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18]

지난달 14일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와 신학과 사상학회가 공동 주최한 학술 심포지엄 ‘위기 속의 교회들?’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읽고 난 소감을 나누려 한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독일, 미국, 한국 교회의 최근 상황을 위의 주제로 검토하였다.

1. 위기의 징후로 제시된 각국의 신자 수와 사제 수 감소

미국교회는 사제 숫자의 급격한 감소와 대조적으로 신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가톨릭은 현재 미국에서 최대 종파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라 한다. 아마 이런 상황이면 미국 교회의 현재 위기는 ‘독신, 정결’을 선택해야 하는 사제, 수도자한테만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증가한 신자들의 인구학적 속성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급격하게 증가한 신자들의 대부분은 히스패닉이나 동양계 이주민일 뿐, 주류 사회 백인들은 오히려 교회를 떠나거나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독일 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자 수, 사제 수, 수도자 수 모두 감소해 왔지만, 최근에는 사제 수, 수도자 수만 신자 수보다 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한다.

한국교회는 이들 두 나라와 상황이 다르지만 적어도 양적 측면에서는 위기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이날 발표자인 오경환 신부(인천교구 은퇴사제)의 주장이었다. 그는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저출산 경향이 성소 일반에 일차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를 최근 성소 감소추이와 연결시켰다. 두 번째로, 신앙생활에 참여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증가, 참가자가 날로 주는 주일학교,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고령인구, 3-4년 뒤 20퍼센트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주일미사 참석률을 위기의 전조로 언급하였다.

▲ 2014년 8월 15일 솔뫼성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위해 모인 아시아 청년들.

2. 양적 감소가 위기의 징후일 수 있을까?

양적 감소가 일어나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 하나만으로 교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긴 어렵다. 그래도 양이 감소하면 무언가 문제는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이 줄어들더라도 ‘질이 떨어지는 양’을 덜어내는 과정이면 다행인데 만일 반대 경우라면 문제일 수 있다. 어떤 원인이든 한 집단에서 구성원 숫자가 주는 일은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 집단이 구성원에게 주었던 매력 요인이 그만큼 상실되거나 줄어든 것일 테니 말이다.

이를 사제 수 감소와 연결시켜 설명해 보겠다. 사제 숫자 감소는 앞의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난다. 오경환 신부는 한국교회 사제성소 감소의 한 원인을 저출산으로 성소의 ‘원천’ 자체가 줄어든 데서 찾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청년 인구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1인 가구, 혹은 독신(가족과 거주하는 경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천 자체가 크게 줄진 않았다. 그렇다면 젊은이 숫자가 줄어드는 것과는 별개 원인이 작용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젊은이들이 사제성소를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하는 가치들이 교회와 세상 안에서 충분히 보상되지 않는 경우일 수 있다. 과거만큼 신자들이 사제를 존경하지 않는다든가, 사제직이 사회에서 갖는 지위가 높지 않다든가, 감당해야 할 사목 직무들이 크게 늘어난다든가, 반대로 세속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다든가, 세속에서 성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난다든가 하는 경우들이 해당될 것이다.

신자들이 사제를 존경하지 않는 경우는 신자들 수준이 높아졌든가 반대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제와 평신도 간 권력 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대체로 사제들의 권력이 약해지는 경우로 귀결된다. 사제직에 대한 사회적 인정 수준이 낮아지는 경우는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거나 경쟁하는 이웃 종교들의 사제들이 열심히 사는 경우, 국민들이 종교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 등이다. 사목 직무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잔소리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과제들을 열거하였던 바 이 일을 충실히 하는 경우다. 아마도 사제들이 이렇게 살면 사제직을 3D 업종으로 인식할 수 있다. 세속의 기대가 높다면 그 사회가 심각하게 타락하였거나, 사회가 매우 투명해져 사제에게 이 보다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할 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속에서 성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은 수많은 NGO들의 등장, 지구화로 확대된 경험 영역 등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유의 기회와 영역이 과거보다 훨씬 넓어진 점도 여기에 속할 터이다.

무엇보다 사제는 가톨릭교회에서 수도자와 함께 종교적 엘리트다. 종교 영역에서 해당 종교의 가치를 가장 우선적으로, 그리고 최고로 실현할 수 있는 신원이다. 그런데 이들이 줄고 있다면 교회 공동체 안에 이런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줄고 있고, 이들에게 이런 동기를 줄 수 있을 만한 요소들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엘리트적 욕구(생을 바쳐 종교적 가치 실현에 투신하고 싶어 하는)의 감소 내지 약화는 교회의 매력 내지 활력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 고령층의 급증과 대비되는 청소년층 감소 내지 교회 안 공동화는 노인들에겐 매력 요인이 남아 있지만 젊은 층에게는 크게 약화되었거나 없어졌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워야 사제 성소가 다시 증가할 수 있을 터이다.

3. 양적 감소가 불가피하다면 어떤 이들이 남을까?

단언하긴 어렵지만 서구교회에서 신자 수 감소, 성소 감소에 미친 영향 요인들이 대부분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점, 이를 되돌릴만한 노력들이나 여건들이 교회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양적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럴 경우 어떤 이들이 교회에 남을까? 교세통계 추이를 살펴보면 현재 60살 이상의 신자 층이 교적 신자의 1/4을 차지한다. 이 연령대의 증가율은 다른 연령대의 4-5배 수준이다. 반면 청년층과 유소년층이 전체 신자 안에서 차지하는 구성비와 이 층의 증가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심지어 이 구성비와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한다.

40대를 기준으로 그 이하는 증가율이 감소하거나 아예 마이너스이고, 오십대부터만 증가한다. 신자 수 총수가 정점에 이르고 난 뒤에도 40대 이하는 50대 이상에서 증가하는 비율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감소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추세대로라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50대 이상은 종교성이 높다. 미사참석률, 단체 활동 참가율, 물질적 자원동원 비율 모두에서 그 이하 연령대보다 매우 높다. 40대 이하는 이 세 지표 모두에서 감소를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이 때문에 교회에서 체감하는 평균연령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일 것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60대 중반인 경우도 흔할 것이다. 이들의 성비는 그 이하 연령대에서 나타난 심각한 불균형과 대조적으로 남성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인구에서 자연 성비는 대체로 여자 100명에 남자 105명으로 남초인데, 교회에서 성비는 여자 70, 남자 30 정도다. 그런데 이 비율이 여자 60, 남자 40 정도 비율로 높아지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냉담 비율이 그 이하의 연령대보다 매우 낮다. 건강 문제만 아니라면 냉담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이들의 정치의식은 보수적이다. 신자들도 일반국민과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으니 거의 틀림없다.

4. 고령층 증가와 사제성소의 관계

젊은이들이 감소하니 자연 성소의 원천도 줄어 사제성소의 감소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실제 교회활동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평균연령에 비해 사제 평균연령이 10년 이상 젊기 때문에 사제들의 사목 의욕이 떨어질 것이다. 특히나 사회의식이 있는 사제들은 보수적 신앙의식이 강한 신자층 탓에 의욕이 더 떨어질 터다.

사제성소도 성소지만 가톨릭교회가 사회에 비치는 이미지도 많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신자들이 따라 주지 않으니 사제들의 사회참여와 예언직무 수행은 더 고립될 것이고, 그럴수록 신자들과의 괴리는 더 커질 것이다. 진보적인 신자들은 이미 청년 시절에 떠나거나 교회 안에 소극적으로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였을 테니 말이다. 이때의 교회 모습은 철저히 성사 중심, 예배 중심일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질 모습은 신앙생활의 형태일 것이다. 교회가 젊고, 사제층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을 때는 주지주의가 지배하지만, 고령화되고 사제층의 의욕이 떨어질 때는 다양한 신심이 지배한다. 그래서 더 기복적이고, 내면적이며, 이웃과는 거리가 먼 교회가 될 것이다. 아마 이 점이 가장 우려할 측면이다.

이런 교회가 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기다리자고 이런 말은 한 건 아니다. 이런 교회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 보자고 한 소리다. 왜 청년들과 유소년들은 교회를 떠날까? 왜 그들에게 교회는 매력을 잃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다시 활력이 넘치는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 필자가 이 주제를 택한 이유이다. 아! 급하다.

 
 
박문수(프란치스코)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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