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노동사목 담당자들, “노동자와 대화해야”

12월 30일 고용노동부가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및 취업규칙 지침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정부 지침 초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천주교 노동사목 담당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에 대해 절차와 내용면에서 모두 걱정스럽다고 봤다.

조대원 인천교구 노동사목부 사무국장은 이 같은 정부 지침이 나오는 것은 “예고됐던 것”이라며 “노동자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방향”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조 국장은 “노동자를 대화 상대로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용자 뜻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규칙 변경이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미 있는 노동 관련법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약한 버팀목마저 치워 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국장은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부터 서울에 10만에서 5만 명 정도가 계속 모이는 상황”에 “서민들이 얼마만큼 절박한 상황인가 드러나 있다”면서, 정부의 ‘노동개혁’은 “기름을 더 붓고 벼랑 끝으로 모는 정치”라고 말했다.

▲ 지난 10월 7일 가톨릭노동장년회 회원들이 서울에서 '양질의 노동을 위한 국제 행동의 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현진 기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임금피크제 및 직무, 숙련,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직무능력 중심 고용 시스템을 구축해 인력운용을 합리화하고 노동권, 인사경영권이 조화를 이루는 노사관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개혁안에는 ‘저성과자 해고 완화’와 함께 기간제노동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노동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어 ‘노동개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천주교에서는 12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노동관련법 개정 추진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정수용 신부는 노동개혁이 노동계 등 당사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하지 않고 정부 주도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노동계의 불신이 크다”면서 “국회에서 이해 당사자간의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뒤에 법제화될 필요가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상황이 “소위 말하는 ‘노동개혁’에 대한 더 큰 갈등과 오해를 조장한다”며 “정부가 노동시장을 좀 더 선진화하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 들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는 “노동 현장에서 느끼는 행정 지침은 매우 강력하고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는 12월 30일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및 취업규칙 지침 관련 전문가 간담회’는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이기권 장관 주재로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이 발제하고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보도자료로 밝혔다.

정지원 근로기준정책관은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력운영 가이드북’은 채용에서 퇴직까지 인력운영, 근로계약 해지 기준과 절차 등을 포함해 세 부분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둘째 부분에서는 통상해고, 징계해고, 경영상해고의 개념과 내용을 소개하고 해고 때 지켜야 할 법령상 제한과 통상해고의 근거, 정당성 요건을 설명했다. 정 정책관은 법률 내용과 판례를 볼 때 노동자가 업무능력이 없거나 근무성적이 부진하면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으로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명확히 했다.

셋째 부분에서는 업무능력 결여 등에 따른 통상해고의 정당성 기준과 절차를 제시했다. 정 정책관은 이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중요하다면서, 주관적 판단이 아닌 능력과 실적을 대상으로 평가항목을 세분하고 구체화하고 평가제도 설계 단계부터 노동조합, 노사협의회, 근로자대표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바람직하다고 했다. 평가방법은 객관적 수치로 나타내는 계량평가, 개인별 목표에 따른 절대평가 방식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평가위원회 등 여러 평가자를 두거나 여러 평가단계, 이의제기 절차를 두면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대해 정지원 정책관은 “사용자가 종전보다 근로조건을 낮추거나 복무규율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임금피크제는 기존 판례 법리상 정년 연장과 별개의 근로조건으로 임금감액 등이 따르는 점에서 불이익한 변경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또 그는 불이익 변경시 근로자 과반수 동의 방식은 ‘회의 방식에 의한 집단적 동의’여야 하며, 사용자측의 개입과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개정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근로자 상호 간 의견 교환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지침에 담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고, 이후 중앙 및 현장 노사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강력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노동법 근간을 훼손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며 모든 노동자에게 쉬운 해고, 낮은 임금을 강요하는 박근혜 정부 신년 노동개악의 신호탄”이라고 비난했다. 노사정 합의에 참여했던 한국노총도 “노동계를 배제한 밀실 전문가 좌담회”라며 “정부 지침 일방적 공개는 노사정 합의 파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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