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사이좋은' 조상민 씨 인터뷰

서울 종로구 옥인길 23-6.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아기자기한 골목에 ‘카페 사이좋은’이 있다. 직접 볶아 신선하게 내놓는 커피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정직한 음식을 파는 곳. 함께 먹고 마시며 더불어 살아가는 꿈이 자라는 곳.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이 카페를 시작한 조상민 꼴베 씨를 만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물었다.

▲ '카페 사이좋은'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자는 노력이다. ⓒ한상봉

‘카페 사이좋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성당활동을 열심히 했지요. 교리교사, 성가대, 성령쇄신봉사회, 교구연합회 활동까지 학교 공부만 빼고는 뭐든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때 ‘예수살이공동체’를 만났죠. 대학교 3학년 때는 공동체의 청년 대표를 맡으면서 사무국에 상근하는 실무자가 되어서 8년 간 일을 했어요. 그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놀고... 하지만 한계도 경험했죠. 결혼하고, 취직하면 공동체와도 멀어지더라고요. 도시에 생활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서울 외곽이나 지방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요. 함께 술 마시면서 공동체 이야기에 열 올리던 이들이 그렇게 떠나니 서운한 마음도 컸어요. 대신 사람들과 함께 살려면 직장이나 집을 구하는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공동체의 가치와 생활문제를 연결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죠.

실무자로 일할 때는 바빠서 생각만 하다가, 실무자 역할을 내려놓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동주거에 대해 고민했어요. 함께 모여 살려면 일단 편하게 모여 앉아 일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퇴근 후에 들러서 차 한 잔, 맥주 한 잔 하면서 함께 살아갈 고민을 하는 그런 플랫폼을 기대했어요. 동시에 일자리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카페를 계획하게 된 거죠.


경험이 없는데 카페를 여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쉽지 않았어요. 제가 돈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처음부터 하나씩 다 부딪쳐야 했어요. 마침 예수살이공동체에서도 10주년을 맞아 ‘도시공동체 꾸리기’를 공동체의 중요한 방향으로 잡았어요.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하면서 공동체도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예전에 들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이야기를 기억해냈어요. 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뜻이 있는 사람들과 예수살이공동체의 출자금을 받아서 협동조합으로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협동조합은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틀이니까요.

일단 경험이 없으니 희망제작소에서 하는 NPO경영학교에 참여해서 경영이나 마케팅에 대해서 배우고,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6개월 일하면서 영세 자영업자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도 느꼈죠. 열심히 배우고 경험할수록,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어요. 같이 하려는 친구가 서넛만 있어도 해볼 텐데 싶었죠. 다들 뜻은 좋다고 하지만, 선뜻 같이 하자는 친구는 찾기 어려웠어요. 2012년 연말에 예수살이공동체의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열변을 토했죠. 그런데 두 친구가 나도 같이 해보고 싶다고, 그 뜻에 동의한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동시에 두 명이! 드디어 되었구나! 아주 기뻤죠.


동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네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모으는 게 어렵더라고요. 도시공동체의 전 단계이자 예수살이공동체 정신에 맞는 수익사업으로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을 제안하고, 협동조합이 생소하니까 기초강좌를 만들어서 세 번에 걸쳐 협동조합을 소개했어요. 그런데 막상 창립총회를 하려니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저희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카페에 대해 설명하고 초대하는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창립총회 전날 밤새서 고민하다가 결국 아침에 울면서 총회 취소 전화를 돌렸어요. 해야겠다는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막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에 신경을 못 쓴 거죠. 협동조합이든 도시공동체이든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에요.

다시 총회를 준비하면서는 카페 자리도 알아보러 다녔어요. 추운 날씨에 팔품을 파는데도 적당한 자리는 비싸기만 하니 서럽기도 했죠. 두 달 만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간신히 계약한 곳이 바로 이 ‘카페 사이좋은’이에요. 장소를 구했으니 돈을 모아야 하는데, 계약하고 나서 일주일 뒤에 예수살이공동체의 총회에서 출자여부에 대한 회의가 있었어요. 여섯 시간을 논의했는데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공동체 대표이신 양운기 수사님이 사도행전의 정신에 따라 제비뽑기로 결정하자고 하셔서 제비를 뽑았는데, 출자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어요. 막상 결정이 나니 도리어 후련하더라고요. 그동안 마음고생도 많았고, 열심히 했으니까. 지원을 받든 못 받든 열심히 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출자를 안 하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신규 출자와 출자 증액을 해주시는 분이 늘어났어요. 덕분에 160명의 출자자가 9,500만원이나 모아주셨죠.


협동조합으로 카페를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카페를 시작하고 나서는 내내 쉬지 못했어요. 돈이 없으니까 카페의 인테리어를 손수 다 해야 했죠. 여기가 원래 세탁소였어요. 타일을 다 뜯어내고,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공동체 친구들과 모여서 바닥, 미장, 타일, 도색을 손수 했어요. 철로 만드는 것과 전문 목공 빼고는 전부 우리 손으로 했죠. 3주면 끝날 일이 9주가 걸렸어요. 2월에 시작한 공사가 끝나고 4월5일에 오픈을 했죠. 같이 일하기로 한 옥진 씨와 저는 공사하는 동안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느라 더 바빴고요.

근본적으로는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불안이 있었어요. 뜻이 아무리 좋아도 유지가 되어야 하잖아요. 주위 분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반드시 망한다.”라고 이야기 해주신 분도 있었죠. 제 개인의 돈으로 벌린 일이면 망하더라도 제가 책임지면 되는데, 출자해 주신 분들의 돈을 모아서 벌린 일이니 망해선 안 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어요. 장사가 안 되는 날은 더 불안하고요. 언제 장사가 잘 되는지 모르니, 직원 두 사람이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어요. 카페 일도 많은데 협동조합 일도 있고 소모임들이 생기면서 일은 더 늘어났죠. 행복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지치고 피폐해져서 나중엔 사람들이 와도 웃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서야 쉬었지요.

그래도 가장 어려운 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에요. 같이 준비한 분들이 운영위로 참여하고 이사도 맡았어요. 그렇게 모인 열 사람이 논의해서 진행하려니, 각자 원하는 방향이 다르고 입장도 다르고 갈등을 겪었죠. 그럴수록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일은 바쁘고 소통도 해야 하니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준비할 때부터 운영하는 과정까지 소통이 가장 어려웠죠.

▲ 정겨운 서촌 골목에서 동무를 기다리는 '카페 사이좋은.' ⓒ한상봉

어렵지만 기쁨도 있으니 계속 하는 거겠죠?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도 많아요. 소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도 큰 기쁨이죠. 기타를 치거나 미술을 하는 모임도 있고,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를 찾아서 실천하는 모임도 했었어요. 각자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사진 찍고 그림 그린 것을 모아 전시회도 하고요. ‘취한당’이라는 주조모임도 있어요. 맥주도 만들어 봤고, 막걸리나 소주도 만들어보려고요. 많은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할 때 제일 즐겁죠. 카페를 만든 보람도 느껴지고요.

처음엔 부담스럽고 힘든 마음이 컸는데, 한 고비 넘기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어요. 카페 직원으로 함께 일하던 옥진 씨가 재충전을 위해 그만두기로 결정하면서, 대신 다른 친구들이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카페와 협동조합의 일을 여럿이 나누어 맡다보니 일의 부담이 줄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친구들은 엉뚱한 곳에서 일하는 대신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일하게 되었고요.

여전히 어려움은 남아 있어요. 경제적으로는 작년보다 어려워졌지요. 이 근처 골목에만 카페가 열다섯 곳 넘게 생겼어요. 봄에는 메르스 때문에 손님이 확 줄었고요. 그래도 큰돈을 벌려고 한 건 아니니까, 망하지 않고 소중한 공간을 지켜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함께’ 하고 ‘같이’ 사는 게 왜 중요한가요?

힘들지만 함께 하려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로 제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초등학교 1학년까지 괴산에 살았어요. 시골이니까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개울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어놀았죠. 그때부터 함께 하는 게 좋았어요. 혼자하면 재미없고 힘이 드는데, 같이 할 때는 힘이 들어도 재미있어요. 그래서 젊을 때 잠깐이 아니라 오래오래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놀면서 살 방법을 고민한 거죠. 친구들은 제게 “함께 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 같다.”라고들 해요. 아마 그 친구들이 정상적인 거겠죠? 저는 먹는 것도 같이 안 먹으면 서운하고, 노는 것도 일하는 것도 전부 같이 하고 싶어 하니까요. 그래도 아직은 함께 하는 게 더 좋아요.

두 번째로는 제가 약하기 때문이에요.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라는 책을 반복해서 읽고 있어요. 대부분은 혼자 잘 사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독립적이고 재주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 책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라고 이야기해요. 뭐든 혼자 못하는 저의 약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그 약함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도록 이끄는 것 같아요. 제게 함께 사는 건 생존하기 위해서, 즐겁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죠. 함께 살아가는 삶이 이 사회의 희망이에요. 결국 제가 복음적인 삶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실현해가는 과정이고요.


복음적으로 살고 싶다고 할 때, ‘복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랫동안 공동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건, 공동체를 통해서 자신을 깨닫게 된다는 거예요. 관계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거죠.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어려움을 겪을 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더라고요. 성격이 다듬어지기도 하고요. ‘복음’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느님이 주신 ‘나’의 고유성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게 나를 다듬어 나가는 거죠.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이 공동체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중이고요.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의 조합원이 되려면 출자금(1구좌 10만원)을 납부하고 인적사항을 등록하시면 됩니다. 조합원이 아니라도 ‘카페 사이좋은’에서 진행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페이스북의 ‘사이좋은 카페’ 페이지나, ‘협동조합 사이좋은 마을’ 웹페이지(http://cafe.daum.net/BINO)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희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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