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골매 마을 주민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 10대 때 고리 마을에서 쫓겨나 골매 마을에서 물질과 고리횟집을 운영하며 살아온 박종순 씨(64). 그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국민 없는 정부는 없다고 말입니다. ⓒ장영식

나는 묻고 싶습니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 아닙니까?
왜 국가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것입니까.
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주민들을 내몰려고 합니까.
왜? 무엇 때문에 평생의 삶의 터를 빼앗으려 합니까.

나는 지금은 사라진 고리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나의 유년 시절에 수산업을 하던 선친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절은 모두 핵발전소 건설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핵발전소 건설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했던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다정다감했던 이웃들과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떠나지 않으려던 주민들에게는 경찰과 불도저로 위협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괴물 같은 불도저를 보았습니다.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하던 주민들의 집 앞에는 불도저로 흙을 쌓았습니다.
이장들을 동원하여 회유하고 겁박하여
쥐꼬리만한 보상금을 받고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0대 때, 골매 마을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그때는 집 한 칸도 없이 군용 천막 하나에 온 가족이
동지섣달 긴긴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해녀복도 없이 그냥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물질을 통해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물질을 통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지었고, 가게도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40여 년을 물질로 살았습니다.

▲ 박종순 씨의 노모는 고향을 떠나 향수병과 치매로 고생하다가 2015년 8월 22일 아침에 89살의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골매 마을의 1세대는 한 가구만 남고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장영식

사진을 좋아하셨던 선친은 한국전쟁 때 참전하셨던 국가유공자셨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것을 슬퍼하셨던 선친은 2007년 2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선친이 촬영했던 고리 사진들은 여러 번의 이사 끝에 대부분 유실됐습니다.
치매를 앓으셨던 어머니는 올해 8월 22일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늘 “화포 가자. 화포에서 살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포는 고리의 옛 지명입니다.
어머니는 향수병과 치매로 고생하셨으면서도 아름다운 고향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 골매 마을에서 원주민들의 텃세 속에 어렵게 자리 잡고 살아갈 만한 때에
신고리핵발전소 3, 4호기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수원은 그때부터 우리들에게 다시 살던 곳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한수원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신고리핵발전소 5, 6호기 공사가 예정되면서
갈 곳이 없는 우리들에게 정붙여 살던 곳을 나가라고 합니다.
주민들에게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설명하고 이주 대책을 마련해도 믿지 못할 판에
한 사람 한 사람 개별 접촉을 통해 주민들을 이간질시키는 못된 짓으로
하나 둘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 골매 마을은 핵발전소가 마을과 사람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는 슬픈 유민의 마을입니다. ⓒ장영식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 때는 나라가 가난해서 쫓아내어도 어쩔 수 없이 쫓겨났지만,
지금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에서 이렇게 쫓아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우리를 강압적으로 쫓아냈지만,
딸은 우리가 안전하게 정착하도록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 없는 정부는 없습니다.
국민의 피눈물을 닦아 주지는 못할망정
내 땅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행복하게 살게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답게 살게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골매 마을을 나오면서 마주한 석양과 밀양으로 향하는 괴물 같은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는 길을 걷는 걸음과 숨을 멈추게 합니다. ⓒ장영식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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