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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러시 데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평화의 일꾼-가톨릭일꾼 창립자 도러시 데이 손녀, 마사 헤네시 인터뷰 2

가톨릭일꾼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은 1933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도러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시작한 나그네들을 위한 ‘환대의 집’과 유니온 광장에 뿌려진 <가톨릭일꾼> 신문으로 시작된 평신도운동이다. 그들은 노숙인들과 실업자를 위해 무료급식을 제공하며 ‘당장의 필요’에 응답하고, 교부들과 성인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마음의 혁명’을 호소하고, 모든 전쟁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 토머스 머튼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대한 씨앗을 뿌린 운동이다. 교회 안에서 (제도)교회와 다르게 처신하면서 이들이 겪은 고통은 많았지만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의 근거를 제공했다. 피터 모린에게서 영감을 받아 도러시 데이가 실천한 가톨릭일꾼운동은 비폭력 저항을 통해 자본주의의 바다 위에 평화의 섬을 구축하는 ‘푸른 혁명’(Green Revolution)을 지향한다.

   
 ▲가톨릭일꾼 운동을 시작한 도러시 데이.(사진 출처 = www.catholicworker.org)
언론인이며 아나키스트였던 도러시 데이(Dorothy Day)는 딸이었던 타말의 출산을 계기로 가톨릭교회에 귀의하였으며, 돈독한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는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희망했다. 도러시 데이가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했을 때 딸 타말의 나이는 7살이었고, 도러시 데이는 타말을 교회 안에서 키웠고, 타말은 버몬트의 농장에 살면서 9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제도교회를 멀리했다. 그의 가톨릭적 정체성은 가톨릭일꾼운동을 통해서만 드러났다. 타말의 자식 가운데 일곱 번째 자녀인 마사 역시 교회를 떠났다가 2004년 이라크의 어느 감옥에서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예수회 대니얼 베리건 신부의 도움을 받아 교회로 돌아왔다. 마사는 “교회 바깥에 있을 때조차도 하느님과 함께 있었지만, 교회를 통해서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진심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2007년부터 가톨릭일꾼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도러시 데이가 죽은 뒤 24년 만에 손녀가 일꾼공동체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 마사는 버몬트의 농장에서 살면서, 한 주일에 며칠 씩 뉴욕의 메리하우스에서 봉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도러시 데이를 언급하다

“고통은 쓸모없는 게 아니라 성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마사는 제주 강정에 방문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곳 강정은 가톨릭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하느님의 창조물을 파괴하는 모든 권력에 저항하는,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장소”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변방으로 가라고 했는데, 그래서 나도 여기에 왔다”고 말하면서, 마사는 “빅스 신부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성경 말씀대로 살면서 미국 핵잠수함의 장비를 못 쓰게 만든 죄로 투옥되기도 했다. 아마 그 핵잠수함이 여기에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마사는 미국이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폭탄을 직접 사용한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의 무조건적인 무장해제’와 전쟁반대를 외쳤던 도러시 데이의 이름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 의회에서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2015년 9월 24일 미국을 방문 중에 미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미국의 가톨릭 영성작가 토머스 머튼과 더불어 도러시 데이를 언급했다. 마사는 이 네 사람 중에서 세 사람이 “간디의 영향을 받은 평화주의자”였다고 소개했다. 마사는 이들이 미국에 주는 메시지는 “미국은 전쟁을 만드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 가는 무기산업도 언급했다. 이 연설이 있은 뒤에 교황을 연설에 초청한 미 하원의장인 존 베이너 의원은 자기 직위에서 사임해야 했다고 전한 마사는 “나는 존 베이너가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고 절망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마사는 미국이 가톨릭교회의 입장과 국가주의 가운데 선택하라고 한다고 말한다. ⓒ한상봉 기자

미국인으로 살 것인가, 가톨릭인으로 살 것인가

미국의 가톨릭은 자신들이 미국인으로 살 것인지 가톨릭인으로 살 것인지 선택을 요청받고 있다. 마사는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가톨릭인으로서 실천해야 할 것과 반대의 삶을 말한다”면서, “가톨릭인으로 살려고 한다면 당연히 전쟁과 무기산업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사는 자신이 참석한 교황의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 연설과 미사를 기억해 냈다.

“저는 그곳에 있었는데, 교황이 성작을 들어 올렸을 때 그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성작에 ‘USA’라고 쓰여 있었거든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성작이었어요. 그게 바로 미국인으로 살 것인지 가톨릭으로 살 것인지 선택하라는 표징처럼 보였어요. 그리스도의 피로 미국인을 대표할 수는 없어요.”

도러시 데이의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책임자였던 뉴욕 대교구의 돌란 추기경은 교황이 도러시 데이를 의회에서 언급해 주길 청했던 사람인데, 동시에 성작에 ‘USA’라고 적힌 성작을 만든 사람이기도 했다. 돌란 추기경은 도러시 데이를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도러시 데이는 그저 “착하고 친절하고 성스럽고 가난한 이에게 자비로운 이미지였다”고 마사는 말했다. 그는 “모든 전쟁은 악마”라고 말한 도러시 데이는 바라지 않았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가톨릭일꾼

마사가 전한 미국 주교회의는 ‘가톨릭적’이기 보다 ‘미국적’이었다. 미국 가톨릭교회는 본래 이민자들을 위한 ‘소수자들의 교회’였다. 대통령 가운데 가톨릭인은 케네디 대통령 단 한 사람뿐이었고, 그는 살해당했다. 그러나 마사가 경험한 2015년 11월에 있었던 전미 주교회의 워크숍 의제 가운데 하나는 “주교들의 연금을 늘리기 위해서 월스트리트에 투자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의장 바깥에서는 세 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육군과 공군, 해군을 위한 것이었다. 이 테이블에서 국방부는 군종사목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1917년 미국에서 주교회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두 가지였다. 유럽에서 오는 가난한 이민자들을미국사회에 동화시키려는 목적과 제1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한 미군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미국교회는 사제들이 가톨릭 입대자들에게 “너희는 군대에 있으면 안 돼!”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마사는 말한다. 사제들은 군인들에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자기 운명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가톨릭병사들에게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려 주는 사제는 없다. 마사는 “미국 가톨릭은 군사주의와 미국 시스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도러시 데이의 필사본과 가톨릭일꾼운동 관련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위스콘신 주의 마켓대학 등 가톨릭대학에도 ROTC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도러시 데이의 평화주의 문서를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대학 구내에서 군사훈련을 시킨다.

9.11테러사건 뒤로 미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온 사회에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다. 군대가 사용하던 무기가 경찰에도 지급되고, 군복 차림으로 등교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마사는 “우리가 도러시 데이를 존경한다면 미국의 영구한 전쟁 의지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미제국주의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사는 미국 노틀담대학 대성당에 있는 전등이 1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인들 헬멧으로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사는 이러한 가톨릭대학에서도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성찬례적 저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가톨릭일꾼 신문. 2015년 12월 호. ⓒ한상봉 기자

도러시 데이와 가톨릭일꾼들은 항상 가난한 이들을 옹호해 왔으며, 이 때문에 미국사회에서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전쟁에 쓰여지는 세금 납세를 거부하기도 하였고, 미국 국방부 건물 앞에서 미국의 정책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핵무기를 실어 나르는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위에서 밤샘 시위를 하고, 베트남 전쟁 등을 반대하고, 징집 명령서를 불태우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가톨릭일꾼이 반전 평화주의를 주장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가톨릭일꾼>신문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그리스도 안의 동료 여러분!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의 아버지인 하느님, 우리가 침묵해야 할까요? 아니면 말해야 할까요? 그리고 만일 우리가 말한다면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고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실 분의 말씀을 여기에 전합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미워하는 이들에게 잘해 주고 너를 박해하고 죽일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전쟁에 참여하고 협조하기를 거부하며 평화를 바라는 고집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친구들과 정부의 관대함과 이해를 믿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우리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가톨릭일꾼>, 1942년 1월)

   
▲ 강정은 가톨릭평화운동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활동가들이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고통이다. ⓒ한상봉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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