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생명-평화를 위한 오체투지 순례 72일차


봄비가 촉촉이 내린 오후였습니다. 이 비로 가물어가는 대지의 숨결이 살아나고, 이 땅에 살아가는 뭇생명의 생기도 살아날 것입니다. 따스한 봄 기운에 움트던 새싹들도 기지개 켤 것입니다. 순례단의 기도순례 역시 봄비와 함께 희망을 만들어갑니다.

하루 휴식을 취한 순례단. 72일차의 여정은 연기군 소정면 대곡2리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오전에는 순례단을 비롯하여 몇 분의 참가자들이 일정을 함께하였습니다. 평일 아침은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순례가 시작되곤 합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하는 마음은 참가인원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항상 동일합니다. 오늘은 순례단의 깃발도 새로운 색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순례단은 도장리 마을 공터에서 주민들의 도움으로 식사장소를 마련하고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에는 멀리 안동에서 오신 신부님. 서울에서 오신 수녀님과 교무님. 전북 지역에서 오신 교무님 등이 순례단에 합류하여 이후 오후 일정을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오후 순례 중에는 원불교 사회개벽단의 정상덕 교무님은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오체투지로 순례를 진행하였고, 수녀님과 교무님은 나란히 기도하며 순례를 이어나갑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옷을 입지만, 그 옷을 벗고 보면 ‘인간’이라는 공통점만 남는다 합니다. 이 기도 순례길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모습으로 만나지만,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는 것은 모든 종교의 지향점일 것입니다.

강경에서 오신 원불교의 장혜신 교무님은 최근 우리 사회 모습과 관련하여, “법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법만 살아 있으면 서민이 살만한 사회다. 그러나 가진 자는 법망을 피해 항상 면죄부를 주는 사회,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시고, “오체투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 조금이라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또 정의가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다.”고 하십니다. 장 교무님은 “초등학교 도덕책을 보면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다. 단순하다. 거짓말 하지 않고, 도둑질 않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곳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부터 법 질서를 무시하는 사회. 특권층을 위한 규제개혁이 진행되고,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은 재갈을 물리는 사회. 유투브에서 국가 설정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설정해야 하는 나라. 씁씁한 우리 사회 모습입니다.

오늘 순례는 1번 국도를 이용하여.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 인근인 구룡로터리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비를 만났습니다

비가 왔습니다. 가뭄으로 말라가던 대지에 생명수와 같은 단비가 내렸습니다. 그간 타들어갔을 농민들을 생각하면 비가 좀 더 왔으면 좋으려면, 이곳 천안지역에는 오후 한 때 잠시 동안 비가 왔습니다.

비는 오후 일정을 준비하는 와중에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약 5mm 정도 비가 올수 있다는 예보를 들었기에 미리 우의 등을 준비하였지만, 올해 처음으로 빗속에서 진행된 순례. 역시 당혹스러웠습니다. 투수층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에는 금방 물이 차오르고, 가뜩이나 정체된 도로에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대더군요. 도로 바닥에 고인 빗물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례자들의 몸은 빗물에 흠뻑 젖고, 쉬는 시간마다 몸자보와 장갑의 물을 짜내기 바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지나는 차량의 소리도 더 커집니다. 뿐만 아니라 뒤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진행팀원이 보이지 않아 순례 진행 차선으로 차량들이 끼어들기 십상입니다. 간혹 순례단이 반갑다고 손을 흔들며 차를 멈추며 격려하는 운전자 혹은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두 손으로 합장하는 운전자를 만나면 더 긴장됩니다.

비가 와서 순례길이 고단하다지만, 더 많은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순례단은 예전에 하루 소식을 통해 ‘우순풍조 민안락(雨順風調 民安樂)’ 이라는 말을 전한 적 있습니다. ‘비가 순조롭게 내리고 바람이 조화롭게 불면, 백성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말입니다.

봄이 되었지만 곳곳이 메말라 농사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 많은 봄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고 이 땅의 농민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 상황에서 날씨라도 국민과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와 달, 바람과 비가 주는 자비와 손길을 따라 대지의 생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농민의 삶처럼, 나라살림도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자연과 순응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횃불소녀?를 만났습니다

횃불 소녀를 만났습니다. 오체투지 순례단이 천안시 경계에 다시 진입하는 순간, 순례단 진행팀 모두 신기하여 앞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례단 앞에 촛불소녀가 있더군요. ‘촛불소녀가 왜 저기 있지?’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촛불소녀’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다.’며, 광화문에 직접 민주주의의 공간을 만들고, 미친 교육과 운하, 광우병 쇠고기 수입 정책 등 식탁의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촛불소녀. 그 촛불소녀가 순례단 앞에 있더군요. 천천히 앞으로 진행한 순례단.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한 후 웃었습니다.

촛불소녀와 외형부터 유사하였던 이 조형물은 ‘횃불소녀’로서 천안시 마스코트라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것으로 ‘용기와 당당함이 깃든 낭자의 모습을 기본 형상으로 했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촛불소녀’와 너무나 유사한 ‘횃불소녀’입니다. ‘횃불’과 ‘촛불’ 모두 세상의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어둠을 가르는 빛입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모두의 가슴에 불타는 자주와 민주주의의 함성이었습니다. 어둠은 촛불과 횃불이 나르는 빛을 이겨본 적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순리입니다.

국토순례가족을 만났습니다

국토순례 중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순례단이 휴식을 취하던 14일(화)에 진행팀은 오늘의 출발지를 자세하게 묻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보통의 문의와는 달리 출발장소를 상세하게 여쭙는 전화였습니다.

오늘 아침 출발장소에 도착해보니, 도보로 국토순례중인 분들이 순례단에 합류하였습니다. 원주에 사시는 신세균 선생님은 대안학교에 다니는 15세의 아드님과 함께 100일을 목표로 국토순례 중이라고 합니다. 신 선생님은 “아들에게 세상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고 사람들을 많이 접함으로써, 조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국토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멀리 대구에 사시는 신 선생님의 친구가 이 부자를 응원하기 위해 함께 참여했다 합니다.

보통 하루 20~25㎞의 거리를 도보로 이동하고, 숙식은 마을 회관 등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데, 45일차인 오늘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하게 되었다 합니다. 해남 땅끝 마을을 시작으로 통일전망대까지 진행할 예정이라는데, “오체투지 순례단 소식을 듣고, 삶 자체에 생명과 평화를 심어주고 부족한 나를 낮추고 싶어 왔다.”고 합니다. 신 선생님은 “동학에서는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우리는 사람이 대접을 못 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 오체투지 순례단이 주는 메시지를 알고 싶었고, 머리를 땅에 댈 정도로 나 자신을 낮추면서 분명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신 선생님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과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하셨습니다.

함께 순례단에 참여했는데, 아드님은 아직 마음이 동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몸을 도로에 던지고, 아들은 그 뒤에서 따라오면 때로는 오체투지를 하는 아버지 모습을 사진 찍고, 때로는 평상시 도보순례와 비교하여 너무나 느리게 가는 순례 속도에 지겨웠는지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던 오후 시간, 우비를 준비하지 못하였던 신 선생님. 온 몸이 비로 흠뻑 젖었습니다. 몸은 고단하고 춥지만 항상 만면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일정을 마무리 한 이후 “내일 또 뵙자”고 하시며 아들과 함께 가시는 뒷 모습에서, 우리 땅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온기를 자제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아버님의 큰 뜻이 보입니다.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가슴에 품은 아이의 또 다른 아이도 그 모습 그대로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 수브라(프랑스) / 김순호(전의) / 신세균 외 2명(원주) / 김인경 교무(잠실교당. 생태지평연구소 이사장) / 장혜신, 김원화(강경원불교) / 박정숙 수녀(까리따스 수녀회) / 정상덕 교무(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 김경일 교무 / 김영식 외 1명(카톨릭 안동교구) / 이옥순 요한나 수녀 외 13명(평화동 성당) / 이호분 외 1명(전의 성당) 등이 순례에 동참했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4월 16일(목) : 구룡로터리LPG주유소(시작) - 천안대로 신성미소지움APT 101 건너편(종료)
● 4월 17일(금) : 신성미소지움APT 101 건너편(시작) - 신부초등학교 건너 S-Oil 주유소(종료)
● 4월 18일(토) : 신부초등학교 건너 S-Oil 주유소(시작) - 공주공업대 초입 농협창고 앞(종료)
● 4월 19일(일) : 공주공업대 초입 농협창고 앞(시작) - 직산읍 직산4거리 지나 1km 지점(종료)
● 4월 20일(월) : 직산읍 직산4거리 지나 1km 지점(시작) - 천안시 문화회관 앞(종료)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4. 15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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