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위원장, 조계사 피신 24일 만에 압송

체포를 피해 11월 16일부터 서울  조계사에 피신해 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월 10일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한 위원장에게는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폭력시위’를 주도했다는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었다.

경찰 출두에 앞서 한 위원장은 10일 오전 조계사 대웅전에서 ‘노동개악 중단’과 ‘백남기 농민 쾌유’를 기원하는 절을 한 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만났으며 생명평화법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한 위원장은 자신의 실질적 죄명은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며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게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민주노총이 “귀족 노동자들의 조직”이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왜 비정규직악법을 막기 위해 온갖 탄압과 피해를 감수하며 총궐기 총파업을 하는지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월 10일 경찰에 자진출두한 뒤,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들은 조계사 일주문 앞에 모여 "노동개악 반대"라고 쓴 손팻말을 들었다. ⓒ강한 기자

경찰 2000여 명이 조계사를 둘러싼 가운데 기자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곧장 조계사 앞에 대기 중이던 호송차량에 탔고 남대문경찰서로 압송됐다.

한 위원장의 조계사 피신에 주목하며, 연대와 중재 노력을 해 온 종교인들은 안타까워하고 분개했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착잡하다”며 “불교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껴안고, 노동자의 문제가 해결되는 데까지 인내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양 위원장은 조계종이 3주 넘게 한상균 위원장을 보호해 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노동법 관련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경찰에 출두하게 된 것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한편, 양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은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노동법”이라면서, 이런 문제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 집회만 부각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계사 사태를 통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노동법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이해가 넓어진 것이 그나마 성과라고 평가했다.

박순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지도위원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12월 10일)에 노동자의 대표를 무참하게 끌고 갔다면서 “이건 나라도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박 위원은 나라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을 짓밟고 있다”며 “재벌들의 똥개가 되어 제 무덤을 파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위원은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노동 문제 해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고 희망 없이 사는 것은 다 노동자, 농민을 탄압하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종교 지도자들이 저출산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7대 종단대표는 12월 8일 황교안 국무총리 등 정부 요인이 참석한 가운데 ‘저출산 극복을 위한 종교계 실천 선언문’을 발표한 바 있다.

조계사 앞에서 만난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도 “걱정이 돼 나왔다”며 “착잡하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서 신부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안은 노동자들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며 “여야가 노동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임금피크제 및 직무, 숙련,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직무능력 중심 고용 시스템을 구축해 인력운용을 합리화하고 노동권, 인사경영권이 조화를 이루는 노사관계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개혁안에는 ‘저성과자 해고 완화’와 함께 기간제노동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노동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도 담겨 있어 ‘노동개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천주교에서는 12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노동관련법 개정 추진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영섭 신부는 한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하는 것까지 거론되는 것에 대해 “과거의 군부 독재 시절에나 있던 것이 소요죄”라며 “정부가 스스로 민주정부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고 독재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형법상 ‘소요’는 여러 사람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 행위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테러리스트 운운하는 것은 자기 정책에 대한 행동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목소리가 아니라 적으로 규정하고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며, 그러니 백남기 씨 사건처럼 국가폭력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균 위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일반교통방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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