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우리는 다시 대림시기를 지낸다. 2000년 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고, 그 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대림, 기억과 희망의 때다.

우리는 한 아기의 탄생을 기억하며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아기의 탄생은 삼십 초반의 나이에 십자가형에 처해진 한 청년의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가능한 현실적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예수의 삶은 어떤 삶이었는가?”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야 한다. 그 삶을 앞에 놓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대림의 기억과 희망은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주로 그를 찾아왔는가?”, “그는 주로 어떤 사람들과 주로 만났고 함께 지냈는가?”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중요한 질문이다. 복음서가 예수에게 찾아온 이들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ὄχλος(오클로스, 군중)다. ‘민중’으로도 번역되는 이 사람들은 이름 없는 ‘무리’를 뜻한다.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께 다가왔다.”(마태 15,30)

장애를 지닌 사회적 약자들, 그리고 이들을 데려온 사람들, 모두 이름 없는 무리였다. 자기들 먹을 것도 챙겨 올 수 없었던 가난한 이들이었다. 예수는 허기진 이 무리에게 무엇인가 먹이고 싶었다. 하지만 쪼들리기는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딘가 의지해야 했던 이들은 예수를 찾아왔고, 자기 신세도 여의치 못했지만 예수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이들과 함께 하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 조계사 입구.(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들 무리 중에 당시의 권력에 의해 쫓기는 사람이 왜 없었겠는가?” 11월 중순, 조계사로 들어가 부처님께 몸을 의탁하고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생각하며 든 생각이다. 며칠 전 ’조계사 신도회’ 소속이라는 십여 명의 사람이 한상균 위원장을 조계사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다. 밖에는 경찰이 물 샐 틈 없이 조계사를 포위한 상태였고, 이들은 경찰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너무나 교활한 권력과 비정한 세태에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섬광처럼 든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우리는 이런 권력과 세태에 제대로 말할 자격도 이제 별로 없구나.” 자괴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쌌다. 불교에 조계사라면, 가톨릭에는 명동성당이 있다, 아니 있었다. 갈 데 없는 이들, 쫓기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의탁하던 곳으로. 우리에겐 이제 더 이상 그런 곳이 없다. 이름 없는 무리, 민중이 찾아오기에 명동성당은 이미 너무나 높고도 멀다. 한껏 세련되고 화려한 명동성당의 외관은 갈 데 없는 이들이 알아서 발길을 돌리도록 만든다. 찾아가지도 않고, 그러니 끌어낼 필요도 없다. 예수를 찾아갔고, 예수가 기꺼이 함께 했던 이름 없는 무리가 더 이상은 찾지 않는 곳, 바로 명동성당이다. 그런 우리가 예수의 탄생을 기린다는 것은,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갈 곳 없는 이들을 기꺼이 환대하며 함께했던 예수, 그분과 우리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려면,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에 진정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오늘날 권력의 교활함과 세태의 비정함을 미워하고 분노해야 한다.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수오지심! 맹자는 이 마음이 곧 정의라 했다. 한 아기의 탄생을 기억하고, 그분의 다시 오심을 희망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일이다. 진정, 부끄러워 하고 분노할 일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의 희망과 기억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리는 한 아기의 탄생이 진정 모든 이들, 특히 갈 곳 없는 무리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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