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그리스도인의 생태적 깨달음은 세상과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의 여정에 함께하는 것이다. ⓒ장영식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생태운동가이며 농부 철학자인 피에르 라비는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항상 더 많이, 더 높게 오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오를수록 목표점은 더 멀리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비참하고 가난한 이들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늘고 있습니다.”

즉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풍요로움이나 만족감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가장 취약한 이들을 착취하는 구조와 다름 아닙니다. 이 정의롭지 못한 구조에는 가난한 이들과 자연생태계의 착취와 파괴가 함께합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은 여전히 착취구조에서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약 20퍼센트의 인구가 공동의 집인 전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고 있습니다.(<녹색평론> 145권 62-75쪽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49항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구의 생태 문제는 곧 가난한 이들의 문제이며 바로 정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의 바다와 대지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핵발전소 건설 때문입니다. 밀양과 청도 할매들의 피울음 뒤에도 핵발전소가 있었으며, 삼척과 영덕 주민들의 울부짖음 뒤에도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밀양과 청도 할매들 그리고 삼척과 영덕 주민들은 ‘돈’과 ‘이익’을 넘어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밀양과 청도 할매들이 의지하고 있는 땅과 흙은 사랑이며, 삼척, 영덕 주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바다와 대지는 형제요 자매이며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살피고 있는 땅과 흙과 바다는 다시 그들을 돌보고 그들의 먹이가 됩니다. 그들과 땅과 흙과 바다는 서로 변하지 않는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꾼 투박하지만 강하고 순수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땅과 흙과 바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사랑하십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말로 ‘선택’은 ‘사랑’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우리의 형제자매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생태적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생태적 깨달음이야말로 세상과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의 여정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64항 참조)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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