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와 민주화운동]

담쟁이처럼 무리지어 넝쿨지며 남루와 절망의 벽을 넘고 반노동과 착취의 질곡을 넘어 사회정의와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 50여 년 애써 온 이들이 있다. ‘지오쎄’(JOC)라 불리는 가톨릭노동청년회(가노청) 사람들이 그들이다.

1958년 11월 16일 서울교구지부를 모체로 탄생한 한국 지오쎄 50년의 역사는 노동운동 불모지에 수용된 JOC 정착기(1958-67년), 군부독재 정권 아래서의 노동자 복음화 활성화 시기(1968-86년), 6월 항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과 노동자 복음화 방식에 관한 갈등기(1987-92년)를 거쳐, 문민정부 이래 JOC 국제협의회(CIJOC) 중심 노동자 복음화 시기인 현재에 이른다. 1971년에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도 1964년에 JOC 농촌청년부로 시작되어 1966년에 한국 가톨릭농촌청년회로 독립한 것이다.

▲ 카르딘 추기경.(사진 제공 = 한국 가노청 전국협의회)
그들은 설립자인 카르딘 추기경이 품었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루카 4,18-19 참조)를 이상으로 하였다. 카르딘은 1915년 11월 독일군이 자신의 조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독일군에 협조한 이들을 ‘매춘’이라고 준열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 자신이 직접 대독항쟁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연합군에 가담하여 점령군에 맞서 싸우도록 지원하였다. 카르딘은 구속, 석방, 재투옥을 당하며 민족과 함께 불의에 저항하는 것 자체가 JOC의 존재와 자기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했다.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활동하던 JOC 출신 노동자들이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으로 부당해고를 당하고 JOC가 정권으로부터 공산주의 단체로 매도당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억눌리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진 연약한 소녀들을 비롯한 JOC 회원들에게 존경을 표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합니다.”고 그들을 적극 지지했다.

지오쎄 역대 회장을 역임했던 정인숙, 이창복, 윤순녀와 인선사 유령노조 사건 당시 인선사노동조합 정상화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JOC 전국본부 이철순, 원풍모방의 박순희 등이 시대의 어둠을 타고 넘는 지오쎄의 담쟁이들이었다. 또 홍순권처럼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참조)는 예수의 말씀을 따른 이도 있었다. 광주항쟁 당시 홍순권은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1979년에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광주 북동 지부에서 JOC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발생한 초기부터 참여하여 궂은일을 수행하면서, 시신을 염습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JOC 회원들과 도청 취사반, 수혈반 등으로 항쟁에 참여하였다가, 1980년 5월 27일 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독재정권과 기업의 노동자 탄압과 착취에 대해 함세웅 신부는 “1983년은 이리의 태창메리야스의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에 대한 해고와 관련, 전주교구의 사제단이 일체가 되어 미사, 철야농성, 항의시위, 단식기도 등으로 교회의 분명한 의지를 나타내고 노동자, 특히 신자 청년들을 위해 온힘을 기울였던 해였다. 이때의 교회는 참으로 약자의 어머니, 노동자들의 벗, 가난한 이들의 보호자, 은신처였다.”고 회고했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 같지만, 거기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며,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고, 그 삶이 희망이 된다고 말한다. JOC 50년 역사를 담은 책“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50년의 기록”에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헌신하며 절망의 수렁에서 희망을 일구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세상은 이런 이들이 있어 절망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 1978년 김수환 추기경과 동일방직 여공들이 만나고 있다.(사진 제공 = 한국 가노청 전국협의회)

본격적인 겨울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지난 시기 군사독재를 연상케 하는 새로운 억압과 민주주의의 퇴행, 공안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민주화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지옥같은 세상이 다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삭풍에 잎을 떨군 담쟁이도 겨울을 견뎌내고 봄이 되면 다시 찬란한 잎을 틔울 것을 우리는 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도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고향”) (연재 끝)
 

지난 5월부터 매달 '한국천주교회와 민주화운동'을 맡아 한국천주교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바를 생생하게 전해 주신 어수갑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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