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해군기지 앞 성탄 미사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을 맞아 강우일 주교(천주교 제주교구장)는 완성이 가까워진 제주 해군기지 앞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강 주교는 이날 미사 강론을 시작하며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과 활동가들, 강정마을 주민, 해군 병사 모두에게 축복을 기원했다. 또한, 정치인과 장군들이 무기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선택하면 좋겠다면서, “평화의 섬” 제주도가 “기지 섬”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한국전쟁 중 중공군에 밀린 미군과 한국군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철수할 때 피난민 1만 4000명을 거제도까지 실어 나른 것으로 유명한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거제도에 도착한 날이 1950년 12월 25일 성탄절이었고, 배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는 전쟁이 끝난 뒤 성 베네딕도수도회 수사로 살았다고 말했다.

▲ 1950년 12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있는 피난민들.(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어 강 주교는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레너드 라루 선장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실려 있던 무기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어서”라며, “적지의 난민들을 태우려고 무기와 탄약을 바다에 버린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고 “인간을 향한 아주 강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으면 못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장이 혼자서 결정했다기보다는 성탄절이 임박한 그 시점에 성령께서 그분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며 “그분의 영혼이 얼마나 심하게 흔들렸으면 미국에 돌아가서 자기 남은 여생을 수도자로 살게 됐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강 주교는 7600톤 정도인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최근 제주 해군기지로 이전한 제7기동전단 소속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이 7600톤으로 비슷하다고 강론을 이었다. 그는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의 건조비만 1조 원이 훨씬 넘는다며 구축함에 실린 무기의 종류와 숫자를 열거했다. 강 주교는 배에 실린 무기 값의 총액이 엄청나다며, 이 돈을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목적에 사용하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끝으로 강 주교는 “장군들과 위정자들의 영혼이 성령의 감도하심으로 크게 흔들려서 무기보다 사람을 선택하는 결정을 해 주면 좋겠다”면서 “포대기에 싸여 옴짝달싹 못하는 젖먹이의 모습으로 오는 구세주에게서 깨달음을 얻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 강우일 주교(왼쪽)가 12월 25일 제주 해군기지 앞 성탄 미사를 마친 뒤 평화활동가들과 나란히 서 있다.(사진 제공 =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강정 현장팀)
강우일 주교가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장 앞 등 야외  ‘성탄 미사’를 집전한 것은 2010년 이래 6년째다.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강정 현장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은미 씨는 지난 12월 25일 해군기지 앞 미사에 70여 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방 씨는 “제주교구가 (해군기지 앞) 현장 미사를 멈춘 상태에서 주교님이 직접 실내가 아니라 길에서 흙 묻히는 미사에 다시 오셨다는 것이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편법으로 진행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주교님이 반대하고 저항한다는 뜻을 확인하고 동지애가 생긴 미사였다”고 했다.

앞서 제주교구는 교구 사제단이 앞으로는 공사장 정문 앞 미사를 집전하지 않고, 지난 9월 강정마을에 완성된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중심으로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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