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작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외무장관이 서울에서 타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한일합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심히 의심된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국민 다수가 굴욕적인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합의 내용에 불만을 토로하고 재협상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그걸 걱정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보도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1월 5-7일)에 의하면 위안부 합의가 “잘됐다”는 응답은 26퍼센트에 그쳤고 “잘못됐다”는 응답은 그보다 2배나 많은 56퍼센트나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경우에는 연세가 높으셔서 조기에 어떤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영구미제로 빠질 수 있다. 합의안이 나와도 국민 눈높이에 안 맞으면 아무 소용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국민 눈높이에도 맞고 국제사회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안이 도출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 나가려고 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한일합의에 대한 여론의 반응을 보았으니 어제(1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 무언가 국민의 감정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어떤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국민들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이번 담화를 몇 마디로 압축하면 한일합의는 “최상의 노력을 다한 결과”라는 것이며 국민이 인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담화 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협상이라는 게 현실적 제약이 있어서 100퍼센트 만족할 순 없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된 24년 동안 어떤 정부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최대한의 성의를 갖고 할 수 있는 최상의 그걸 받아 내서 노력한 것은 인정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한 분이라도 더 생존했을 때 사과도 받고 한을 풀어야 하고 명예와 존엄을 회복시켜 드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 2015년 12월 28일,한일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대신.(사진 출처 = 외교부 홈페이지)

그러나 24년 동안 역대 어떤 정부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점은 대통령 담화 직후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윤미향 대표가 조목조목 명쾌하게 반박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위안부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이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제2조 3항)-양국 간.... 협정 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해서 어떠한 청구권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에 의거 일본이 위안부 문제 토의를 거부하자 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미해결 문제라며 반박,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한다”는 양보를 끌어냈다. 아시아기금을 통한 일본의 지원을 거부하고 그 대신 일본정부의 사과 반성 표명과 역사교육 실시 등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일본이 위안부 동원에 일본군이 개입한 사실을 시인하는 고노 담화가 나오게 된 것이다.

고노 담화의 논리를 원용하면 “불가역적”이란 표현이 있지만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반인륜적 범죄 성격을 들어, 국가가 아닌 피해자 본인이나 시민단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기구나 재판소에 제소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는 처음으로 한일회담 문서를 공개하고 민관공동위원회를 조직해서 한일청구권협정의 법적 효력 범위 등에 대해 논의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와 군 등 국가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법적 근거를 찾아냈다. 엄청난 발견이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전임자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한일외교에 관여한 한 전직 외교관은 24년을 끌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짧은 시한을 정해 놓고 그 시한에 발목이 잡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굴욕적인 합의를 해야 했던 것은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라고 비판했다.

작년 말의 신문을 추적해 보면, 성탄절 직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양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것도 한국 언론보다 일본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우리 언론은 뒤따라가는 모양새였다.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지만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에게 합의 내용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으면 협상을 그만 두라고 지시했다는데 그렇다면 일본은 이미 연말 비밀작전 계획을 미리 짜 놓고 준비가 안 된 한국 외교진을 기습하는 시나리오가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피고”격인 일본이, 범죄 행위를 고발하는 한국에게 양국 간의 합의가 ”불가역적“이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우리는 그것을 덥석 받아들인 것은 한국 외교의 씻지 못할 치욕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징인 소녀상을 치울 것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이 이에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공개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아베는 며칠 전, 한국이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원에서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만 말할 뿐 소녀상의 이전 여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식 문서가 없을 뿐 소녀상 이전에 대해 양국 외무장관 사이에 묵계가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나돌고 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연말부터 밤을 새워 가며 소녀상 곁에서 텐트를 치고 소녀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소녀상을 지키는 학생들을 갖은 집시법 위반 혐의를 걸어 괴롭히고 있다는 보도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법행위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뒤 위안부 할머니 6명이 한일합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일본이 참여하는 지원금 10억 엔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한일합의 무효화를 주장하는 대학생과 시민단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공개사과를 끝까지 거부하는 아베의 태도는 한일합의 무효화운동을 더욱 자극 하게 될 것 같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한국갤럽은 한일합의에 반대하는 한국인이 56퍼센트인데 반해 찬성은 2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일본의 요미우리 신문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은 찬성이 49퍼센트인데 반해 반대는 36퍼센트로 찬성이 훨씬 많다.

위안부 문제의 일본 최고의 권위라는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는 1993년의 고노 담화보다 후퇴한 “한국 외교의 패배”라고 규정했다. 위안부 문제에 한일 간의 타협을 희망해 온 오누마 야스아키 메이지 대학교수는 <지지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번 합의는 일본이 너무 이겼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나 한국 국민이 너무 불만족스러운 합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느껴 미래에까지 원망하는 마음이 남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다는 보도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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