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제임스 시노트 평전", 바오로딸, 2015

인혁당 사건의 유족, 동아투위 사건관련자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제임스 피터 시노트 신부의 평전이 바오로딸에서 나왔다.

‘정치적 냉담자’였던 시노트 신부. 그는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노사 문제로 곤란을 겪던 전 미카엘 신부에 대해 ‘오, 불쌍한 마이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의 동료 신부가 가톨릭 노동청년회에 가입해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해도 ‘한국의 일이니 내가 마음 쓸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 김종철, "제임스 시노트 평전", 바오로딸, 2015
그랬던 그가 한국의 현실에 눈을 뜨고 행동에 나선 것은 신도 공소에서 ‘전 군’을 만난 뒤다.

‘전 군’은 피난민의 아들이었으며 결핵골수염을 앓았으나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해 성장이 멈추고 장애가 생겼다. 그럼에도 16살에 서울로 보내져 하루에 16-18시간씩 고된 일을 했고 그 결과 몸 상태가 더 나빠지고 말았다.

시노트 신부는 ‘전 군’의 치료에 정성을 기울였고 그는 건강을 되찾아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 고되게 일해야 하는 상황을 전 군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노트 신부는 ‘이 모든 고통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전 군을 보며 자신이 그의 처지였다면 어떤 자세를 취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노트 신부는 전 군을 예수님에 비유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기쁘게 감내하라고 강론하는 대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 눈을 뜬다. 그리고 “내 삶의 변화는 ‘마비에서 풀려남’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비판 능력’을 되찾았다는 뜻이다”라고 고백한다.

그 뒤 그는 비로소 ‘유신독재’의 실체에 눈을 뜨고 행동에 나선다.

‘비판 능력’을 되찾은 시노트 신부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병원에 갇혀 있던 지학순 주교와 <워싱턴포스트> 기자 오버도퍼의 인터뷰를 중앙정보부 직원의 감시를 뚫고 성사시켰으며 영국의 <BBC>가 ‘인혁당 아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인터뷰 내용을 통역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대치 중이던 기자들이 폭력배에 의해 쫓겨나기 전 마지막 밤을 기자들과 함께 보냈고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송상진의 시신을 경찰이 탈취하려고 했을 때 시노트 신부는 경찰과의 몸싸움에 앞장섰다.

이후 유신정권은 시노트 신부의 체류 연장을 불허하고 강제추방한다. 그러나 시노트 신부는 미국에서도 유신정권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활동을 계속한다.

2002년에 한국으로 아주 돌아온 시노트 신부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족, 동아투위 사건 관련자들과 만남을 유지하며 강연 등을 이어 나갔다. 말년에는 문학과 미술 활동에서 활력소를 찾았다고 한다.

이 책은 시노트 신부의 출생과 선종까지 그의 성장 배경과 의식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가 투신했던 사건들의 배경과 진행과정, 결과까지 서술하고 있다. 또 시노트 신부와 인연이 깊었던 인혁당 사건 피해자의 부인들, 함세웅 신부, 문정현 신부, 이철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상임대표의 인터뷰도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욱 자세히 드러낸다. 마지막 부분에는 그가 쓰고 그린 시와 그림도 실려 있다.

이 평전의 글은 속도감 있게 빨리 읽히며 사건이 영화처럼 눈에 보이듯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시노트 신부의 평전이기도 하지만 1960, 70년대 역사의 기록이기도한 만큼 ‘색인’이 있다면 더 효율적인 독서가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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