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밥상 통신 - 05]

나는 원래 기념일 같은 걸 잘 챙기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편이다. 하다못해 결혼기념일 또는 가족이나 친지의 생일 정도는 제대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텐데, 그마저도 겨우 '오늘이 그날이구나!'하고 넘어가는 정도? 신랑 생일에도 간신히 미역국이나 끓여 주는 형편이고, 내 생일은 애저녁에 없는 셈 친 지 오래다.(다울이 생일이 내 생일 바로 다음 날이니 얼렁뚱땅 같이 축하하고 마는 것이다.)

▲ 도란도란 모여 함께 나눈 동지팥죽 밥상.(사진 제공 = 정청라)
그런 내가 올해는 일을 냈다. 일 년에 단 두 번, 유두와 동지만은 흥겨운 잔치로 기념하고 넘어가자는 것! 지난 유두 때에도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을 초대하여 콩국수를 먹으며 흥겨운 잔치를 벌였고 동짓날엔 함께 만나 동지팥죽을 나누자 기약을 해 두었다. 단순히 팥죽만 먹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해님 생일잔치를 뜻 깊게 열어 드리자, 거기까지 기획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동짓날을 앞두고 이틀 전, 이날은 내 생일임에도 김장을 하느라 하루종일 바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내게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넨 다울이가 "엄마, 오늘은 엄마 생일이니까 고생하면 안 돼. 알았지?" 하고 당부했으나 큰 행사를 치르기 전에 김장부터 해치워야 할 것 같아 미룰 수가 없었다. 신랑은 신랑대로 김장 도우랴 장작 패랴 바빠서 미역국 끓일 틈조차 없었던지라 굉장히 미안해하며 내게 부탁했다.

"청라 씨가 미역국 좀 끓여 줄래요? 내가 끓여야 하는데 내일 팥 삶으려면 장작부터 정리해야 해서...."
"그러죠 뭐. 내일 다울이 생일까지 먹게 한솥 가득 끓여야겠어요."

나는 흔쾌히 나를 위한(더불어 다울이까지 위한)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하여 미역국과 배추김치, 무김치, 동치미로 저녁 생일상을 차려냈다. 다음 날 다울이 생일만은 떡케이크라도 쪄서 그럴 듯한 생일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다짐하면서....

하지만 다음 날은 아침부터 들통으로 한가득 팥을 삶고 집 정리를 하느라 더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떡케이크를 위한 팥고물을 준비할 타이밍마저 놓쳐 버렸다. 삶은 팥이 다 뭉개지기 전에 고물용으로 따로 빼두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한 것이다. 할 수 없이 고물이 없다는 이유로 떡케이크는 패스!(꼭 고물이 없어서만은 아니고 떡 할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쩌다 보니 어제 저녁과 똑같은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다울이 좋아하는 달걀말이라도 하나 부쳐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것조차도 못한 채 말이다. 서운한 기색을 보이는 다울이에게 저녁에는 평소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짜장라면을 끓여 주기로 하니, 금세 환호성을 질렀다. 짜장라면 하나에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무튼 해님 생일을 위해 다울이는 기꺼이 생일다운 생일을 반납했고, 그 덕분에 벼락치기 시험공부 하는 기분으로 나와 신랑은 중요한 행사 준비를 마쳤다. 잘 삶아진 팥을 곱게 갈아 준비하고, 다음 날 쓸 장작을 마련하고, 후식으로 먹을 팥양갱도 만들고....

▲ 동지 간식. 왼쪽 도마와 오른쪽 접시에 있는 것이 팥양갱.(사진 제공 = 정청라)

그리하여 드디어 동짓날! 막바지 청소까지 대충 끝내고 나니 멀리서 손님들이 도착했다. 오기로 했는데 못 온 사람도 있었고, 생각지 못한 반가운 손님도 있었다. 어른 아이 다 해서 우리 식구까지 스무 명 남짓? 그 많은 사람이 둘러앉아 새알심을 빚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얘들아, 이 새알심이 바로 해님이야. 팥국물이 어둠을 뜻한다면 하얀 새알심은 해님이 되어 어둠 속에서 부활하는 거지."
"진짜요?"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대."
"그럼 나는 40개도 넘게 먹어야 하는 거야?"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동지팥죽이 팔팔 맛있게 끓었고, 우린 각자 준비해 온 반찬들을 한데 모아 놓고 동지 밥상을 나누었다. 오늘의 잔치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섰을 테니 모두에게 얼마나 맛있는 팥죽이었겠는가. 더군다나 여럿이 오글오글 붙어 앉아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뜻 깊은 맛!(이 분위기에 사로잡혀 다랑이는 배가 볼록해지도록 정신없이 팥죽을 먹어댔다. 다랑이가 먹은 새알 개수로 따진다면 나이를 실제보다 곱절은 더 먹어야 할 것이다.)

다 먹은 뒤엔 다 함께 가까운 동산에 올랐다. 마치 봄날처럼 포근하고 햇볕도 따사로워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고, 어른들도 무장해제 상태가 되어 아이들처럼 좋아라 했다. 해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우리들에게 해님이 베푸시는 넘치는 은총을 마음 깊이 느끼면서....

그러는 가운데 볕 잘 드는 무덤가에 모여 앉아 해님께 선물로 바치는 재롱 잔치 비슷한 것도 열었다. 한 목소리로 해님을 부르는 노래도 부르고, 신이 난 아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쇼도 하고, 그림책의 몇 장면을 율동과 함께 낭송하는 공연도 벌이면서 오랫동안 해님과 함께 놀았다. 골짜기 가득 울려퍼진 우리들의 웃음소리 속에 해님의 웃음소리로 섞여 있는 듯했다.

▲ 동지 잔치를 하면서 동산에서의 즐거운 한때.(사진 제공 = 정청라)

한없이 산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내려가서 간식 먹자!"란 말로 꾀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푹 꺼져 버린 배를 위해 간식상을 차리고 먹기 전에 다시 한번 노래를 불렀다. 동지를 앞두고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연습해 온 노래였다. 그런 뒤에 참석자 중 누군가가 준비한 동지 기도문을 함께 읽고 간식을 먹었다. 먹으면서 동지를 맞이하며 해님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을 나누기도 했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해님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여러 사람의 마음에서 터져 나온 말들이 한데 모이니 해님을 다시 만나고 새롭게 느끼게 했다. 그래, 해님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지. 그래, 해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게 아니라 내 안에도 있지.... 그와 같은 끄덕임 속에 배도 부르고 마음까지 부른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 펼쳐졌다. 돌아보니 꿈결에서 만난 듯 그윽한 평화,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동지 잔치가 끝나고 다음 날, 잔치에 함께 했던 이 가운데 한 분이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 동짓날 해님께 읊조린 우리들의 기도문. ⓒ정청라
"그곳에선 우리 모두가 빛나는 존재였어요! :)"

그러고 보니 그렇다. 해님을 빛내기 위해 모인 우리 모두는, 어느새 빛나고 있었다. 빛내면서 빛나다니, 이렇게 눈부신 역설이 또 있을까? 나는 안다. 이와 같이 눈부신 역설을 삶에서 살려내는 것이 우리들 부엌데기의 사명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다음 이 다음 해에도 기꺼이, 나는 해님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르리라.

덤.

그날 모인 사람들이 들려 준 '해님에게 하고픈 말'이 다울이에게도 무척 인상적이었나보다. 손님들이 집에 돌아간 뒤 자기도 해님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며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해님, 나는 해님이 좋아요.
해님은 끝나지 못하는 사랑을 갖고 있어요.
우리도 해님을 안고 첫사랑 노래를 부를 거예요."

다울이가 반납한 생일다운 생일은 그렇게 환한 햇살과도 같은, 따끈따끈한 동지팥죽과도 같은 마음으로 남았다.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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