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연말연시를 보낸다. 떼제가 개최하는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이 올해는 여기서 열리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에서 1만 5000명의 청년이 지중해 연안의 이 도시로 모였다. 우리 공동체는 매년 말 이런 유럽 모임을 38년째 열고 있다. 떼제에 온 첫 해부터 참석했으니 나에게는 스물 여덟 번째다. 매년 다른 도시, 다른 환경에서 수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새해를 맞는다.

1988년 파리 모임 이후 폴란드의 브로츠와프(1989),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 (1990), 헝가리 부다페스트 (1991), 오스트리아 빈(1992)으로 이어진 몇 해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들이었다. 4만 5000명에서 10만 5000명까지 점점 많은 청년이 동서남북 유럽에서 대거 떼제의 유럽 모임에 참석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동유럽에 큰 변화가 시작된 시기였다. 우리 세대에게는 그때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는 벌써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제는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가 참가자의 대다수다. 유럽은 당시와는 전혀 다른 환경,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떼제가 우리 삶을 바꾸어 놓았어요

유럽 모임 참자가들은 모두 개최지의 가정에서 묵고 아침기도와 소그룹 대화는 근처 본당에서 이루어진다. 발렌시아에서는 약 200개의 본당에서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낮기도와 주제별 워크숍, 저녁기도는 도심의 큰 교회와 대형 전시장에서 열린다. 전시장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 발렌시아에서는 구시가에 맞닿은 공원에 대형 천막을 두 개 세웠다.

참가자들과 맞이하는 가정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소통과 해결을 돕는 것이 내 책임이다. 유럽의 모든 언어와 문화가 만나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10개국 출신 청년 자원봉사자 14명이 나와 함께 일한다. 이들은 각각 2-5개 언어를 할 줄 안다. 이 가운데는 벌써 몇 년째 이 일을 돕는 사람도 있다. 휴가 동안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다른 나라까지 와서 특별한 방식으로 봉사하는 이들은 고마운 청년들이다. 요 며칠 동안 청년들과 나눈 얘기 몇 가지를 나눈다.

페루 출신 에드가(28)는 9년 전 떼제에 와서 석 달 동안 머물렀다. 몇 해 전 발렌시아에서 분쟁 해결과 평화학 석사 과정을 전공했고 오는 2월에 졸업 예정이다. 공부를 마치면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 가서 일할 예정이다. 지난 8월에는 한 달 동안 터키와 시리아 국경에서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에게 '비폭력적 소통 방식'에 대해서 가르쳤다. 여자 친구 마리아는 그가 떼제에 있을 때 만났다. 발렌시아 사람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다. 마리아는 에드가를 만난 다음 이곳보다 기후와 조건이 훨씬 안 좋은 페루의 리마에 가서 3년 동안 대학 연구원과 초등 교사로 일했다. 마리아(28)는 이렇게 말한다. “떼제가 우리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우리가 거기서 만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식과 방향을 거기서 발견했어요.”

▲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에 참가한 젊은이들. ⓒ신한열

Are You Syrious?

음악학을 전공한 크로아티아의 카롤리나(29)는 고전과 현대 음악 연주회와 음악 축제를 조직하는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는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난민들에게 바치고 있다.

“지난 9월에 헝가리가 국경을 폐쇄하자 난민들이 크로아티아로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정부가 손을 쓰기도 전에 보통 시민들이 식량과 옷, 신발 등을 모아서 난민들에게 다가갔지요.”

학생과 직장인 젊은 부부 등,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서 난민 돕기 코디네이션을 시작했다.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지금도 매일 수천 명의 난민이 크로아티아를 통과하고 있어요. 시리아 난민이 다수이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 다른 나라 출신도 있습니다. 대개는 가족이나 친지가 이미 도착해 있는 독일로 가려고 해요.”

카롤리나가 주로 찾아가는 곳은 난민들이 통과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 국경과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국경 지대다. 적십자와 유엔난민기구(UNHCR) 등 공식 단체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도 많다. 난민들을 여러 천막에 남녀별로 분산 수용하고 이동시키면서 아무 설명도 해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카롤리나 일행은 피난민들에게 인간적인 눈길과 손길을 뻗치려고 애쓴다. 피난민 임시 수용 천막을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 주면서 부모들의 시름을 잠시라도 덜어주고, 시리아와 수단에서 빠져 나온 학생들과는 전쟁과 갈등이 아니라 공부와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난민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는 경우에는 머리 수건을 쓰고 난민을 가장해서 들어가 난민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 내고 구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이들은 시리아를 연상케 하는 비정부단체 ‘Are you Syrious?’를 만들어 큰 반향을 얻었다. 자선 음악회도 열었고, 장난감과 장갑, 모자, 양말, 옷가지, 사탕, 초콜렛 등을 넣은 어린이 배낭을 모아서 전달하고 있다.

ⓒ신한열
취직이 어려운 청년들

다니엘(22)은 발렌시아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한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그는 취직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페인에는 보수와 휴가, 보험 등 조건이 좋은 직장은 적고, 박봉에 임시직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공부를 마친 친구들은 월 5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인턴으로 일해요. 내 전공은 다른 나라에서도 직장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좀 나은 편입니다. 아마도 외국에 가서 일하게 될지도 몰라요. 심리학 같은 것을 전공한 사람은 직장 구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안나와 니콜라 남매는 벨라루스 사람이다. 남동생 니콜라(25)는 런던에서 3년 동안 경영학을 공부하고 민스크로 돌아갔다. 소련 몰락 직후 교사이던 부모가 생업으로 비교적 큰 식당을 시작해서 경영한다. “런던에서 저는 다양한 문화와 열린 세계를 만났어요. 선술집에 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옆 자리에 앉아서 온갖 사는 얘기를 풀어 놓는데, 벨라루스에서는 그런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비밀 경찰이 감시하던 소비에트 연방 시대가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고 있다. “외국에 나가 본 사람은 좀 다르겠지만, 벨라루스 사람 대부분이 과거의 타성에 젖어 있고 열심히 일 하는 문화가 전혀 없어요. 그래서 힘들어요. 우리 나라의 경제 사정이 어려워 발렌시아에는 250명밖에 못 왔습니다. 내년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해요.”

누나 안나(28)는 더 어두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벨로루스에서는 못 살아요. '내가 잘못된 나라에서 태어났구나'하고 생각해요. 고향에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고 모로코와 독일에서 일을 했던 그는 지금 베를린의 친구 집에 얹혀 살면서 1년째 직장을 구하고 있다. “취직이 사실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개인 사업을 시작하려고 해요. 요가 강사 자격증이 있는데 더 배우고 잘 준비해서 현대인들에게 치유를 제공하는 요가 학교를 시작하고 싶어요.”

▲ 유럽 모임의 저녁 기도 모습. ⓒ신한열
희망은 버릴 수 없어요

아망딘(26)은 스위스의 중등 교사다. “스위스는 너무 잘 살아서 젊은이들이 그냥 안주하는 것 같아요. 나만 문제없이 잘 살면 되지 않나, 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팽배해 있고 세상과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아요. 뭔가 바꿔 보려는 사람은 스위스에 남지 않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 같아요.

스위스에서는 자살률도 아주 높아요. 사흘에 한 명의 젊은이가 자살에 성공합니다. 부유하지만 사실 삶이 공허한 거죠. 이번 성탄절 나무에 소원을 적어서 달게 했더니 셋 중 둘은 '사랑'을 적었다고 해요. 그만큼 외롭게들 산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이 좀 암담하지만 희망은 버릴 수가 없어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온 마리샤(21)는 정교회 사제의 딸이다. 공부를 잘해서 벌써 공연학 석사를 졸업했다. 하지만 “예술과 신학, 사회복지, 언어학 등 어느 쪽 길을 택해야 할지 몰라 계속 고민 중”이라 한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많이 했지만 신앙인은 자기밖에 없었고 오락 이상의 깊은 무엇을 추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잘 활용해서 더 나은 곳에 쓰이고 싶어”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 “제가 사는 키예프는 조용하지만 몇 백 킬로미터 떨어진 동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쟁 중입니다. 희생자가 계속 생기고 있어요. 독립 이후 25년 동안 다른 역사와 배경 때문에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신뢰를 쌓으려는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경제 논리만 있었지요.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벽을 쌓으려하고 흑백 논리가 만연하지만 나는 그런 선전을 믿지 않아요.”

1만 5000명의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젊은이들도 하루 세 차례 공동 기도를 통해 내면 생활의 자양분을 얻었다. 닷새 동안 여러 나라 청년들과 신앙과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연대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새해를 맞고 경축한 다음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년 모임은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열린다.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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