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새 의장에게 쓴 편지

“지금 네가 품고 있는 열정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 드리고, 너와 함께하는 일꾼들도 그만큼의 ‘마음의 불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믿어 줘. 그리고 즐겨! 큰일나지 않아. 꼭 그 방법이 아니라도 괜찮을 수 있어.”

친한 후배가 가톨릭학생회 새로운 의장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나먼 캐나다에서 편지로 대신 축하의 마음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의장에게, 확신을 가지고 그대의 기조로써 이 단체를 이끌어 달라고 쓸 수 없었다. 그저 즐기고, 특정한 길 말고도 다른 길이 많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의장만은 확실한 기조와 강한 리더십으로 이 단체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몇 번을 썼다 지우다 반복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쓴 이유는 지난 날의 내 잘못만은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다.

내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이게 아니면 정말 안 될 것 같았던 것들이 그렇게 많았다. 작게는 행사 때 자리 배치나 진행 방식에서부터 크게는 우리의 연간 일정, 기조, 방향성까지. 필요한 과정이었다. 더 나은 행사를 위해, 더 나은 가톨릭 학생회를 위해 하나하나 따지고 뒤집고 바꿔 나가던 열정 그 자체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게 그렇게 작아 보이는 이유는 ‘내 제안이 최고인데 왜 당신들은 그걸 몰라 주는가’라는 마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발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방식이, 내 아이디어가 이 상황에서 최선이라는 것을 설득하다 보니 정말 그 방식이 최고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결코 타협할 수 없었다. 더욱 견고해진 ‘나’에 대한 믿음으로 그게 아니면 정말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주문을 걸었던 것이다.

그게 비판이 아니며 비난이었으며 뚝심이 아니라 아집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의 그 부끄러움과 자괴감을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한 후배에게 내 딴에는 건설적인 조언이라며 한참을 이것저것 조언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가는 그 친구의 축 처진 어깨를 보았다. 그 순간 어깨 너머 그 친구의 표정과 마음도 보였다. 그리고 방금 전 그렇게나 떠들던 나의 진짜 깊은 마음 속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옳다, 내가 옳아야만 한다, 너는 내 방식을 따라야만 한다, 그래야 네가 옳을 수 있다. 내 치적이 오래오래 보전되기를, 내 방법이 최고라는 것을 네가 증명해 주기를. 열정이라는, 진심이라는 포장 속에 꽁꽁 싸맨 ‘진실’을 보는 순간 지난 날의 내 진짜 땀과 눈물마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줄곧 우유부단이라면 치를 떨던, 확신에 차 있던 22살의 나는 23살이 되면서 이것도 저것도 잘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비난과 비판, 아집과 고집. 그것의 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진심의 여부라고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내 논리가 옳을지언정 내게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우유부단의 미덕

비난과 비판, 아집과 고집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과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좀 더 방황의 시기를 보내기로 했다. 이 방황의 시기가 있어야만 조금이라도 더 ‘꼰대’가 될 그날을 미룰 수 있지 않을까.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특정한 사람으로 굳어 가는 것이 당연하고 필요하면서도 동시에 두렵다. 객관성을 잃을까봐, 이젠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할까봐. 그만큼 나만의 길을 정하기가 두렵다. 나 자신을, 내 꿈을 다른 이들도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옮겨 내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이 망설임과 두려움이 차라리 사랑스럽다. 나를 인정하고 내 바닥을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운 기초공사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리더십의 부재를 말하고 확신을 요구한다. 강력한 신념의 누군가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가치관을 들고 나서서 늘 최선의 길을 택하기를 기대한다. 면접관은 뚜렷한 비전과 확신을 가진 인재를 원하고 선생님은 학생에게 확실한 대답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것을 찾아가는 그 언저리 어딘가에 있다. 확실하다고 믿는 그것이 내 마음 속의 오만과 성취욕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저 믿고, 즐겨.’ 다시 읽어봐도 참으로 믿음 안 가는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저마다의 길을 찾아나가는 그 과정을 함께 수많은 실수 속에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 응원하고 싶었다. 폭풍 속에 휘어지지 않던 떡갈나무는 끝내 부러졌지만 갈대는 수없이 몸을 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때로는 우유부단과 타협의 미덕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자각해 보았으면 한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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