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상에서 무언가 탈출의 욕구를 느낄 때면 으레 “벗어나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여행’이다. 무엇인가 지금과는 다른 자연환경, 문화적 배경 속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어 한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무엇, 더 정확히는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답을 구하려는 몸부림, 그 정신적 여정을 위해 육체적 고행을 통한 여행을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세의 순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종교적 행동이었던 순례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더듬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적극적 믿음의 표현이었다. 또한 순례는 면죄의 기능도 갖고 있어서 죄를 지었거나 죄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고행의 형태를 취하는 순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자 하였다. 종교적, 세속적 권위자들은 종종 죄에 대한 처벌의 방법으로 순례를 명하였다. 회개를 위한 순례는 그리스도교 전파 초기부터 나타나는데 공적 처벌이라기보다는 개별적이었다. 성지순례 여행은 길을 가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순례 성지에서 숭배되는 조각상이나 성물 앞에서 수많은 기도문을 외우거나 성가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도1) 그 때문에 순례 길에서 만나게 되는 성당들은 그 위용을 드러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축물로 세워졌고 내부의 성골이나 유물들은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8세기가 되면서 회개를 위한 공적인 순례와 사적인 순례가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13세기가 되면 세 가지 형태의 참회를 위한 순례가 공존하였는데 주교에 의해 부과된 공적 고해, 어느 교구의 성직자나 명령할 수 있는 비교적 덜 엄격한 고행, 숨겨진 죄에 대한 개개인 스스로 행하던 고행이 그것이다. 순례는 육체적 고행을 감수하며 정신적 안정과 사회로의 재 편입을 허가하는 중세의 대표적인 구제 수단이었다.
 

도판2

도판3


그러나 순례는 충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따르는 것이었다. 순례여행을 위한 가이드북(도2)을 읽고 준비하는 것은 지금이나 비슷했다. 또한 순례는 신분에 관계없이 시행되던 일반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관습과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일반인들이 순례를 떠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의무를 떠나는 일종의 일탈행위였으므로 종교적이고 세속적인 권위로부터의 허가가 필요하였다. 교회는 출발하는 순례자들에게 특별 미사를 열어 신앙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와 무사귀환을 빌어주었으며 순례자들의 물건에 축복을 내려주었다.(도3) 교회는 경제력이 있는 자들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도 순례의 기회를 허락하였다.

순례자는 자신이 순례자임을 알리기 위해 의복과 그 밖의 것들-챙이 넓은 모자,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팡이, 염낭과 물병, 십자가 그리고 성지의 기념품이 될 만한 배지, 종려나무 가지 같은 것-을 갖추어야 했다. (도4, 4-1,4-2)

 

도판4

도판4-2

중세 시가를 인용해보면 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순례자의 상장을 두르고 순례자처럼 차려입은
그는 넓은 띠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었네
.....

곁에는 꾸러미와 사발을 차고
모자에는 수많은 작은 병(ampule) 아마도 성수가 담긴)을 꽂고
시나이의 표지와 산티아고의 조개껍데기
망토에는 많은 십자가와 로마의 열쇠들
.....

그렇다면 이런 순례 행위는 그림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작가들은 직접적으로 순례행위를 하고 있는 인물들을 서술함으로써 우리에게 당시의 순례가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건초마차가 있는 세 폭으로 된 제단화(도5)를 그렸다. 이 제단화의 왼쪽 날개에서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인간의 몰락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패널에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보여주고 있고 중앙의 건초마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며 모든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짚을 집기 위해 일렬로 서있다. 이 작품의 전경에는 집시, 장님, 그의 안내자 등 다양한 죄 많은 도보 여행자들이 묘사되어있다.

 


순례와 관련한 그림은 이 제단화를 닫았을 때 볼 수 있다.(도6) 이 외부에는 한사람의 방랑자가 그려져 있다. 그는 노상강도들, 부랑자, 죽음의 상징들이 가득한 풍경을 지나고 있다. 전경의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야위고 해진 옷을 입은 그리 젊어 보이지 않는 남성이다. 그는 고리버들 바구니를 끈에 매어 등에 지고 위험 지역을 지나가는 중이다. 왼편하단에는 두개골과 뼈가 놓여있다. 추한 들개는 발치에서 덤벼들고 그가 건너려는 다리는 매우 부실 해 보인다. 그 뒤로는 도적이 또 다른 여행객에게서 물건을 뺏고는 나무에 묶고 있다. 오른편에서는 백파이프 소리에 맞춰 농민들이 춤을 춘다. 원경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이 거대한 교수대 주변에 몰려있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바퀴를 올려놓은 높은 장대가 보이는데 이는 처형된 죄인의 시체를 전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도6-1)

 

도판6


순례자는 방심할 수 없는 세계를 여행하고 그 변화무쌍한 세계는 풍경에서 제시된다. 도적이나 으르렁거리는 개처럼 신체적인 위협도 순례 길에 있었으며, 순례의 과정에서 듣게 되는 사악한 말은 종종 짖어대는 개에 비유되었다. 순례 길에는 자주 개와 늑대가 등장하는데 실제 순례자들을 위협하는 동물일 수도 있고 비방자나 중상가를 상징하기도 한다.(도7) 하지만 춤추는 농민들은 도덕적 위험을 함축한다. 이들의 정신적 순례는 당대 도덕극의 주제가 되었다.

 

한편 현재 로테르담에 소장된 원형의 그림(도8)은 여행자라는 제목을 갖고 있다. 이 그림에서 인물의 배경이 된 풍경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세심하게 구성되었다. 오른편 구불구불한 모래 언덕, 회색과 황색의 가라앉은 색조는 비에 젖은 네덜란드 전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후경에는 술집이 구체화(도8-1)되어 있는데 여행자의 누더기 옷차림에서 파멸을 초래하는 곳이 반영된다. 술집은 보통 세속과 악마를 상징한다. 오른편의 방뇨하는 남성과 포옹하는 남녀와 망가진 창에서 밖을 응시하는 여성은 타락한 인간들을 빗대어 표현했다. 그 여성은 고객을 기다리는 여성일 수 있으며 고객은 여행자 자신일 수 있다. 그러나 여행자는 술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행도중 쾌락에 대한 기대에 이끌린 듯 멈춰서 있다. 여행자의 옷이나 짊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짐은 가난한 그의 행색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재의 상태를 초래한 죄의 대가를 보여주기도 하며, 다시 유혹에 넘어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정선 200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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