.

현 시대의 불연속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해 온 직무들과 영적 동기부여를 재검토하고 재해석해야만 한다.

▲ 인도 바라나시 교구의 가톨릭 성당.(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우리가 알아 왔던 것처럼 교회의 끝인가?

사회가 더 기술적으로 진보한 사회가 되면서 사회는 종교적 믿음의 구조들을 벗어 던지고 갈수록 세속화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이른바 세속화된 사회일지라도 예전의 근본주의적 믿음들을 고수하는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이것이 현재 교회가 처한 문화의 모습이다. 급속히 변할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예기하지 못한 무엇인가로 변태하고,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의 상당 부분은 서구적 이야기이고, 우리들 가운데 더 보수적인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인도는 달라. 인도는 낫다고.

하지만 인도 사회에도 불연속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나라가 어떻게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사고가 있다.

우리가 배우고 자라 온 “인도”라는 생각, 우리 헌법에 새겨진 그 인도는 주권국가이며 세속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공화국이다.

그런데 지금 이제 또 다른 사고가 그와 경쟁하고 있다. 그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도는 다수결 만능주의 힌두교 국가이며, 그 과거를 공격적으로 자부하며, 자신이 미래에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소수집단은 설 자리가 전혀 없는 나라다.

이 모든 것이 세속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믿는 이들에게는 과제를 던진다. 많은 지식인 단체와 운동단체가 이 과제에 응답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교회단체는 별로 많지 않다. 왜 그런가?

인도 교회 대부분에서는 교회 교육기관들과 본당들을 운영하는 데에 인적 자원과 물리적 에너지, 그리고 재정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편집자 주-인도 가톨릭교회는 전체 인구 중에 가톨릭 신자 비율에 비해 아주 많은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다른 사업을 시도할 생각이 나지 않게 하는 일 구조를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의 상상력을 흐트러뜨리고 있다.

우리가 일을 하는 동기가 “사명”(mission)이 아니라 “유지”인 경우가 많다. 사명은 예측할 수 없으며, 오늘날 (인도의) 우리에게는 오직 박해와 적대만 불러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운영해 온 기관들만 유지하고 있으면 존경과 치렛말, 부와 안전이 있다. 우리는 인도에서 “파우스트의 거래”(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대가를 얻은 것)를 한 것 아닌가? 우리의 영혼을 잃을 지경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강점과 해독

현재,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간에, 변태 중인 사회의 변화하는 가치관과 그 상황은 곳곳에서 교회에 영향을 미쳐 왔다.

본당중심주의와 지역주의를 살펴보자. 교회와 사회가 더 현지화할수록 교회와 사회는 카스트와 부족주의, 그리고 봉건주의라는 원시 인도의 가치관을 더 반영한다.

지위, 특권, 그리고 권력은 주류 사회에서 꼭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되었고, 이에 따라 부패가 널리 퍼졌다.

인도에서 성직주의의 가장 해로운 영향은 사제들이 여성과 성적 비행을 저지르는 모습이다.(서구에서 큰 문제가 된 소아성애 성직자는 인도에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자격 의식은 인도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태도와 결합된다. 여성은 성직자가 요구하는 것은 뭐든 해 줌으로써 “교회에 봉사”해야 할 존재다.

요약해 말하자면, 오늘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저지르는 고장난 행위들(“해악”)은 사회 일반에서 보이는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도의 가톨릭인들이 사회와 따로 떨어져 대결하기를 원하지 않을 뿐일 수도 있다. 그보다는 사회에 속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도 교회의 꿈

이런 생각들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서 한 흥미 있는 기사를 봤다.

필자인 칸티 바즈파이는 일본 기업인들에게 인도에서의 사업 기회에 관해 강연을 했는데, 한 청중이 이렇게 질문했다. “현재 인도 상황에 대해 얘기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도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도의 교회가 현재 어떤 상황인지(강점과 해악들) 말해 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인도교회는 장차 어떻게 되고자 합니까?

인도의 꿈은 무엇인가? 이것이 문제다.

나는 바즈파이의 말을 다시 인용하지만 그가 했던 답변은 약간 바꿔 본다. “우리들 인도 가톨릭인은 세 가지를 꿈꿉니다. 현대성, 사명, 그리고 잘 운영된 나라.”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도 너무 야심찬 꿈이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라. 다 성취할 수 있는 웬만한 목표들이다.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인도의 지평선 저 너머로 폭풍우가 몰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라는 갈수록 집단중심주의로 흘러가고, 소수집단은 소외되고 있으며, 생태적 재난이 잉태되고 있고, 교육기관들은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일들에 대처하려면 협동적인 사명의식이 필요하다. 다른 가톨릭 신자와 협력할 뿐 아니라 그가 어디에 속하고 누구든 간에 기술과 선의를 가진 남녀들과도 모두 협력해야 한다.

이 세계는 팀워크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인 대부분은 팀워크를 잘 못한다. 나는 인도는 협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바랄 수 있고 실현가능하며,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마음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

아니면 세상은 인도의 우리에게는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변했고, 우리는 내일의 질문에 대해 어제의 답변만 더듬대고 있을 뿐인가?

(마이론 페레이라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서 인도 뭄바이에서 사는 저술가다. 연락처는 pereira.myron@yahoo.in이며, 개인 홈페이지는 www.myronic.org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a-vision-for-the-church-in-india/74824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